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짭짤해 수입산에 손대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4.0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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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국산만 취급하겠다더니 수입 쇠고기 유통 재개…주한미군에도 수입 과일 납품

▲ 서울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의 한 창고에서 바나나·오렌지 등 수입 과일을 지게차로 납품 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농협이 외국 농산물을 수입해 수익을 내고 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앞으로 쇠고기를 포함한 외국산 농축산물을 수입하거나 판매하지 않겠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3월10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에 출석해 한 말이다.

그는 이전에도 비슷한 말을 했다. 농협을 겨냥한 수입산 농축산물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더 이상은 판매하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양치기 소년’이 될 처지에 놓였다. 농협은 4월1일부터 국방부에 수입 쇠고기를 납품하기로 했다. 지난 8월 이후 중단했던 쇠고기 수입도 6개월 만에 재개했다.

수입 쇠고기의 경우 그동안 자회사인 NH무역이 취급해왔다. 이번에는 아예 농협중앙회에서 직접 수입 쇠고기를 납품하겠다고 나섰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한 관계자는 “농협유통에는 지난해 9월 수입 쇠고기 유통을 중단하면서 상당한 재고가 남아 있다. 국방부에 납품을 재개하면 재고 물량을 우선 공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국방부 납품을 빌미로 유통 중단되었던 재고 물량 풀어


<시사저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농협이 수입 쇠고기 유통을 중단할 당시 가지고 있던 재고 물량은 2천5백여 t에 이른다. 현금으로 환산하면 1백50억원 규모이다. 당시 농협은 소매가 아닌 도매를 통해 이 물량을 팔아넘기고 수입산 유통에서 손을 뗄 작정이었다. 국회에도 그런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 물량은 고스란히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판매 중단을 선언한 이후 처분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농협이 국방부 납품을 빌미로 수입 쇠고기 판매를 재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농협 축산유통부의 한 관계자는 “갈비 등을 제외한 재고 물량이 1차로 국방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농협은 전시는 물론이고 평시에도 군의 부식을 조달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어차피 쇠고기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 군납 외에 다른 용도로 판매할 계획은 전혀 없다”라고 강조했다.

국방부측도 “예산상 어려움으로 당분간 농협이 공급하는 수입 쇠고기를 써야 할 형편이다. 농협이 납품을 포기하면 일반 업체들 간에 조달 경쟁이 벌어져 가격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회와 농민단체들은 농협이 차제에 수입산 농축산물에 다시 손을 대는 것이 아니냐며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군납용으로 쇠고기를 수입했지만 실제 더 많은 물량을 들여와 다른 용도로 유통시킨 전례가 많았다. 같은 상황이 재연되지 않으라는 법이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곽길자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국장은 “농협은 농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다. 이런 상징성을 무시하고 농협이 농가를 파탄으로 내몰 수 있는 쇠고기 수입을 계속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개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시민단체에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군에 납품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의심하기도 한다. 농협측은 이에 “호주산이나 뉴질랜드산을 들여온다”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우려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3월11일에는 국방부 앞에서 ‘국방부의 수입 쇠고기 급식 재개 중단’을 촉구하는 농민단체 및 시민단체들의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이들은 “국방부의 공문을 보면 농협이 납품하는 쇠고기를 수입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부진한 국내 판매를 만회하기 위해 군인들을 동원하려는 것은 아니냐”라고 따졌다.

농협의 농축산물 수입을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농협은 그동안 자회사인 농협유통을 통해 수입 농산물을 국내에 판매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판매 중단을 선언한 이후에도 수입산 제품의 유통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농산물을 주한미군에 납품하며 수입산을 끼워넣기도 해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3월25일 새벽 3시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농협하나로클럽. 건물 뒤편의 한 창고에서는 농산물 납품을 위한 집하 작업이 한창이었다. 가락동 등에서 모인 농산물이나 과일은 패킹 작업을 거쳐 필요한 곳으로 옮겨가게 된다. 새벽 4시가 되자 주한미군 사병식당에 납품할 트럭 3대가 도착했다. 창고 앞에 주차된 트럭으로 농산물을 실은 지게차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농협유통 관계자는 “최근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이 있었다. 때문에 조달량이 평소의 2~3배 늘어 모자란 물량을 맞추느라 힘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창고 안을 둘러보니 각종 식자재들이 대형 선반에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그중에는 보여서는 안 될 농산물이 많이 눈에 띄었다. 바나나(필리핀산), 포도(칠레), 오렌지(미국) 등 수입 과일이 국산에 끼어 진열되어 있었다. 농협유통측에 확인한 결과 올해 주한미군 납품 예상액은 60억원 정도이다. 농협은 이 중 13%인 8억2천만원 상당의 수입 과일을 지난해 주한미군에 납품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협유통측은 이에 대해 “미군은 미국 본토에서 공수할 수 없거나 운송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식자재가 있을 경우 농협 유통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농협 “단가나 물량 문제로 불가피”…국회에서 논란 예상

그러나 가락동시장의 한 농산물 도매상은 “농협유통은 지난 2000년부터 주한미군 커미서리에 식자재를 납품하고 있다. 국내 농가에서도 얼마든지 관련 자재를 모아 수입 농산물을 대체할 수 있다. 단가가 맞지 않다거나 물량이 부족해서 수입산을 공급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24시간 운영되는 하나로마트 내부에서도 수입산 제품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매장의 경우 국산이 대부분이지만 사업자 회원 전용인 식재료 전문매장의 곳곳에서 수입산이 발견되었다. 매장 관계자는 “대부분의 농산물은 국산으로 대체했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 일부 제품에는 수입산을 댈 수밖에 없다”라고 털어놓았다. 농협유통측도 “매장을 찾는 손님들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제품을 구입하기를 희망한다. 수입산이라도 구색 맞추기를 위해 일부 제품 판매가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납품 과정에 수입 과일을 끼워놓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농협유통 관계자는 “그동안 수입 제품을 국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매출 단가를 비롯해 여러 사정을 따지다 보니 쉽지가 않았다. 수입산을 다루지 않는다는 원칙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예외적인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들여오는 수입산의 경우 시판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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