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협 파트너 교체설’ 솔솔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5.2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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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평화자동차로 바꾼다’는 이야기 퍼져…“정통성 때문에 한계 있을 것” 전망도

▲ 지난 1월30일 문선명 총재 구순 축하연에서 문선명 총재 내외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물한 산삼을 전달받고 있다. ⓒ세계일보 제공

지난해 11월 이후 현대아산의 로고가 찍힌 관광버스는 더 이상 금강산과 개성을 오가지 못한 채 6개월째 멈춰 서 있다. 반면, 지금 평양 시내에는 평화자동차 로고가 선명한 승용차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차량 대수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대북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표적인 두 기업 사이에 뚜렷하게 드리운 명암이다.

개성공단 문제가 갈수록 악화하면서 남북 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한 북한 문제 전문가는 “솔직히 답이 안 보인다”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통일부측도 “우리도 답답하기만 하다”라는 말을 할 뿐이다. “사실상 북한은 개성공단 폐쇄를 작심한 듯이 보인다”라는 견해가 점차 설득력을 더해가는 양상이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측의 한 관계자는 “저쪽(북한)의 정확한 속내를 도무지 모르겠다. 최악의 경우도 생각하고 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의 경우란, 물론 ‘철수’를 말하는 것이다.

북한의 속내에 대해 여러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최근 북한의 ‘남북 경협 파트너 교체설’이 꿈틀대고 있다. 즉, 개성공단을 포함해 관광 사업까지 기존의 모든 것을 원천 무효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틀에서 새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현대아산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는 셈이다. 반면, 조용히 미소 짓는 쪽도 있다. 통일그룹의 평화자동차 회사이다.

최근 기자는 개성공단기업협의회측의 여러 관계자와 대화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얘기를 전해들었다. 현재 북한에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 아무개씨 문제에 대한 화제로 시작되다 불쑥 평화자동차가 거론된 것이다. 북한을 자주 왕래하는 한 관계자가 기자와 나눈 대화 내용은 이렇다.

유씨 문제가 왜 이렇게 꼬여가기만 하나. 현대아산과 북측의 대화 창구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확실히 그런 느낌이다. (현대아산이) 간접적으로 유씨에게 생필품 등을 전달하는 방법 외에는 직접적으로 연락을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관광의 재개도 상당 기간 힘들 것 같은데….

“아마 그럴 것 같다. 물론 북한 문제는 항상 돌발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북한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들은 내용인데, 특히 평양의 분위기는 많이 다른 듯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평양에서는 이미 사업 파트너를 현대아산 말고 평화자동차로 해야 한다는 얘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 평화자동차는 평양 한복판에서 오히려 사업이 더 성장하고 있다. 지금의 남북 관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북측 관계자는 ‘하나같이 남측 기업들은 모두 우리들에게서 이득만 빼내가려고 한다. 겉으로는 마치 우리를 돕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 우리를 이용하는 것뿐이다. 개성공단도 그렇고, 결국에는 현대아산도 다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평화자동차는 봉사 정신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 잇속보다는 우리를 위해 진정 뭔가를 해주려는 듯한 마음이 느껴진다’라고 하더라. 우리 식의 사고로는 당최 말도 안 되는 얘기이지만, 북한 같은 폐쇄 사회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 경색 국면에서도 평화자동차 규모는 오히려 확장

▲ 2007년 10월4일 북한을 방문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남포시에 위치한 평화자동차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평화자동차는 문선명 총재가 이끄는 통일교 재단 기업이다. 최근 평양을 방문했던 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평양 시내에 평화자동차 선전탑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한다. 평화자동차의 판매량 역시 해마다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측에 따르면, 올해 판매량을 지난해보다 3배 정도 늘려 잡고 있다고 한다. 평화자동차의 박상권 사장은 지난 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주문량이 현재까지 8백대를 넘어서는 등 판매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평양 공장 북한 종업원을 현재의 2백50명에서 3백~3백40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평화자동차의 성과가 남북 관계 경색으로 어려움에 처한 남북 경협 기업인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위 관계자의 전언은 최근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문제를 들고 나오며 요구하는 목소리와 뉘앙스가 거의 흡사하다. 북한은 “남측은 수억 달러를 벌어들이지만, 북측은 잃는 것이 더 많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때문에 임금도 인상하고 토지 사용료도 지불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개성공단기업협의회측은 “북한이 잘못 알고 있다. 말도 안 된다”라고 반발한다.

