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만 좇다 ‘벙커’에 빠진 졸속 행정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12.0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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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월드컵경기장 수익 사업 민간 위탁했다 ‘망신살’ 골프장 임대료 체납돼 강제집행…예식장·사우나도 ‘애물’

▲ 전주 월드컵경기장 옆에 위치한 월드컵골프장에 법원의 강제집행을 알리는 공시문과 함께 출입을 금지하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뉴시스

전북 전주시 덕진구 반월동 763-1번지, 전주 IC를 빠져나와 전주 시내로 방향을 틀면 부채 모양을 연상하게 하는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총 사업비 1천4백50억원을 들여 건설한 전주 월드컵경기장은 고속도로 진입로를 빠져나와서 볼 수 있는 전주의 첫 관문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우리가 조 2위를 차지했다면 16강전은 이곳에서 벌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조 1위를 차지해버리면서 대전 월드컵경기장에 16강전을 양보해야만 했던 비운의 경기장이다. 

멀리서 보면 웅장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한 바퀴를 돌아보면 ‘진짜 여기서 월드컵을 열기는 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관리가 제대로 안 된 모습이다. 새소리가 뚜렷하게 들릴 정도로 조용한 전주 월드컵경기장은 도심에서 10km나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나쁜 편이고 사람의 왕래도 적다. 넓은 주차장에서는 전경들이 모여 종이공을 가지고 야구를 하며 여유를 부린다. 현장 매표소 부스는 열려 있거나 텅 비어 있다. 비닐하우스와 논밭 그리고 주유소가 월드컵 경기장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택시조차 잡기 어려운 곳이다. ‘적막감’과 ‘고요함’, 이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치 ‘100m 미인’처럼 멀리서 바라만 보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택시 기사는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한 달 정도 놀기 위해 고가 장난감을 지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라고 평했다.

굳이 이런 비아냥을 듣지 않아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전주월드컵경기장은 괴롭다. 월드컵경기장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전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 구장을 주로 증·개축했던 일본과 달리 우리는 열 곳의 구장을 모두 신축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 이후의 활용 방안을 두고 많은 논의가 나왔고 기사도 쏟아졌다.

전주라고 예외일 수 없다. 전주 월드컵경기장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전라북도측은 “1년에 23억원 정도이다”라고 밝혔다. 최소한 이 정도는 벌어야 본전치기가 된다. 그리고 수익 사업을 위한 핵심은 ‘옥외 공간의 활용’으로 모아졌다. 해결책은 골프장 건설이었다. 전주 지역 사회를 최근 몇 년 동안 시끄럽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예정가보다 세 배 많은 액수로 승부 난 골프장 입찰부터 문제

▲ 하늘에서 내려다본 전주 월드컵경기장. ⓒ뉴시스

전주시는 지난 2003년 1월23일 I컨설팅업체에 월드컵경기장 활용 방안에 관한 용역을 맡겼다. 업체측은 “옥외 공간의 활용이 가장 큰 장점이며 유휴 부지를 골프장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나쁘지 않다”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도심 속의 라운딩’을 모토로 내세운 ‘전주 월드컵골프장’이다. 전주시는 매년 가장 많은 액수를 내면서 경기장 옆 주차장 부지에 골프장을 지어줄 민간 업체를 찾고 있었다.

전주시는 월드컵경기장의 부대 시설을 민간에 위탁시켜 수익을 내고자 했다. 시에서는 2003년 4월 골프장과 웨딩컨벤션홀, 사우나, 판매 및 근린 시설 등의 운영 사업자 모집 공고를 냈다. 골프장은 20년 후 기부 채납, 나머지 시설은 10년 후 기부 채납하는 것이 골자였다. I컨설팅 업체는 연간 예상 임대 수입을 17억~26억원 정도로 추정했다.

