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잘 봐야 우리가 산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4.1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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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게 희망 주는 임상시험, 효험에 대한 기대 너무 커 부작용도

ⓒ시사저널 이종현

최근 세포면역치료제를 투여한 폐암 환자에게서 3년 동안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는 임상시험(clinical trials) 결과가 미국 베일러 대학 연구팀에 의해 보고되었다. 세포면역치료제는 면역세포를 혈액에서 채취한 다음 배양해서 증식시킨 것으로 다시 몸속에 투여되어 암세포를 제거한다. 기존 항암제는 암세포를 죽이지만 면역체계까지 파괴해서 재발과 전이를 방치하는 결과를 빚어왔다. 면역치료제는 암의 재발과 전이를 막는다는 점에서 획기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신약은 이렇듯 난치병이나 만성질환 환자들에게 희망을 준다. 신약을 환자에게 적용하려면 장기간 임상시험을 거친다. 임상시험은 동물이 아닌 사람에게 직접 시험하는 단계이다. 따라서 환자에게 임상시험은 한 줄기 희망이다.

2004년 8월,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김이수씨(63·여·가명)는 6가지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거의 자포자기한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신약 임상시험을 받은 이후 빠른 속도로 병세가 호전되었다. 지금은 증상이 약화된 관해(寬解)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임상시험의 효험에 대한 기대가 커진 이면에는 문제점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무작정 임상시험에 매달리려 하거나 시험 후 효과가 없으면 실험용 모르모토로 끝났다는 좌절감에 빠져 병세가 더욱 악화되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동물 대상 시험 반드시 거쳐야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환자 입장에서는 임상시험이 신약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은 틀림없지만, 시험 과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치료 효과와 부작용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신약 개발 단계여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가 임의로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임상시험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전 임상시험(preclinical trial)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신약 후보물질(candidates)의 효능을 1차적으로 확인하는 단계이다. 유전, 생식, 발암, 장기 투여, 고용량에 따른 독성 여부를 확인한 다음 사람에게 투여할 용량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안정성이 담보되어야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임상시험 승인 신청(IND)을 해야 한다. IND를 받아야 하는 의약품은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신약, 해외에서 개발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신약, 해외 개발국 외에 사용된 적이 없는 신약, 살정제 이외의 피임제, 식약청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품목 등이다.

식약청 허가를 받은 제약사는 정부가 지정한 병원에 임상시험을 의뢰한다. 임상시험을 의뢰받은 병원은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를 조직해 자체 승인 과정을 거친다. 약 9명의 의료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구성된 IRB는 임상시험의 피험자에 대한 안전 보호 대책, 피험자의 선정, 피험자 보상 규정 등 윤리적·과학적 타당성을 심사한다. IRB가 임상시험을 승인하면 병원은 인터넷 홈페이지, 언론, 원내 게시판 등을 통해 지원자를 모집한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려면 대학병원급 의료 기관에 설치된 임상시험센터를 방문해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2곳의 임상시험센터가 있다. 그러나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 피험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혈액·간장·신장·심장 질환이 없어야 하며 다른 약을 병용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남문석 인하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은 “임상시험센터는 지원자에게 예측 효능, 부작용, 위험성, 피해 발생시 보상 및 치료 대책, 신분 보장, 인권 보호 등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 또, 지원자는 임상시험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 후 참여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연구에 대한 설명을 명확하게 이해한 지원자는 서면동의서에 사인한다. 서면 동의가 끝나면 지원자는 임상시험에 적합한지 사전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검사에 합격한 지원자는 비로소 피험자로서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된다. 지원자 100명 중 30명은 여러 검사 과정에서 탈락한다.

만일 임상시험 도중 예측하지 못한 사고나 부작용 등이 나타나면 연구 활동은 자동 중단되고 임상시험센터는 피험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도록 되어 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제약사는 보험에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보상 규모가 보험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제약사는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신청한다고 모두 피험자가 될 수는 없어

임상시험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 단계마다 지원자를 따로 모집한다. 각 단계의 결과물은 모두 식약청 자문 기관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 보고된다.

첫 단계는 1상 임상시험(phase I)으로 약물의 안전성 확인이 주목적이다. 50~100명의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약물의 흡수·분포·대사·배설(ADME) 과정을 검사한다. 사회적 통념상 환자는 약자이므로 건강한 사람이 먼저 시험에 참여한다.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2상 임상시험(phase II)에서 이루어진다. 100~3백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약의 유효성과 안정성을 증명하는 단계이다. 이 과정에서 약의 투여 용량을 정하고 3상 임상시험(phase III)의 진행 여부도 결정한다. 환자는 이 단계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 신약을 처음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효과가 좋으면 생명을 연장하거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3상 임상시험에서는 1천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약물 투여에 따른 유효성을 확증한다. 드물지만 치명적인 부작용도 확인한다. 사실상 임상시험 약물의 최종 평가를 내리는 단계이므로 좀더 객관적인 결과물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중맹검실험(double blind test)을 한다. 의료진과 피험자가 모르게 진짜 약과 가짜 약을 투여해서 효과를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약의 효능, 효과, 용법, 용량, 사용상의 주의사항 등을 결정한다.
3단계의 임상시험을 거친 신약은 학회나 언론을 통해 발표된다. 그렇다고 해서 신약을 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약사는 식약청에 임상시험 결과물과 함께 신약 승인 신청(NDA)을 해야 한다. NDA가 받아들여지면 신약을 판매할 수 있다.

일반 환자는 2상 임상시험부터 참여할 수 있지만 암환자는 예외이다. 임상시험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신약이 출시될 때까지 생명을 유지할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환자는 1상 임상시험부터 참여할 수 있다. 또, 일반 신약이 3상 임상시험 이후에 NDA를 받을 수 있지만 항암제는 2상 임상시험만 마치면 가능하다.

하지만 임상시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PMS(post marketing surveillance)라는 4상 임상시험을 통해 신약 시판 후 안정성을 재검사한다.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 경험, 유효성, 안정성을 관찰하고 용법과 용량에 따른 부작용을 살피는 이른바 신약 시판 후 조사 단계이다.

모든 나라가 다국적 제약사의 임상시험 수주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치료제는 민족·유전·인종에 따라 용량과 효능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가 신약에 많이 적용될수록 우리나라 환자에게는 득이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임상시험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은 존재한다. 사람을 실험용 쥐와 같은 존재로 취급하는 윤리적인 문제 때문이다. 신상구 국가임상시험사업단장은 “임상시험은 후진국이 아니라 선진국에서 주로 한다.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본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전 임상시험을 거쳐 안정성이 입증된 신약만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는 것이다. 또, 윤리적·과학적 안전장치를 두고 하는 시험이므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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