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쿼터’가 K리그에 악재라고?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09.02.0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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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그가 먼저 도입해 조재진·박원재 등 ‘일본행’ 줄이어

▲ 최근 인천 유나이티드 안종복 사장(왼쪽)은 호주 출신 제이드 노스 선수(오른쪽)를 영입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K리그 이적 시장이 뜨겁다. 경제 불황의 여파로 클럽들의 예산 삭감이 줄을 이었음을 감안하면 이 뜨거움은 다소 아이러니컬한 면도 있다. 사실 자유계약선수(FA)가 1백40명에 달하는데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K리그 클럽들은 FA를 영입하는 데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말이 자유계약이지 K리그의 독특한 규정상 이적료가 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제 불황에 더해, 군 팀인 광주를 제외한 모든 클럽의 독립법인화까지 이루어진 터라 클럽들의 재정 자립도 향상에 대한 요구 또한 더욱 높아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여러 모로 어려운 현실에서, 그래도 올겨울 이적 시장을 뜨겁게 만들어주는 요인은 다른 곳들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선 신생 클럽 강원FC의 창단으로 인해 선수 이동이 적잖이 발생하게 되었고, 둘째로는 ‘거함’ 성남이 큰 폭의 선수 물갈이에 나섰다는 점, 전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는 전북·전남 등의 행보가 나름으로 기민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올겨울 이적 시장을 달구는 가장 특기할 만한 요소는 외국 리그와의 선수 교류가 활발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른바 ‘아시아 쿼터제’가 이 활발함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K리그, 대표급 선수 유출로 질적 저하 우려

아시아 쿼터제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규모와 상금이 확대된 2009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부터 각각의 클럽은 기존의 외국인 선수 3명에다 ‘AFC 가맹국 출신 외국인 한 명’을 더 출전시킬 수 있게 된다. 간략히 표현하면 ‘3+1’ 규정인 셈이다.

실상 AFC보다 먼저 치고 나아갔던 것은 일본 J리그였다. J리그는 AFC의 아시아 쿼터제 도입이 확정되기 이전, 이미 이 제도를 2009 시즌부터 J리그에 도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물론 이는 유럽연합(EU) 국적의 선수를 외국인으로 분류하지 않는 동시에 각 리그별로 상이한 수의 ‘외국인 쿼터’를 시행하고 있는 유럽축구 리그들의 제도와도 유사한 것이다. 결국, AFC의 ‘3+1’ 도입은 J리그의 구상을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설기현의 알 힐랄 입성도 이 제도에 힘입은 결과이다.

이 ‘3+1’의 도입으로 아시아 모든 리그들 가운데 ‘적어도 당분간’ 가장 크게 유익함을 얻으리라 예상되는 곳이 J리그임에는 틀림이 없다. 2008 시즌을 기준으로 볼 때 J리그 외국인 선수의 대다수는 브라질 출신들이었다. J리그 18개 클럽에서 활약한 48명의 외국인 가운데 4명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브라질 출신이고, 특히 AFC 가맹국 출신을 활용한 클럽은 단 두 곳-김남일을 보유한 빗셀 고베, 에디 보스나를 보유한 제프 유나이티드-에 지나지 않았다(정대세는 J리그에서 외국인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하지만 ‘3+1’의 도입이 결정되자마자 가격 대비 고효율이 예상되는 K리그 선수들을 향해 J리그 클럽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것은 당연했고, ‘엔고 현상’의 물결 속에서 K리그의 선수들 또한 J리그행을 마다하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로 다가왔다.
물론 J리그가 애초에 의도한 ‘아시아 쿼터제’는 클럽들의 단순한 전력 증강의 목표만을 담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더욱 근본적으로, 이 제도는 수익 창출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찾고자 하는 J리그의 의도에서 비롯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평균 관중 1만8천명을 기록하고 있는 J리그이지만 실상 그들의 관중 수는 근년에 이르러 정체 국면을 맞고 있었다. 스폰서들 가운데 일부도 떨어져나갔다. 결국, J리그는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다른 아시아 국가 선수들에게 좀더 자유롭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을 새로운 시장 개척의 첫걸음으로 여긴 것이다. 실제로 동남아권 국가의 선수들 가운데에는 ‘J리그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이들이 있으며, 선수들을 J리그에 진출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그들의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 여기는 동남아 축구 관계자들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만약 어떤 J리그의 클럽이 이러한 동남아 스타 선수를 영입한다면, 애초의 의도대로 어쩌면 그 국가의 스폰서와 TV 중계까지 획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린 선수 육성 등으로 ‘반전’ 꾀해야

이렇게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될 아시아의 축구판에서 K리그는 과연 어떠한 길을 모색해야 할까?

일단 현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은 얼마간 일리가 있다. 당장에 일본행을 택하는 선수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 대표선수인 이정수를 비롯해 조재진, 박원재, 박동혁, 조성환, 박주성 등의 선수가 이미 일본행을 확정지었다. 대표급·준척급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K리그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축구계의 목소리는 자연스럽다. 어쩌면 좀더 큰 그림으로는, K리그가 J리그의 ‘선수 공급원’으로 전락하면서 J리그를 ‘아시아의 최고 리그’로 보이게끔 하는 서열화 현상을 우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K리그만의 걱정거리는 아닌데, 출범한 지 4시즌밖에 되지 않는 호주의 A리그, 그리고 여전히 좋지 못한 경기력에다 부패와 폭력 문제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중국 슈퍼리그 또한 이러한 서열화의 가능성을 우려할 법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우려에 휩싸여 있기보다, 작금의 상황을 K리그의 기회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K리그가 지니고 있는 기본적 조건들을 십분 활용하고 우리의 내부적 문제들을 하나하나 뜯어고쳐 가기만 한다면 상황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우선, 설사 J리그에 일부 선수들을 넘겨준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든 면에서 손해인 것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K리그 출신의 선수들이 J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줄 경우 그것은 K리그의 수준과 경쟁력에 대한 일종의 광고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클럽들로서는 J리그를 상대로 선수 이적을 통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 수익을 새로운 선수들의 발전과 어린 선수들의 육성을 위해 투자하라. 이는 선수 유출이 리그의 질적 저하로 직결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K리그의 위치는 아시아 전체로 보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이러한 조건이 적극 활용되어야만 한다. 실제로 ‘아시아 쿼터제’가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호주와 중국의 스타 선수들이 K리그로 향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성남 유니폼을 입게 된 호주 수비수 사샤 오그네노브스키는 당초 J리그 입성이 유력하게 점쳐지던 스타 선수이고, 인천 또한 호주 국가대표 제이드 노스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이는 극소수의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샐러리 캡(salary cap)’의 영향을 받는 호주 선수들에게 K리그가 틀림없이 괜찮은 곳이라는 증거이다. 최근에는 시드니FC 미드필더 사이먼 콜로시모의 전남행 이적설도 나오고 있는 상태이다.

K리그는 단순히 ‘J리그의 선수 공급원’이 아닌 ‘아시아 선수 교류의 한 축’을 자임하면서,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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