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내 폭력은 반드시 추방해야 할 사회악이다
  •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 승인 2009.03.10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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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 접할 때마다 국민의 위신·자존심이 땅에 곤두박질치는 기분…방지법 제정보다 징계위원회 적극 활용하라

▲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법과 사회 제도는 사회 갈등을 조절하고 해결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폭력도 사회 갈등을 푸는 하나의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특히 그런 사람들이 법을 만드는 국회에 있다는 사실이 국민은 믿어지지 않는다. 사실상 국회 내 폭력 등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끔 의회 내 폭력 사건이 외신에 보도될 때에는 우리 국민의 자존심과 위신은 땅에 곤두박질치고  낯이 확 뜨거워진다. 그때 국민은 국회를 해산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고성, 막말, 욕, 몸싸움, 기물 파손 등을 하지 않고는 국회에서 법안을 만들 수 없는 것일까. 품위 있는 말과 대화 그리고 타협이란 대한민국 국회 사전에는 없는 것일까. 정치하기가 그렇게 힘든가.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에 정치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또 무슨 아이러니인가.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넷에 ‘정치하지 마라’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현실 정치인이 처하게 되는 여러 가지 난관들을 언급했다. 그중 정치인들 간의 이전투구가 있다. 그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큰 나라에서는 자연 (정치권의) 싸움이 거칠어지고 패자에 대한 공격도 가혹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싸움판에서 싸우는 정치인들은 스스로 각박해지고 국민으로부터 항상 욕을 먹는 불행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 글의 취지는 정치인을 위한 변명 차원의 글 같은데, 뭐라고 변명해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거친 싸움과 싸움판은 국민으로부터 욕을 먹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정치인과 싸움판은 비난받고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지 조금이라도 국민의 이해를 구할 정치인의 ‘불행’은 아니다. 의회 내 거친 싸움이나 폭력이 우리나라 현실 정치의 불가피한 한계도 아니다. 국회에서 거칠게 싸우지 않고서라도 얼마든지 정치를 할 수 있고 법도 제정할 수 있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승복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머릿속에 없는 한심한 정치인들이 문제인 것이다.

정치인들의 머릿속에는 모사 아니면 투쟁과 폭력 개념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 정치인들은 너무나도 폭력에 친숙하고 그들 자신의 폭력에 대해 관대하다. 그들은 폭력 수단을 마치 의회주의의 마지막 보루처럼 인식하고 치외법권적인 권리처럼 억지로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폭력은 이성과 사회 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국회 내 폭력은 의회주의의 부정이다.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 상황은 국민적 지지를 못 받는 군사 독재 같은 억압적인 질서에 대한 저항과 전복을 할 때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사회 상황이 국회 내 폭력을 정당화할 정도인가? 프롤레타리아 폭력 혁명이 정당화될 정도로 대한민국 자본주의가 부패하고 사회 갈등이 통제 불능 상태인가? 오히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어갈수록 국회의 갈등 조정 역할은 더욱 중요하고 책임 또한 커지는 것이다. 국회마저 폭력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 난장판이 된다면 이 나라는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게 된다.

국회에서는 집권 여당의 프리미엄이나 다수당의 횡포로 비치는 의원 수의 게임을 보게 된다. 다수당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와 권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은 이른바 제도화된 권력, 정당화된 권력이지 폭력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의회라는 곳이 다수결의 횡포라는 숫자 게임만을 하는 곳은 아니다. 소수당에도 국민의 의사가 있는 만큼 이를 적절히 배려하는 타협의 기술을 거대당은 가져야 한다.

▲ 민주당 당원들이 한나라당의 한·미 FTA 비준안 단독 상정을 막기 위해 회의장 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오른쪽). 왼쪽은 몸싸움을 하다 넘어진 민주당 서갑원 의원. ⓒ연합뉴스(왼쪽), 시사저널 유장훈(오른쪽)

난장판 국회는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어

그러나 타협이 안 되거나 만족할 만한 중재안이 아니라고 소수당이 폭력 등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할뿐더러 불법 행위이다. 타협 없이 수로 밀어붙이는 거대당의 처리 방식은 불법 행위는 아니지만 물리적 폭력이 아닌 상징적 폭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역시 사회적 비판을 면할 수는 없다. 그 어떠한 합법적인 행위나 제도적 행위도 거시적으로 보면 상징 폭력이 될 수 있다. 때로는 국가도 상징 폭력의 기제로 작동할 수 있고, 국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인들은 각기 처한 입장에서 보면 상대방의 행위들이 모두 폭력적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승인된 폭력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의회 내 폭력은 사회적으로 승인된 폭력이 아닐뿐더러 추방되어야 될 사회악이다. 

폭력 옹호론자들은 정치적 상생을 외면한 채 상대방을 파괴해야 할 상대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의회 내에 상대방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서 폭력을 사용해 상대방의 의사 표명을 막고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정치인들이야말로 반의회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사람들이다. 폭력 옹호론자들은 의회 내 프로레타리아 혁명이라도 꿈꾸는 듯이 행동하는 야만적 몽상가일 뿐이다. 그들은 다수결의 민주주의 원칙에 염증을 느끼는 염세주의자인 척하며 폭력을 휘두르다가도, 정작 그들이 다수당이 되면 과격한 다수결 원칙론자가 되곤 한다. 이처럼 거듭되는 정치인들의 카멜레온식 변신과 함께 고질적인 의회 폭력의 병폐를 보면서 우리 어린이와 청년들이 국회에서 배울 점이 과연 무엇일까.

사회에서는 여러 갈등이 폭력으로 표출되더라도 국회에서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회는 각계 각층의 다양한 국민의 이해 관계와 의사를 대표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곳이지, 갈등을 폭력으로 표출하는 곳이 아니다. 국회 내 단식이라는 비폭력적 투쟁 행위도 표출해서는 안 되며, 국회의원이 가두 시위 등 장외 투쟁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모두는 국회 본연의 기능이 아니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내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국회폭력방지특별법 제정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법 제정보다는 국회 내 징계위원회를 내실 있게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다. 국민소환제도도 사후 약방문격이고 사회적 비용 손실이 크다. 그냥 국민이 폭언, 폭력 의원을 기억하고 투표를 통해 심판을 하면 될 것이다.

징계받고 국민 심판을 받기 전에, 무엇보다도 소수당이나 거대당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타협 없이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거나 입안 절차를 지연시키는 폭거적인 관행을 이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회 내 폭력을 근절할 수 있느냐는 결국, 의원들의 자정 노력과 우리 국민의 기억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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