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환자 죄인 취급 말라”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3.2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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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인 박영일씨 인터뷰 / “우리를 의심하는 눈빛으로 보지 않았으면…”

ⓒ시사저널 임영무

최근 충북 제천시에서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증)에 감염된 택시 기사가 수십 명의 여성과 무분별한 성관계를 가진 사건이 발생해 큰 충격을 주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1985년부터 2008년 말까지 집계된 에이즈 감염인 수는 6천1백20명. 이들 가운데 1천84명이 사망했고, 5천36명이 살아 있다.

그렇다면 이들 에이즈 감염인은 이번 택시 기사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기자는 한 포털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에이즈 감염인들의 카페에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자, 3시간 만에 다섯 명의 감염인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건으로 충격을 받았으며, 감염인들에 대한 비(非)감염인들의 인식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심정을 전했다.

서울에 사는 40대 중반의 한 남성 감염인은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소개하며 “그 택시 기사는 성도착증 환자였던 것 같다. 그런데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가 마치 바이러스를 전파하려고 했던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경북 상주에 사는 40대 중반의 감염인은 “에이즈는 무섭고 더러운 병이 아니다”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지난 3월17일 저녁 서울에 사는 56세의 에이즈 감염인 박영일(가명)씨를 만났다. 그는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고, 열여섯 살인 1968년 상경해 다방과 식당, 주방 등에서 일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아 분식점과 찌개 전문 식당을 차리기도 했다. 그런데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그는 자신이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1993년 자신의 식당을 담보로 지인의 대출 보증을 섰다가 잘못되어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대전에 내려가 목수 일을 배워 전국을 돌며 주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그러다 49세 되던 2002년, 여섯 살 연하인 중국 교포 여성과 처음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그는 현재 한 민간단체에서 청소 일을 하면서 월 80만원을 받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다음은 그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언제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나?

2005년 가을쯤이었다. 서울에 모임이 있어 대전에서 올라왔는데,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남았다. 때마침 어느 술집 앞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30분 만에 에이즈 검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검사를 받았다. 내가 양성애자여서 한 번쯤 검사를 받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양성 반응이 나왔다. 보건소 직원이 2주 후에 다시 보건소로 전화하라고 했다.

처음 감염된 사실을 알았을 때 심정은 어땠나?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공황 상태라고 할까. 보건소 직원이 뭐라고 주의를 주는 것 같았는데, 하나도 안 들렸다. 그날 모임에도 못 가고, 바로 대전 집으로 내려갔다. 어떻게 집에까지 갔는지도 몰랐다. 정신 차리고 보니 집이었다.

그 후 어떻게 지냈나?

2주 후에 보건소로 전화를 했더니, 남자 직원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은 채 ‘거기 어디냐. 보건소로 나오라’라고만 했다. 이후 나는 자포자기 상태였다. 하던 일도 집어치우고 식음을 전폐한 채 술로 살다시피 했다. 그때는 치료제를 복용하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러다 2006년 초에 집을 나와 여관에서 지냈고, 노숙자 생활도 했다. 그해 4월에는 시너를 끼얹고 자살을 시도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서울에 있는 병원이었다. 3도 화상을 입었고, 10개월 동안 입원해 있었다.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감염된 사실을 집사람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일절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자살 시도를 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내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이 알았던 것 같다. 2007년 2월 말에 퇴원해서 집에 가보니, 집사람이 없었다. 나도 내가 짐만 될 것 같아서 집사람을 찾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집사람을 찾으려고만 하면 찾을 수 있겠지만, 찾지 않고 있다. 이혼한 것은 아니다. 퇴원한 후에는 친동생들과도 만난 적이 없다. 지금은 명절이나 부모님 제삿날에만 전화 통화를 한다. 나 스스로 가족 관계를 청산한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나?       

한동안 고시원에서 혼자 살다 ‘아름다운 가게’라는 단체에서 무상으로 2백만원을 지원받아 월세 20만원짜리에서 살았다. 지난해 12월부터는 감염인 남성 셋이서 보증금 4백만원에 월 25만원짜리 월세 방에서 살다가 최근 한 사람이 나가고 지금은 둘이서 산다.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떤가?

세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백혈구를 상승시키면서 면역 수치를 높여주는 약을 받아온다. 처음 감염된 사실을 알았을 때는 CD4+T세포 수가 300개/㎣였는데, 약을 꾸준히 복용했더니 지금은 700~900개/㎣ 정도로 늘어났다. 거의 정상에 가깝다. 그래도 힘들기는 하다(CD4+T세포는 우리 몸을 지켜주는 면역 체계를 담당하는 세포로, 비감염인 성인의 평균 CD4+T세포 수는 800~1200개/㎣이다).

후회하지 않나?

에이즈에 감염된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분신 자살을 시도하는 바람에 흉터가 남게 된 것을 후회한다. 만약 감염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치료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정부가 무료로 진료해주고 약을 준다는 사실만 알았다면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에이즈에 감염된 택시 기사 사건이 터졌다.

참, 암담하다. 우리 감염인들을 돌멩이로 내려찍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을 다룬 보도를 꼼꼼히 보고 있다. 그런데 흥미 위주로 보도되는 것 같다. 언론이 에이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전해야 하는데, 감염인과 한 번 성관계를 가지면 무조건 감염되는 것처럼 보도한다. 그리고 정말 그 택시 기사가 수십 명의 여자에게 에이즈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려고 그랬을까. 절대로 전파시키려고 그랬다고 보지 않는다. 사람이 양심이 있지. 사람들이 그 택시 기사 때문에 다른 감염인들을 의심하는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절대 그렇지 않다(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인과 콘돔 없는 1회 성관계로 감염될 확률은 0.1~1% 정도이다).

예전에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비관하다 불특정 다수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려 했던 사람도 있지 않았나?

지금까지 복수심을 갖고 바이러스를 전파하려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복수심을 갖는다는 말인가.

정부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감염인에 대한 관리 체계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관리라는 말 자체가 맞지 않다. 왜 우리가 관리를 받아야 하나. 관리를 하려 한다면 정부에서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솔직히, 사는 데 낙이 없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이지(박씨는 이 대목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나보다 경제적으로 힘든 감염인들을 돕고 싶다. 직장도 없이 쪽방에 사는 불쌍한 감염인들이 많다. 그들을 돕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영구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꿈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가 중요하다. 절대 자포자기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생활이 1백80˚ 달라진다. 정확한 정보를 습득해서 약으로 치료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한편, 택시 기사 사건이 터진 충북 제천시의 의사회는 지난 3월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에이즈는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에 불과하다. 에이즈에 대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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