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설설 기고, 수출은 뒷걸음질
  • 조주현 (한국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 ()
  • 승인 2009.05.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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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현지에서 본 중국의 실물 경제 흐름 / 소비자들, 싸고 꼭 필요한 것만 구매

▲ 중국 경제는 지표로 읽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위는 베이징의 건설 노동자들. ⓒEPA

▲ 위는 선적을 기다리는 컨테이너 박스. ⓒAP

지난 5월11일 베이징 차오량 구의 가전 양판점인 다중덴즈. 1층에 마련된 휴대전화 매장에는 적지 않은 손님이 몰려 있었다. 매장 이곳저곳에서 휴대전화 단말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손님은 얼핏 보아도 30명은 되었다. 이들의 특징은 대부분 저가형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 1천 위안이 넘는 중·고가형을 흥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5백20위안(약 10만4천원)짜리 휴대전화 단말기를 만지작거리던 자오 씨는 “싼 것을 고른다고 골랐는데 이것도 가격이 높다”라며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휴대전화 매장 안쪽에 있는 TV와 냉장고, 세탁기 등의 매장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거짓말처럼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잡담을 나누는 종업원들만 눈에 띌 뿐이었다. 냉장고 매장의 종업원 리충싱 씨는 “휴대전화는 몇백 위안짜리가 있지만 이곳에 있는 제품은 그 값으로 살 수가 없지 않느냐. 지난해 말부터 줄어든 손님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베이징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차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화샹 중고차 시장. 베이징 최대의 중고차 시장인 이곳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아우디 매장에서 빨간색 2인승 승용차를 유심히 살펴보던 중년 남녀는 “신차는 62만 위안(1억2천4백만 원)인데, 이 차는 52만 위안(1억4백만원)”이라는 종업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로 돌아 값싼 중국산 차량 매장으로 향했다. 판매 점원은 “자동차가 많이 팔린다고 하지만 소형차가 인기 있을 뿐 비싼 차를 고르는 손님은 예전처럼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저가품 돌풍 배경은 정부의 내수 부양책

지난 5월1~3일 노동절 연휴 기간 중 1천개 소매업체 판매는 1백20억 위안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0% 늘어났다. 4월 자동차 판매 대수는 25% 증가한 1백15만3천대로 사상 최대였다. 4월 소매 상품 판매 증가율은 14.8%로 전월보다 0.1% 포인트 높아졌다. 그러나 꼼꼼히 뜯어보면 지표 밑에 형성된 트렌드가 발견된다. ‘실수요자의 저가 제품 구매’이다. 꼭 물건이 필요한 사람이 비교적 값싼 것을 산다는 뜻이다.

중국삼성 박근희 사장은 “올해 노동절 연휴 휴대전화 시장의 특징은 GSM 방식의 휴대전화가 CDMA 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팔렸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중국 휴대전화 시장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GSM 방식의 휴대전화가 많이 팔리지 않았다는 것은 “기존에 전화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 휴대전화 단말기를 바꾸기 위해 구입하는 이른바 교체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분석했다.

저가품의 돌풍에는 정부의 내수 부양책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소형 자동차를 살 때 취득세를 면제해주고, 농민들이 가전제품을 사면 매입 가격의 13%를 지급해주는 각종 소비 진작책으로 저가 제품의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서부 내륙 중소도시인 광시 장족 자치구 류저우 시의 4월 자동차 판매 대수가 전국 1위에 오른 것은 소비의 성장 동력이 정부 보조금에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중국 은행들의 신규 대출은 4월 5천9백18억 위안(1백12조4천4백20억원)을 기록해, 올 들어 이미 지난해 전체 신규 대출 규모는 물론 올 정부 목표치 5조 위안을 돌파했다.

컨설팅업체인 유민비즈의 노흥민 사장이 “중국의 경기가 회복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라고 진단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소비 증가→제조업 가동률 향상→고용 확대→소비 증가의 선순환 구조는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 경제는 투자 증가로 지탱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중국의 고정 자산 투자 증가율은 30.5%를 기록했다.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 재정 지출 확대에 따른 것으로, 고정 자산투자 증가율이 30% 선을 넘은 것은 2004년 8월 이후 처음이다. 투자 확대에만 의존한 경기 확장은 많은 부작용을 동반한다. 중국 정부가 최근 자동차·철강 등에 난립한 기업들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나선 것도 지난 1990년대 투자 확대 정책이 가져온 부작용이다.

예컨대 연산 1만t 이하의 영세 철강업체가 4천개나 되는 상황은 공급 과잉과 가격 경쟁을 불러와 산업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경제 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중국 정부는 투자 과열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고정 자산 투자 증가율 억제를 최대 정책과제로 삼았었다. 그러나 금융 위기 발발 이후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는 상황에 몰리면서 투자 확대의 길을 걷고 있다.

투자 억제에서 확대로 돌아서 경제 지탱하는 꼴

중국 공산당조차 이에 대한 경고 사인을 내놓고 있다. 공산당이 발행하는 주간지 <랴오왕>은 최근 강한 어조로 ‘과잉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랴오왕>은 “중국 31개 성시 중 11개 성시가 1분기 두자릿수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이는 모두 과잉 투자의 결과이다”라고 지적했다. 국내총생산(GDP)을 구성하는 투자·내수·수출 가운데 지방 정부가 가장 손쉽게 제어할 수 있는 변수인 투자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

<랴오왕>은 특히 “고도 성장 지역으로 집중 조명을 받은 후난, 후베이, 장시 등 중부지역 6개성의 투자 증가율은 무려 34.3%에 달했다”라고 비판했다. 이미 착공되었거나 착공을 앞두고 있는 란저우∼신장 철도와 구이저우∼광저우 철도의 열차 주행 속도를 지방 정부가 높인 것도 단순히 투자액을 배로 늘리기 위해 집행한 안일한 투자 사례로 지적되었다.

반면, 중국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은 6개월째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4월 수출은 전월에 비해서는 2% 증가했지만, 전년 동기에 비해서는 22.6% 감소했다. 전력 사용도 감소 추세이다. 4월 전력 사용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3.5% 줄었다. 전월에도 3.55% 감소했었다. 특히 6월이면 5백90만명의 대학 졸업자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도 부담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직업을 찾지 못했고, 따라서 대규모 실업 부대가 형성될 전망이다.

결국, 중국 경제는 지표로 읽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비는 본격적으로 살아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GDP의 38%를 차지하는 수출은 뒷걸음질 치고 많은 부작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투자만이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중국의 경제 구조가 수출 중심이라는 점에서 내수 부양으로 위기를 뚫겠다는 것은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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