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예고편’을 조심 하라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2.17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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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허혈발작, 갑작스레 마비 오다 금세 ‘멀쩡’…건강 상식만 지켜도 예방 가능

▲ 일과성 뇌허혈발작은 증상이 가볍고 곧바로 회복되어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시사저널 박은숙
지난해 12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어지러운 증세를 호소하며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병명은 일과성 뇌허혈발작(transient ischemic attack)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낯설지만 고령 사회로 갈수록 흔히 접할 수 있는 질환 가운데 하나이다.

일과성 뇌허혈발작은 뇌로 가는 혈관이 일시적으로 막혀 발생한다. 뇌졸중과 비슷하지만 증상이 경미하고 곧바로 회복되므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뇌졸중보다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질환이다. 뇌졸중의 경우, 이미 뇌의 일부가 손상되어 완벽하게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일과성 뇌허혈발작은 제때 치료하면 뇌 상태를 정상으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방치하면 영구적인 뇌손상뿐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제때 치료하면 뇌 상태 정상

주부 오혜정씨(62·가명)는 2~3개월에 한두 번씩 오른쪽 팔이 저린 경험을 했다. 곧 정상으로 돌아오곤 했기 때문에 단순한 노화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설거지를 하던 도중 오른쪽 팔에 급격한 마비 증세가 오고 언어장애(말더듬)까지 시작되었다. 오씨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고, MRI 촬영 결과 이미 뇌 3군데에 뇌졸중 흔적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빨리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심각한 뇌졸중은 피할 수 있었다.

이 경우처럼 일상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한쪽 팔과 다리에 기운이 빠지고, 한 개의 물체가 두 개로 보이거나 아예 한쪽 눈이 안 보일 때가 있다. 심하게 어지러워 도움을 청하려고 하나 말이 어눌해져 소통에 장애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잠시 후 증세는 사라지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멀쩡해진다. 이런 기분 나쁜 경험을 했다면 일과성 뇌허혈발작을 의심해야 한다. 물론 일시적인 어지럼증과 복시 또는 두통이 발생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므로 병원을 찾아 원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증세가 나타나는 것은 흔히 피떡이라고 알려져 있는 혈전이 뇌로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을 막기 때문이다. 뇌동맥에 지방이 침전되어 혈관벽이 굳어지는 동맥경화가 일어나서 피의 흐름을 감소시키기도 한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일과성 뇌허혈발작은 막히는 혈관 부위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반구성 일과성 허혈발작과 뇌간 일과성 허혈발작이 있다. 반구성 일과성 허혈발작은 목에 있는 경동맥계가 막히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왼쪽 목으로 올라가는 경동맥이 막히면 왼쪽 눈에 이상이 오면서도 운동장애는 오른쪽 몸에 생긴다.

뇌간 일과성 허혈발작은 뇌저동맥계가 막히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경동맥계에 의한 경우보다 뇌졸중으로 진행하기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뇌간은 다양한 운동 감각 신경이 지나므로 증세도 강하게 나타난다. 

원인과 증세가 뇌졸중과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증세가 짧은 시간 나타났다가 곧 사라진다는 점이다. 김경문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로 이어진 혈관이 작은 혈전으로 막혔을 때 강한 혈압이나 몸에서 분비되는 혈전 용해물질에 의해 자연적으로 뚫린다. 심지어 막힌 곳을 우회하는 신생 혈관이 생기기도 한다. 어떻게든 뇌에 혈액을 공급하려는 보상 작용이 일어나 일반적으로 30분 정도 만에 증세가 사라진다. 그러나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과성 뇌허혈발작은 재발과 뇌졸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제때에 치료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일과성 뇌허혈발작 환자 3명 중 1명은 뇌졸중에 걸리며 그중 절반은 1년 이내에 발병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차피 뇌졸중에 걸릴 운명이라면 일과성 뇌허혈발작 증세가 나타났을 때 더욱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뇌졸중을 예방하는 지름길인 셈이다. 

어떤 증상도 못 느끼는 ‘무증상 뇌경색’

증세가 나타나면 병원을 찾아 MRI와 MRA 검사로 이 질환을 확인할 수 있다. 김승민 연세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일과성 뇌허혈발작은 MRI와 MRA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는 증세가 사라졌지만, MRI 촬영을 해보면 뇌세포에 작고 까만 점을 관찰할 수 있다. 잠시 동안이지만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뇌세포가 손상을 입은 흔적이다. 증세가 더욱 경미해서 흔적이 관찰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MRA로 경동맥을 관찰해서 혈관 병변을 확인한다. 정상이라면 혈관이 깨끗하지만, 이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서는 지방 때문에 좁아진 혈관을 관찰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검사 결과 일과성 뇌허혈발작으로 판명이 나면 뇌졸중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는 약물요법과 수술요법이 있다. 혈전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약물로는 항혈소판제(anti-platelet)나 항응고제(anti-coagulant)를 사용한다.

만일 경동맥에 과도한 협착이 생긴 경우라면 혈관을 확장시키는 스텐트(stent) 등으로 경동맥혈관확장술을 한다. 또, 경동맥의 지방을 제거하기 위해 경동맥내막절제술을 한다.

검사 결과 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거나 혈압도 정상이라면 일과성 뇌허혈발작이 아닌 다른 질환일 수 있으므로 전문의와 상담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과성 뇌허혈발작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뇌졸중 형태가 과거 출혈성에서 서구형인 허혈성으로 바뀌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일과성 뇌허혈발작 예방이 중요하다. 다 알고 있는 건강 상식만 지켜도 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 김미애 서울시립북부노인병원 신경과장은 “일과성 뇌허혈발작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뇌졸중 발생 확률이 높다. 환자가 흡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금연을 해야 하며, 혈압이 높으면 혈압을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체내 콜레스테롤과 혈당 수치가 높다면 정상 범위로 낮춰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뇌로 가는 혈관이 막혀 뇌졸중이 일어났지만 어떤 증상도 느끼지 못하는 ‘무(無)증상 뇌경색’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혈관이 막혀 뇌세포는 죽었지만 다행히 죽은 세포가 크게 중요하지 않거나 그 범위가 작아서 마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이다. 이때도 본격적인 뇌졸중이 생길 가능성이 크므로 경동맥을 자세히 검사해보아야 한다. 평소 숨이 차고, 뚜렷한 이유 없이 기억력이나 사고력이 조금씩 떨어진다면 무증상 뇌경색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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