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테마파크가 몰려온다
  • 안성모·김지혜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4.2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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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마운트·MGM·유니버설 설립 가시권에 들어…국내 업체들도 콘텐츠 보강에 부심

 

▲ 일본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뉴욕 구역에서 펼쳐지는 퍼레이드(왼쪽). 여름에 마련하는 워터 퍼레이드에서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있다(오른쪽). ⓒ연합뉴스

 

2013년 4월 어느 화창한 토요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에 사는 김 아무개씨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봄나들이를 가려고 자동차에 올랐다. 테마파크로 가려고 마음먹고 네비게이션을 켜자 눈에 띄는 후보지는 여섯 곳. 김씨는 얼마 전 개장한 해외 라이선스 테마파크 중 하나를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고민이다. 파라마운트 무비파크, MGM 스튜디오파크, 유니버설 스튜디오 가운데 어디로 갈지를 선택해야 한다.

김씨 가족은 인천 송도에 있는 파라마운트 무비파크로 갔다. 넓은 호수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분수 쇼와 울긋불긋 화려한 색채를 뽐내는 퍼레이드. 여기까지는 기존의 놀이공원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자 예전에 보았던 테마파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영화와 만화를 통해 만났던 익숙한 캐릭터를 활용한 콘텐츠가 즐비하다. 멀리 영화 <타이타닉> 세트장에는 거대한 배가 호수에 둥둥 떠 있다. 김씨는 딸의 손을 잡고 영화 속 타이타닉호에 탑승하듯 호수에 정박한 배에 올랐다. 대형 스크린 속 타이타닉호는 바다 속으로 침몰하기 시작한다. 방송으로 위험을 알리는 선장과 비명을 지르는 아이들. 마치 바다 위에 있는 것처럼 물이 튀고 스며들어 옷을 적신다. 침몰 직전의 승객이 느끼는 공포심을 경험한 관람객들은 배가 반 이상 가라앉기 시작하자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가까스로 탈출했다. 이렇게 김씨 가족은 ‘타이타닉 체험’을 마쳤다.

MGM 스튜디오파크도 영화를 재현한 시설이 있다는 점에서 파라마운트 무비파크와 비슷하다. 이 테마파크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MSCK측은 “MGM 영화사의 콘텐츠 외에도 싸이더스 iHQ와 같은 국내 엔터테인먼트업체가 보유한 한국 영화 콘텐츠도 활용하겠다”라고 밝혔다.

수도권에 설립을 추진 중인 이러한 해외 라이선스 테마파크는 굵직한 것만 서너 개이다. 그중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2011년 인천시 송도에 세워지는 파라마운트 무비파크, 2012년 인천 영종도에 들어서는 MGM 스튜디오파크, 2013년 경기도 시화호 부지에 생길 유니버설 스튜디오 세 군데이다. 경기도 하남시에 들어오려던 워너브라더스 테마파크는 경기 불황으로 설립 여부가 불확실하다. 해외 테마파크 설립을 추진하는 사업자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구체적인 설립 과정을 협의하고 있다.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경기 불황 때문에 투자를 약속했던 기업이 컨소시엄에서 빠져서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거나, 참여 주체가 변경되어 완공 예정일이 1년씩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방자체단체와 달리 중앙 정부는 비슷한 테마파크가 수도권에 중복된다며 허가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건축 자재나 조명의 밝기까지 간섭하는 까다로운 미국 본사와의 협의 과정도 넘어야 할 산이다.

과잉·중복 투자 논란에 사업 전망도 엇갈려

그런데도 수도권이 해외 라이선스 테마파크 설립 경쟁 열기로 달아오르고, 심지어 중복 설립 양상까지 띠는 것은 참여 기업들과 지자체들이 테마파크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주 5일제로 바뀌면서 여가 인구가 늘어나 수익성이 높고, 중국 및 동남아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테마파크를 골프장, 호텔, 쇼핑몰 등과 연계시켜 가족 중심의 관광객을 붙잡겠다는 야심도 있다.

MSCK측은 “투자사 중 하나인 SK건설이 빠졌지만 테마파크 설립은 예정대로 추진한다”라고 밝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설립을 추진하는 USR AMC측도 “조감도나 구체적인 테마는 확정된 것이 없지만 내년 초에 착공해서 2013년에는 완공할 예정이다”라며 설명했다. 인천시 권한으로 설립 허가를 받아 추진하는 파라마운트 무비파크는 일찌감치 행정 절차를 마치고 2008년 12월3일 가장 먼저 공사에 착수했다. 2010년 워터파크와 리조트를 개장해 관람객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이 현실화하면 수도권에는 대형 테마파크만 무려 6곳이 된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나들이 장소를 찾는 부모나 데이트 코스를 찾는 연인들은 선택 범위가 넓어졌지만 사업 측면에서 전망은 엇갈린다.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박석희 교수는 “일본 오사카에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들어올 때 도쿄에 디즈니랜드가 있다는 이유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성공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요가 있어 테마파크마다 차별성을 두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반면, 추진되는 테마파크의 성격이 서로 비슷하다는 측면에서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레저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여가 인구가 늘어나면서 테마파크 시장은 전반적으로 커졌지만 경쟁이 치열해져서 이익을 내기 힘들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행정적인 문제도 미묘하게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파라마운트 무비파크는 인천시 지자체 권한 사업인 반면, MGM 스튜디오파크는 경제자유구역에 세워지는 지식경제부 소관 사업이다. 인천시 관광개발과 담당자는 “동일한 컨셉트의 테마파크가 두 개나 들어오는 것은 중복·과잉 투자이며, 필연적으로 출혈 경쟁으로 이어진다. 과열된 찜질방 경쟁을 보면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MGM 테마파크 추진팀도 전혀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이미 조감도와 전반적인 사업 계획을 마무리한 뒤 MGM측과 구체적인 테마를 협의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에버랜드·롯데월드·서울랜드 “테마를 보강하라”

