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의 ‘빛’이 된 감동의 선율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9.04.2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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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화제 영화 <솔로이스트> 개봉 … 정신분열증 앓는 흑인 연주자 일대기 그려

▲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칼럼니스트 스티브 로페즈(오른쪽)와 흑인 첼로 연주자 에이어즈왼쪽). 오른쪽 사진은 영화 에서 에이어즈와 로페즈를 각각 연기한 제이미 폭스(왼쪽)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www.latimes.com(오른쪽), www.soloistmovie.com(왼쪽)

할리우드 영화 <솔로이스트>(The Soloist, 독주자)가 오는 4월24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된다. 엑스트라로 출연한 5백명의 진짜 홈리스들이 영화 촬영을 하면서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기념 파티 현장에서 인기 스타를 비롯한 미국 영화계 저명 인사들과 함께 건배를 외친 지 1년 만이다.

<솔로이스트>는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홈리스로 살던 흑인 첼로 연주자 나다니엘 앤서니 에이어즈(58)의 일대기를 영화한 것이다. 에이어즈는 실존 인물이다.  밤이면 우범지대로 변하는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30년 넘게 사는 에이어즈는 음악 영재로 세계적 명문 음악대학 줄리어드를 다니던 20대 초반 정신분열증을 앓으면서 홈리스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또 자동차가 달리는 터널 속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바이올린은 두 줄이 끊어져나가고 공명통도 깨지다시피 했다. 주인의 신세나 비슷한 보잘것없는 2현짜리 악기였다. 그는 홈리스의 전재산을 싣고 다니는 마켓 카트에 이 바이올린을 모시고 다녔다. 연주자로서의 꿈은 잃었지만 음악인으로서의 삶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05년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스티브 로페즈를 만나면서 분리되었던 자신의 꿈과 삶을 재결합하고 미래를 되찾는다. 영화 <솔로이스트>는 에이어즈의 이야기이지만 그와 로페즈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 크랭크인 기념 파티에 출연자로 나온 5백명의 홈리스들 초청

원작은 스티브 로페즈가 쓴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칼럼과 그의 다큐멘터리 <픽션 솔로이스트>이다. 로페즈는 2005년 4월부터 그해 말까지 매달 에이어즈에 관한 칼럼을 신문에 연재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4년 동안 에이어즈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소개하는 칼럼으로 연재를 마쳤다. 로페즈가 책을 출판한 다음 해인 2008년 4월은 <솔로이스트>를 크랭크인한 시점이기도 했다. 출판기념회와 크랭크인 기념 파티에는 감독 라이트가 요구한 대로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5백명의 홈리스들이 초청되었다. 로페즈의 첫 신문 칼럼 제목은 ‘두 줄에 세상을 실은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로페즈는 이 칼럼에서 에이어즈의 당시 상황을 그리고 있다. 다운타운의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면서 바이올린을 켜는 에이어즈를 만나는 것은 로페즈에게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에이어즈는 자신의 음악적 영감을 유지하기 위해 그가 가장 존경하는 악성 베토벤의 동상이 있는 다운타운의 퍼싱스퀘어 주변을 맴돌았다. 퍼싱스퀘어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빌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에이어즈가 퍼싱스퀘어를 주 무대로 삼은 것은 이곳에 베토벤 동상이 있기도 하지만 바로 건너편에 공공 도서관이 있어 필요할 때 이 도서관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작곡가의 악보를 베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에이어즈는 오렌지색 마켓 카트에 ‘리틀 월터 디즈니 콘서트 홀’이라고 쓰고, 레퍼토리로 ‘베토벤’을 써놓았다. 로페즈는 에이어즈의 연주 솜씨가 뜨내기의 실력이 아님을 발견하고 개인 이야기를 캐물었다.

 에이어즈는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여동생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중학교 시절 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해 세계 정상급의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의 첼리스트 해리 바노프에게 사사하고 뛰어난 음악적 소질을 인정받으면서 줄리어드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줄리어드 2년차 시절 느닷없이 찾아온 정신분열 증세로 에이어즈는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는 클리블랜드로 돌아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았으나 현실과 망상의 세계를 오가면서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고, 길거리에서 잠자기 일쑤였다. 그리고 언제인지 불확실하지만 로스앤젤레스로 흘러들었다.

 로페즈는 에이어즈가 정신적으로 안정된 짧은 시간을 틈타 그의 지난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의 바노프는 에이어즈 소식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줄리어드의 스승 호머 멘쉬 교수는 에이어즈를 ‘뛰어나게 재능 있는 학생’이었다고 확인했다. 그리고 에이어즈가 기억하는 줄리어드 동문들의 이름과 그가 줄줄이 기억하는 그들의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로페즈는 에이어즈의 지난 행적을 찾아나갔다. 로페즈는 에이어즈로부터 여동생 제니퍼의 전화번호를 받아 그녀에게 오빠의 소식을 전했다. 제니퍼는 30년 만에 오빠 소식을 들었다.

 에이어즈는 처음에 콘트라베이스를 배웠으나 나중에 첼로로 악기를 바꾸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홈리스가 되고 나서부터였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홈리스가 첼로를 가지고 다니기에 불편해 부피가 작은 바이올린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그가 현재 갖고 있는 글레이절 바이올린은 어린 시절 오하이오 주 린드허스트에 있는 악기점 모터에서 구입한 것이다. 로페즈는 이들 악기점에서 현 2개를 구해 에이어즈의 악기를 4현 바이올린으로 고쳐주었다.

 로페즈의 첫 칼럼이 신문에 게재된 뒤 에이어즈는 인접 카운티인 인랜드 카운티의 독지가로부터 새 첼로를 기부받았다. 그는 로페즈의 권유대로 우범지대 도둑과 강도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첼로를, 밤에는 로스앤젤레스 정신병환자 수용소 램프(LAMP)에 맡겨두고 아침에 찾아갔다. 그러나 LAMP의 수용소 시설에 거주하라는 권고는 거절했다.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곳보다는 신선한 공기가 있는 길거리에서 잠자겠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홈리스 9만명이 ‘청중’…수용소 거주 거절해

 에이어즈의 연주는 낮에는 퍼싱스퀘어나 길거리에서 이루어졌다. 지나가는 행인은 청중이었고,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버스는 큰북이었으며 자동차 크랙션은 팀파니였다. 에이어즈는 해질녁이면 자동차 터널 속에서 연주했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굉음과 함께 자신의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가 터널 속에서 되돌아오는 반향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는 터널을 커다란 공명통으로 생각했다.

 에이어즈와 로페즈의 우정은 신데렐라 이야기 같은 ‘콘서트홀 이벤트’에서 더욱 빛났다. 로페즈는 음악가에게 꿈의 무대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측에 부탁해 에이어즈의 방문을 주선했다. 이곳 방문을 위해 에이어즈는 10차례 이상 샤워를 하고 모처럼 세탁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에이어즈는 콘서트홀의 홍보 담당으로부터 귀빈 대접을 받으며 음악당 내부 시설을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홀 안으로 들어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베토벤 교향곡 3번 <에로이카> 리허설을 참관했다.

 에이어즈는 리허설 참관 후 꿈의 연주장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영광을 누린다. 무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청중도 없었다. 그는 진정한 솔로이스트였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홈리스 9만명의 새로운 빛이 되었다. 그리고 에어이즈는 새로운 9만명의 청중을 얻었다. 이는 영화 <솔로이스트>가 현실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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