명망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책을 내고 싶어한다. 이미 유명세를 탄 사람도 인기를 지속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출판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책은 나온다. 출판사들은 이런 유명 인사들을 좋아한다. 따로 홍보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저자 자신이 판매와 마케팅에 솔선수범하고, 잘만 하면 자비를 들여 책을 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이 ‘인기 폭발 중’인 연예인을 붙잡으려 안달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책을 내주겠다고 자극을 가하기까지 한다. 연예인 자신이 나서서 책을 내자고 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경우에 그렇다. 차인표씨가 한 매체에 기고한 글이 꽤 좋다고 하여, 출판사가 출판을 제의했는데 거절한 일화가 그것을 설명해준다. 차인표씨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고 책을 낸다는 행위는 독자에 대한 책임이 수반되는 일인데 아직 그 정도까지 글쓰기가 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반대로 ‘그 정도까지 글쓰기가 된’ 연예인이 있다면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될 일이다. 대필 작가를 따로 내세워 구설에 오를 걱정을 안 해도 되고, 그의 팬들이 기본으로 사준다면 절찬리 판매는 떼놓은 당상 아니겠는가.
최근 나온 타블로의 <당신의 조각들>이 주간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한 것을 두고 세인들은 설왕설래하고 있다. 기대했던 것만큼 실망했다는 일부 독자들의 평가는 타블로의 팬들로 짐작되는 무수한 독자들의 평가에 묻혀버렸다. 이 책에 대한 찬사는 각 서점의 판매 매니저들에게서도 나오고 있다. 대교문고 용산아이파크점 조정수 북자키는 “감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가수 이적씨가 펴낸 <지문 사냥꾼>이 한때 베스트셀러가 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지금은 타블로가 히트를 치고 있다”라고 현황을 들려주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원고 또는 블로그에 올린 글이 눈에 띄어 출판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두 책은 연예인 출간 중에서 돋보인다. 소설가들이 꿈꾸는 바이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은 잘나가지 않는 소설가들은 외면한다. 내용이 빈약하고 질이 떨어져도 인기 연예인이 인기 소설가만큼 해주리라 기대했고, 마케팅 성과도 좋았다.
책을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한 소설가는 저녁 귀갓길에 통음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등단 후 소설집 하나 내보려고 출판사 찾아다닌 지 5년이 되었다. 자비 출판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출판사들은 꽤 이름 있는 소설가의 책을 내는 데 주저하더라.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마니아층을 가진 소설가 책도 1만권 넘기기 힘들다며, 차라리 인기 연예인 일기장을 내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더라.”
‘이미지 포장용’ 혐의에서 자유롭진 못해
그러나 연예인이 낸 책에 대해서는 유독 ‘잘난 체 하는 것’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연예인이라고 글쓰기를 좋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도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이미지 포장용’이라는 혐의를 씌우기까지 한다. 출판사의 기획에 따라 대필 작가와 함께 책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이유이다. 스타에 기댄 상술에 놀아났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딴따라가 무슨 책이냐’라는 식의 비아냥을 깨버리는 출간들이 이어져 안정감을 찾은 눈치이다.
지난 10월 가수 박진영씨의 <미안해>가 재출간되었다. 이번 개정판은 박진영씨의 미국 하버드 대학 초청 강연과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강연 동영상 CD를 부록으로 증정해 관심을 끌었다. 이 책은 박진영씨가 미국에 진출해 성공하기까지의 과정뿐 아니라 그만의 독특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에세이들을 통해 ‘딴따라’라고 깔보는 일부의 시선에 대해 거침없는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 책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헤르메스미디어라는 출판사는 필자를 아예 ‘대중문화인’으로 한정하기로 했다. 헤르메스미디어 문미경 편집팀장은 “대중문화인들의 ‘파워’가 저평가되어 있다. 그들이 대중문화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노력은 정말 상상 이상이다. 그들의 능력과 업적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출판사의 취지에 부합하는 대중문화인들을 발굴해 그들의 리더십과 생각들을 담은 책들을 출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문씨는 박진영씨가 지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책을 출간하려 한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출판사의 취지에 박진영씨가 움직여서 탄생한 책이다. 스타성에 기대어 한 건 하자는 책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유명 가수의 책을 펴냈지만 손해만 보았다는 한 중견 출판사의 편집자는 “출판사의 생존 전략과 연예인들의 지적 욕구가 맞아떨어진 지점에서 ‘이미지 포장용’이라는 혐의를 벗기는 힘들다. 그런데 이미지 포장용으로 책을 만들었다가는 서로 망하는 길로 갈 수 있다. 국내 독자들의 수준은 만만치 않다. 소설가들의 입지까지 위태롭게 만들며 등장하는 연예인의 책들에 대해 냉정한 독자들의 ‘서평’은 결코 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점수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책과 함께 인기까지 까먹는 일이 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