 

ⓒ에버랜드 제공

국내 유명 테마파크도 변화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외국계 업체가 들어서게 되면 테마파크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테마파크가 산업으로서 제대로 자리 잡게 되면 예전보다 훨씬 더 큰 파이가 형성될 수 있다. 하지만 정체된 상태에서는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관람객의 요구가 놀이기구를 타고 즐기던 데에서 점차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는 쪽으로 옮아가는 추세인 것도 변화를 준비하게 만든다. ‘테마 없는 테마파크’로 남아서는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개발연구원 이정훈 연구원은 “국내 테마파크의 경우 해외의 테마파크와 비교하면 콘텐츠 면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 최근에는 각 테마파크마다 이를 보완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어린이나 청소년 등 특정 계층만이 아닌 가족 중심의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변화가 일어나는 배경이 되고 있다. 테마파크 내에 워터파크, 쇼핑몰, 호텔 등이 같이 들어서서 휴양형이나 체류형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것도 여가 트렌드가 가족 중심으로 바뀌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국내 테마파크업계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가족이 함께 즐기는 콘텐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투자를 진행 중이다. 놀이기구보다는 각종 공연이나 퍼레이드, 동물원 등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에버랜드 홍보팀 관계자는 “지난 4월10일 대형 멀티미디어 쇼를 오픈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 외국계 테마파크가 들어오는 것을 위협으로만 보지 않고 일종의 기회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롯데월드도 가족 중심의 테마파크로 변신을 시도 중이다. 오는 7월12일 개장 20주년을 맞는 롯데월드는 ‘가족의 재발견’을 캠페인의 주제로 정했다. 공연과 퍼레이드를 비롯해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키드 라이더’ 시설 쪽도 대폭 강화할 예정이다. 롯데월드 홍보팀 관계자는 “테마파크 본원의 모습인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돌아와, 아이들은 추억을 만들고 부모들은 향수를 만끽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계획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롯데월드는 제2 롯데월드가 건립될 경우 해외 관광객 유치가 활발해지는 등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인공호수 위에 조성된 매직아일랜드는 내년 3월22일로 무상 임대 기간이 만료되어 송파구로 소유권이 반환된다. 이후 운영 방식이 어떻게 결정되느냐는 변수로 남았다.

서울랜드도 롤러코스트로 상징되는 스릴 위주의 놀이기구보다 무지개 동산과 같이 아이들이 자연 친화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운영권 재계약을 놓고 서울시와 빚었던 마찰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아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1차 시설에 대한 무상사용 기간이 2004년 7월에 끝나자 서울시는 이 지역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할 계획을 검토하기도 했다. 결국, 법정까지 간 결과 재계약을 체결했지만 장기 계획은 안 된 상태이다.

서울랜드를 운영하는 한덕개발 홍보팀 관계자는 “아직 장기 계약이 안 된 상태라서 비전을 제시할 상황은 아니다. 지금까지처럼 놀이기구 위주는 서울랜드의 입지와 관람객 계층에 맞지 않은 만큼 투자를 한다면 공연 등에 더 집중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서울랜드 활용 방안을 검토 중인 서울시청 푸른도시국 관계자는 “좋은 테마파크, 세계적인 테마파크를 만들어보자는 기본적인 계획만 있을 뿐 아직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지금 한국의 테마파크는 대변화를 맞고 있다. 


▲ 일본의 디즈니랜드. ⓒ연합뉴스
일본은 본고장인 미국과 함께 테마파크의 천국으로 불린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경제 불황 여파가 몰아닥치면서 문을 닫는 테마마크가 늘어났다. 그런 가운데서도 1983년 건립되어 일본 테마파크의 원조로 불리는 도쿄 디즈니랜드와 2001년 문을 연 이후 한때 적자로 고전했던 오사카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은 여전히 일본을 대표하는 테마파크로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사로부터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오리엔탈 랜드에 따르면 지난해 도쿄 디즈니랜드와 제2 테마파크인 도쿄 디즈니 씨를 방문한 관람객은 총 2천7백22만1천명으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전년에 비해 7.1% 증가한 수치이다. 개장 25주년 기념 이벤트 영향과 함께 관람객이 몰리는 대형 연휴 기간의 화창한 날씨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테마파크 주변에 호텔과 리조트 등 숙박 시설을 두고 있어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강점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05년 골드만삭스가 지분을 인수한 직후에도 계속 적자를 기록했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은 지난해 3월 말 결산에서 68억 엔의 흑자로 돌아섰다. 입장객 수가 증가세를 보이는 가운데 관람객 1인당 쓴 비용도 소폭이지만 상승하고 있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데다가, 여성층과 가족을 주요 대상으로 한 마케팅 전략도 맞아떨어졌다는 지적이다. 일본에 자리 잡은 이러한 외국계 대형 테마파크의 성공을 한국 시장 진출과 연관 짓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 국민의 경우 원래부터 캐릭터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측면에서 외국계 테마파크가 한국에서도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곤란하다. 첫해에는 새로운 놀이 문화에 관심을 갖고 방문하겠지만 다음해에도 재방문할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우리 국민 정서에 맞지 않을 경우 고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테마파크는 재방문율을 얼마나 높이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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