그렇다면 평화자동차는 개성공단에 비해 근로자 임금 수준이 높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평화자동차측의 설명이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보면 된다. 같이 북한에서 사업을 하는데 큰 차이가 날 수 있겠는가”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우리와 개성공단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난해까지 매년 적자 경영이었다. 그것을 북한 당국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단순히 기업 이윤만을 목표로 했다면 평화자동차를 지금껏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에서 자동차를 팔아봐야 얼마나 많이 팔겠는가. 지금까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는 경제 논리가 아닌 통일 논리를 이념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번 돈을 갖고 오지 않는다. 북한에서 벌어들인 돈은 거기에 다시 투자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의 남북 경협 파트너 교체설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모습이다. 통일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뭐라고 입장을 밝히기가 어렵다. 다만, 현재의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도 우리 기업이 현지에서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쪽에서도 좀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라며 우회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현대아산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교체설에 대한) 그런 얘기는 듣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를 뒷받침할 만한 뚜렷한 징후는 없지 않나. 우리와 북측의 신뢰 관계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질 정도로 허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화 라인은 아직도 건재하다. 현정은 회장은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북한을 방문하겠지만, 지금은 나설 타이밍이 아니라는 입장이다”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통일그룹에서 이처럼 대북 사업에 자신감을 표시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들은 통일그룹과 평양 주석궁 간의 20년 가까운 신뢰 관계를 들고 있다. 

통일그룹과 평양 주석궁의 20년 신뢰 ‘눈길’…관광 개발 사업도 해와

▲ 금강산을 찾은 금강산 육로관광단.

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가진 것은 1991년 11월이었다. 통일그룹측에 따르면, 당시 양자 간의 회담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남북 경제교류 등에 대해 합의를 했다고 한다. 특히 당시 구체적으로 논의된 남북 경제교류의 핵심 사업은 금강산 개발과 자동차 사업이었다고 한다.

북한이 문총재측을 신뢰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지난 1994년 김일성 사망에 대한 조문 사절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당시 남측에서는 유일하게 통일그룹측이 박보희 회장을 평양에 직접 보내 조문하게 했다. 이 조문 파동으로 박회장은 이후 4년 가까이 국내에 입국하지 못했으나, 아무튼 이 일로 북한과 통일그룹은 상당히 깊은 신뢰감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동차 사업은 통일그룹이 1997년 북한으로부터 부지를 지정받아 이듬해인 1998년 1월 평화자동차총회사로 출범했다. 평화자동차가 70%, 북한의 ‘조선련봉총회사’가 30%의 지분을 각각 갖는 합영회사로 출범했다. 2000년 2월 평안남도 남포시 항구동에 공장이 준공되었고, 오늘에 이른다.

하지만 막상 통일그룹이 처음에 더 많은 공을 들인 것은 관광 개발 사업이었다. 통일그룹측은 “대개 국민은 현대그룹이 금강산 개발 사업을 처음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북한과 금강산 개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금강산국제그룹이 훨씬 먼저이다”라고 밝혔다. 통일그룹 산하 금강산국제그룹의 박보희 회장이 1994년에 ‘금강산 개발 계획서’ 등을 김일성에게 보고하고 비준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통일그룹은 여전히 관광 사업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평화자동차의 계열사인 평화항공여행사가 그 대표적인 기업으로 2003년 4월 설립된 대북 전문 관광회사이다. 그동안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 등 대북 관광 사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건재하다. 특히 평화자동차의 박상권 사장이 이 회사 대표까지 겸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박사장은 현재 문총재에게 대북 사업에서 거의 전권을 위임받을 정도로 독보적인 활동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그룹의 한 관계자는 “문총재는 대북 사업에서는 모든 지휘 보고 계통을 단일 창구로 한다. 그 단일 창구가 바로 박사장이다”라고 귀띔했다.

지금까지 통일그룹의 관광 사업은 평양 시내 관광과 백두산관광에 거의 한정되어왔다. 현대아산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회사측 관계자는 “현재 관광 사업은 정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벤트 성격이 강하다”라고 밝혔다. 현대아산과 대비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속에서도 차별적 우월성을 강조한다. “솔직히 금강산 가고, 개성 가는 것은 우리나라로 치면 설악산 가고, 강화도 가는 것하고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평양 시내 관광 사업을 하고 있다. 차원이 다르다”라는 식이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은 “이제 남과 북의 거리가 너무 멀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북한이 좀처럼 잘 사용하지 않는 용어가 ‘무조건’인데, 그런 용어까지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개성공단의 포기를 이미 염두에 둔 듯하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의 남북 경협 파트너 교체설에 대해 “그것도 북한 입장으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하나의 대안 카드가 될 수 있다. 또, 무엇보다 평화자동차의 박사장이 미국 국적이기 때문에, 남북 교류 사업이 아니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그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 대북 사업 전문가로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ㄱ씨는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딱히 현대아산이라기보다는 현대그룹에 대한 북한의 실망감이 높아가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북한이 고향인 통일그룹의 문총재가 대북 사업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이 항상 강조하는 것이 정통성이라는 점에서 통일그룹이 주도적인 사업 파트너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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