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할 수 있다면 인공 판막 수술만이 살길”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1.06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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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표원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센터장 / “대동맥판막 협착증, 70세 이상 고령 환자가 절반…10년 생존율 90%”


계단을 오르다 숨이 차면 나이가 들어 그런가 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 아니다. 호흡에 불편을 느낄 정도라면 대동맥판막 협착증을 의심해야 한다. 심장에서 혈액이 역류하지 않도록 막는 밸브 역할을 하는 조직이 판막이다. 나이가 들면서 세 조각이던 판막이 서로 붙어 굳어져 충분한 혈액의 흐름을 막는 질환이 대동맥판막 협착증이다. 자동차 엔진에서 연료를 넣고 배기가스를 내뿜을 때 열고 닫히는 밸브에 카본이 쌓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진단 후 치료하지 않으면 1~2년 내 사망률이 50%에 달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다.

기존의 심장 판막을 제거하고 인공 판막을 이식하는 수술이 최선의 치료이다. 박표원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센터장은 국내 심장판막 이식 수술의 권위자이다. 그는 고령이라도 심장판막에 이상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것을 강조한다. 박센터장으로부터 최신  대동맥판막 협착증 치료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대동맥판막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심장에는 모두 네 군데에 판막이 있는데, 대동맥판막은 심장과 대동맥 사이에 있는 판막이다. 즉, 폐로부터 들어온 깨끗한 피를 온몸으로 보내는 부위에 있다. 나이가 들면서 세 조각의 얇은 판막이 서로 붙어버리는 석회화가 진행된다. 이것이 대동맥판막 협착증이고, 대동맥으로 나가는 부위가 좁아지므로 혈액이 온몸으로 잘 공급되지 않게 된다.

판막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열리고 닫힌다. 특히 대동맥판막에 미치는 혈압은 1백20~1백80mmHg까지 된다. 혈액이 폐로 가는 심장 우측의 압력인 30mmHg 정도에 비하면 매우 높다. 수십 년 동안 강한 스트레스를 받은 대동맥판막이 굳어지는 퇴행성 질환이 대동맥판막 협착증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 질환이 늘어난다면 성인병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딱히 성인병이라고 규정하지 않았지만, 퇴행성 질환이므로 성인병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생명과 직결되는 심각한 성인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사망한다는 말인가? 

진단을 받고 1~2년 내에 사망할 확률이 50%에 달한다. 60~70대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면 80대에서는 신장 등 다른 장기의 기능도 나빠져서 치료가 더욱 곤란해진다.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가?

돌처럼 굳어진 판막을 떼어내고 인공 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이 일반적이다. 티타늄과 같은 금속으로 만든 인공 판막을 사용하는데 혈전도 잘 생기지 않아 2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70세에 인공 판막을 이식받으면 90세까지 대동맥판막 질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인공 판막도 신체에서는 이물질이므로 항응고제를 복용한다. 

고령의 나이에 수술을 받아도 되는가?

간단히 말하면, 다른 질병이 없고 거동할 수만 있다면 수술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따라서 최근 수술받는 고령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 병원에서만 대동맥판막 협착증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10년 새 6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는 3백50명에 이르렀다.

또, 수술 받은 환자 중에서 70세 이상 고령 환자가 50%를 차지할 정도로 급격히 늘었다. 인공 판막 치환술을 받은 3백45명 중 수술로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수술을 받으면 5년 생존율이 95%이고, 10년 생존율은 90%로 외국보다 수술 성적이 좋다. 80대 환자도 수술받고 있으며 외국에서는 90대 환자도 수술을 받았다.

인공 판막 대신 조직 판막이나 생체 판막을 사용할 수는 없나?

인공 판막이 이물질이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환자들이 있다. 조직 판막은 소나 돼지 등의 동물 조직을 화학 처리해서 만든다. 생체 판막은 뇌사자가 기증한 판막이다. 조직 판막이나 생체 판막은 인공 판막이 아니므로 더 좋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조직 판막은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10년 후에는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

생체 판막은 항응고제를 먹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지만 어차피 자신의 조직은 아니므로 거부 반응이 올 수 있다. 오히려 금속 판막보다 쉽게 변하게 되므로 조직 판막의 경우처럼 재수술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생체 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은 특별한 경우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막에 염증이 생기는 심내막염으로 진단된 85세 환자는 판막뿐만 아니라 주변 조직을 교체해야 하므로 염증이 잘 생기지 않는 생체 판막으로 수술했다.

인공 판막 치환술을 받은 환자는 재수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수술 환자의 5~10%에서 새로운 인체 조직이 인공 판막 주변에 생겨나면서 다시 판막을 막아버린다. 이런 경우는 재수술을 해야 하는데, 인공 판막을 이식받은 전체 환자 중 10년 후 재수술을 받는 경우는 3% 정도이다.

인공 판막의 재질이 금속이라면 다른 질환을 검사하기 위한 MRI 촬영이 불가능하지 않는가?

인공심박동기는 문제가 되지만 판막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판막의 석회화가 진행 중일 때 질환을 발견해서 약물 등으로 미리 치료할 수는 없는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줄이는 약물이 판막질환에 조금 도움이 된다는 몇몇 연구가 있다. 그러나 기대할 만한 효과는 없다는 것이 의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판막에 석회화가 진행되는 환자의 혈압은 매년 4~5mmHg 정도 증가한다. 그만큼 판막으로 혈액이 통과하는 구멍이 좁아지는 것이다. 이를 꾸준히 관찰하면서 적절한 수술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대동맥판막 질환을 어떻게 검사할 수 있나?

의외로 간단하다. 초음파 검사가 일반적이고 정확하다. 초음파 진단으로 질환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술 시기, 위험도, 예후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이 질환은 유전성이 있는가?

유전은 되지 않는다. 다만, 마판 증후군(Marfan’s syndrome)이라는 유전성 판막질환이 따로 있다. 대표적인 증상이 키가 크고 말랐으며 사지가 길다. 링컨 미국 대통령이 마판증후군 환자였다. 가족 중에 이 질환이 있으면 다른 가족도 같은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으나 진행과 증상을 억제하는 처방이 있다.

대동맥판막은 세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인구의 1% 정도는 두 조각인 경우가 있다. 대부분 아무런 이상을 보이지 않지만 일부는 40대 이상의 나이에서 판막이 두꺼워지기도 한다. 또, 석회화가 조기에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예방할 수 있는가?

뚜렷한 예방법은 없다. 석회화라고 해서 칼슘 섭취와 관계가 깊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다만, 일반적인 성인병 예방법이 통용될 수 있다. 즉, 콜레스테롤이나 혈당이 높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다소 도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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