당시를 회상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마추어적인 일 처리였다”라고 기억을 더듬는다. 전주시는 최고가 경쟁 입찰 방식을 택했다. 가장 불꽃 튀는 분야는 역시 골프장이었다. 막판까지 입찰 가격을 두고 눈치 작전이 치열했다. 2003년 6월13일에 입찰이 열렸지만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이 입찰장에서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입찰은 무산되고 담합 등을 방지하기 위해 보안을 유지했던 아홉 개 참여 업체의 면면만 밝혀지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4일 뒤인 6월17일, 재입찰이 실시되었다. 응찰자가 두 명에 불과했던 사우나는 예정가보다 2천원 높은 1억2천1백12만5천원, 웨딩홀은 예정가 3억2천여 만원보다 2배 이상 많은 7억5천100만원에 낙찰되었다. 골프장의 경우에는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졌다. ㈜주기토건이 제출한 30억원보다 1천원 많은 액수를 써낸 ㈜전주월드컵개발이 경쟁에서 승자가 된 것이다. 예정가인 10억1천7백만원보다 세 배나 높은 액수도 화제였지만, 30억원짜리 입찰에서 1천원 차이로 승부가 난 것을 두고 의아한 눈길이 나온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당시 입찰장에 있었던 한 인사는 “당시 입찰장에서도 예정보다 시간이 지연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수익 사업을 향한 첫 삽은 우여곡절 끝에 뜨게 되었다. 그러면 전주 월드컵경기장에도 봄날이 왔을까. 정반대이다. 오히려 계속 뉴스거리만 만들어냈을 뿐이다. 업체들은 수익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약속한 임대료를 내지 않고 버텨 전주시의 애를 끓게 했다. 지난 2005년 12월 전주시는 전주지법에 ㈜월드컵개발을 상대로 임대료 체납을 이유로 골프장 시설에 대한 명도 소송을 냈다. 4월부터 줄곧 대부료를 내지 않아 22억여 원이 미납된 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예식장과 사우나도 대부료가 미납된 상태였다. 하지만 전주시는 매년 30억원을 내기로 한 골프장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명도 소송은 1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법원의 중재로 일단락되었다. 월드컵개발측은 “원래 경기장 실내를 클럽하우스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교통영향환경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되었다. 이는 전주시의 책임으로 계약을 변경해야 한다”라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일부분 받아들여 연 30억1천만원의 대부료를 15억원으로 낮추도록 했다. 대신 1년6개월분의 대부료인 22억5천만원이 체납될 경우 강제집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업체와 전주시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부료 체납은 계속되었다. 월드컵개발이 계약 이후 내야 할 대부료는 총 44억여 원이지만, 이 중 소송이 끝난 뒤 일부만 납부했을 뿐 총 33억9천여 만원이 체납되었다. 전주시는 시설물을 되찾아올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고, 지난 10월30일 강제집행을 단행했다. 이제 월드컵골프장은 전주시의 소유가 되었다. 2003년의 처음으로 돌아간 셈이다.

골프장에 회원 자격으로 ‘불법’ 투자한 시민들도 손해 막심

가장 곤란한 사람들은 골프장에 투자한 회원들이다. 9홀 규모로 조성된 월드컵골프장은 ‘대중골프장’으로 허가를 받았다. 대중골프장은 정규 회원을 모집할 수 없다. 그런데 월드컵골프장은 투자자 명의의 회원권을 발급했다. 이를 두고 “현행법 위반으로 영업 정지 등의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라고 전북도청에서 경고했지만, 이미 7백~1천명가량의 투자자가 존재한다.

투자자 중에는 전주 시민뿐만 아니라 지근거리인 충남에 사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강제집행이 이루어질 때까지도 골프장 상황을 제대로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1천5백만원을 투자한 김 아무개씨는 “강제집행 1주일 전에도 여기 와서 골프를 쳤다. 전혀 몰랐다. 캐디들도 당일에 알았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알겠느냐”라며 당황하고 있었다.

골프장의 강제집행 이후 월드컵컨벤션웨딩센터도 긴장하는 기색이다. 이곳의 체납액도 22억5천만원에 이른다. 업체측은 “전주시에서 일방적으로 대부료 산정 기간을 정해 영업 시점이 아닌 계약 시점부터 부과하고 있다. 게다가 시설 공사, 누수 방지 공사에 100억원 가까이 들었지만 전주시는 지원조차 해주지 않았다”라며 ‘일단 기존의 대부료는 내고 이야기하자’는 전주시의 방침에 저항하고 있다. 사우나 시설의 경우, 입구에는 떨어진 간판과 주인 없는 우편물만 가득할 뿐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다. 3억5천만원의 체납액만 남겼다.

2003년 월드컵경기장 활용 방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진행되었을 때 시민사회에서는 “전주시가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 졸속으로 처리하지 말아달라”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졸속이 되어버렸다. ‘수익’에 치중하다 보니 민간 사업자에게 무리하게 임대를 했다. 최고가 경쟁 입찰 방식은 전주시와 민간 업체 모두가 액수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전주시는 사업자의 신뢰도를 철저하게 따지지 않았고, 민간 사업자는 무리한 액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은 것은 체납된 대부료와 전주시의 행정력 부재라는 꼬리표였다.

제주·광주 월드컵경기장도 시설 임대 사업 등에 차질 빚어

자치단체에서 월드컵경기장 외부 시설을 민간에게 임대하거나 위탁해 수익을 내려는 시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모양새이다.

제주 월드컵경기장의 입점 업체들은 지난해 한 푼의 임대료도 내지 못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입점 업체의 임대료를 20%로 낮춰주기 위해 조례안을 개정하려고 했지만 도의원들이 “무조건 적자를 감면해달라고 하는 것은 문제”라며 체납분을 완납할 경우 개정을 이야기하자고 문제를 제기했다.

광주 월드컵경기장의 경우 지난 5월 행정안전부의 감사에서 입점 업체인 인라인스케이트장 등이 약 1억9천만원의 대부료를 체납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단 전주 월드컵경기장만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다만, 전주의 경우는 실패에 대한 수업료가 너무 비쌌다는 차이점이 있다.

 


일본도 “월드컵경기장 부수고 싶다”

월드컵경기장의 활용 방안을 논할 때마다 일본은 우리의 비교 대상이다. 대부분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일본의 경우 경기 유치 단계에서부터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라는 내용은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월드컵이 끝난 후 일본 역시 우리를 예로 들면서 자국의 월드컵경기장 활용 방안에 비판의 칼날을 대곤 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우리가 추구하는 대형 마트나 극장 등과의 연계 수익 모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본에서는 월드컵경기장의 사후 문제를 이야기할 때 미야기 스타디움을 빼놓지 않는다. 일본과 터키의 16강전을 포함해 세경기가 열렸던 곳이다. 총 공사비 4천2백억원을 들였고 공사 기간만 4년이 걸렸다. 4만9천여 석 규모인데 경기장만 놓고 본다면 훌륭한 곳으로 호평받았다. 하지만 센다이 시내에서 차로 30분이나 걸릴 정도로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미야기 현에게 미야기 스타디움은 ‘돈 먹는 하마’ 같은 존재이다. 매년 적자가 평균 100억원에 이른다. 미야기 현 축구협회의 무라마츠 준지 부회장은 “지자체는 재정난을 겪고 있어 공공 투자를 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야기 스타디움이 문제인데 해결책이 없어서 답답하다”라고 말한다. 월드컵 개최지 유치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좀더 쾌적한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공사비가 상승한 것이 결국 부담으로 돌아왔다. 총 4천2백억원의 공사비 중 3천억원 정도는 지자체에서 부담했는데 이 중 2천억원 정도가 지방채로 조달되었다. 미야기 스타디움의 절반은 빚으로 지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면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현실은 빚을 갚지도, 유지 관리비를 뽑기도 힘든 상태이다. 미야기 스타디움에 드는 유지 관리비는 1년에 54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단을 유치한다면 좋겠지만 상황은 쉽지 않다. 스타디움의 입지 조건이 너무 나쁘기 때문이다. 외곽에 위치한 데다 간선도로 하나에 대부분의 교통량을 의지하고 있다. 일본과 터키의 16강전이 끝난 뒤에는 경기장에서 차가 빠져나가는 데 3시간 이상이 걸렸다. 게다가 인근 센다이 시를 홈으로 사용하고 있는 일본 J2리그의 베갈타 센다이는 센다이 스타디움이라는 홈구장을 가지고 있다. 굳이 미야기 스타디움을 활용할 이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한다. 무라마츠 부회장이 “스타디움 자체를 부수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주장할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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