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인도 경제 투자자들이 몰려든다
  • 이철현 경제전문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06.0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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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승리로 정국 안정 꾀한 만모한 싱 총리 개혁 조치에 기대 전세계 애널리스트들도 “계속 성장 가능” 전망

ⓒEPA

조충제 대외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 조사차 인도를 방문했다가 현지에서 만난 인도인 변호사 챠브라 씨(38)로부터 흥미있는 질문을 받았다. 

“인도의 IT와 뷰티(beauty)가 세계 최고인 이유를 아는가?”

조연구위원이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변을 내놓지 못하자 챠브라 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도 IT 산업과 미인 출산에 정부가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 지식인 사이에서 떠도는 우스갯소리이다. 조연구위원은 “인도 경제의 발전을 가로막는 정책 변수를 희화화한 것이다.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정치 불안과 정책 오류가 인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인 탓이다”라고 말했다.

인도의 미인은 각종 미인대회를 석권할 정도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또, 인도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은 세계 최고이다. 미국이나 유럽 정보통신업체들이 1990년대부터 인도 업체들에게 용역을 맡기면서 인도는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개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두 부문을 제외하고는 인도가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는 것을 찾기 쉽지 않다. 인도는 늘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 잠재력은 여전히 잠재되어 있을 뿐이었다. 중국 공산당이 수출 위주 성장 전략을 세우고 이에 맞춰 정부·기업·가계 경제를 일사불란하게 동원하는 것과 달리 인도에서는 끊임없는 정정 불안과 종교 갈등이 경제의 발목을 붙잡았다.

잠재되어 있던 잠재력 내보일 기회 맞아

인도에는 3백개가 넘는 정당이 난립해 있다. 전국 정당은 국민회의당(INC)과 인도인민당(바라티야자나타·BJP) 두 곳에 불과하다. 총선마다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없어 연합정권이 구성된다. 연합정권은 소속 정당의 정책과 이해를 맞추는 과정에서 정책 수립이 늦어지고 정책의 일관성도 떨어진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지난 임기 시행하려 했던 갖가지 개혁 정책은 연립정권 소속 공산당의 반대로 좌초하는 일이 잦았다. 외국인 투자자는 그동안 인도 경제 정책의 일관성을 신뢰하지 않았다. 인도국민회의당을 대체할 수 있는 정치 리더십인 제1 야당 인도인민당은 국론 분열의 주범으로 지탄받고 있다. 인도인민당은 힌두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인도 내 1억6천만명이나 되는 이슬람 인구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 5월18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정치 혁명이 인도에서 일어났다. 인도 유권자 4억1천7백만명이 참여한 총선거에서 집권당 국민회의가 전체 5백45석 가운데 2백6석을 차지했다. 단일 정당으로서는 1991년 이후 최대 승리이다. 국민회의당이 주도하는 연립정권인 통일진보연합(UPA)은 2백64석이나 되었다. 지난해 8월 연정에서 탈퇴한 공산당을 제외한 의석 수이다. 만모한 싱 총리는 이제 공산당을 비롯한 연합정권에 참여한 소수 정당의 반대에 구애받지 않고 개혁 정책을 추진할 정치적 힘을 얻게 되었다. 인도 정치사에서 총선거에 승리해 집권 2기를 맞는 현직 총리는 자와할라 네루 초대 총리에 이어 싱 총리가 두 번째이다. 싱 총리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한 경제학자이다. 인도 역사상 유일한 경제학자 출신 총리이다. 경제학자답게 싱 총리는 인도 경제 성장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고 있다. 싱 총리는 이제 공기업 민영화·금융시장 개방·유통 구조 개편 같은 개혁 조치를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은 환호했다. 총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인도 뭄바이 센섹스 지수는 17.34% 폭등했다. 인도 주식시장이 개장한 이래 최대 상승 폭이다. 인도 증권당국은 서킷브레이커(주식거래 중단 조치)를 발동했으나 폭등세가 진정되지 않자 주식시장을 조기 폐장해야 했다. 로히니 말카니 씨티은행 애널리스트는 6월 인도 시장 보고서에서 ‘(여당의 총선 승리로) 정치 안정, 경제 개혁, 투자 금융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인도 경제 성장 전망을 밝게 했다’라고 밝혔다. 중국 주식을 팔고 인도 주식을 사야 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프랑스 은행 BNP파리바는 6월4일 시장 보고서에서 ‘인도 주식시장의 가치, 자금 흐름, 유동성이 (중국보다) 우호적’이라고 평가했다. 클리브 맥도널 BNP파리바 애널리스트는 ‘인도 뭄바이 센섹스 지수가 추가적으로 11%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도 주식시장의 1주일 평균 수익률은 5월 들어 25.93%까지 치솟았다. 세계 주식시장 1주일 평균 수익률은 1.53%에 불과하다. 5월 월간 수익률도 38%나 되었다. 주가 상승률이 높았던 브릭스(BRICs) 국가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러시아 22.2%, 브라질 17.1%, 중국 14.1%에 불과했다. 뭄바이 센섹스 지수는 올해 54% 올랐다. 전세계 주식시장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외국인 직접 투자 늘린 공신은 싱 총리

▲ 소냐 간디 국민회의당 대표(왼쪽)가 5월19일 만모한 싱 총리를 만나고 있다. ⓒEPA

주가지수 급등에 대해 단기 급락에 따른 반등세라는 지적이 없지 않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지난해 9월 파산하면서 불거진 세계 금융 위기 탓에 인도 주식시장은 패닉에 휩싸였다. 지난해 9~10월 2개월 만에 57억 달러가 인도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지난해 4분기 50.4%(전년 동기 대비 )나 빠져 반 토막 났다. 경제성장률은 -4.6%로 뒷걸음쳤다. 물가는 지난 5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03%나 올랐다.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 폭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3월 산업 생산은 16년 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2월부터 내수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출은 지난 3월 -33.26%까지 줄었다.

만모한 싱 총리는 세계 금융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에 재빠르게 대응했다. 시중에 자금을 대거 풀었다. 정책 금리를 과감하게 낮췄다. 인도중앙은행(RBI)은 기준금리를 3.25%까지 내렸다. 지급준비율도 지난해 10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9%에서 5.5%까지 낮췄다. 재정 확대 정책도 아울러 단행했다. 인도 정부는 올해 안에 40억 달러를 시중에 공급한다. 농가 부채를 탕감하고 공무원 임금을 21% 인상했다. 유가는 1ℓ에 5루피(1백50원가량)로 낮췄다.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30억 달러가량을 투입하고 수출업자에게 4억 달러가량을 지원한다.

인도 경기 회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외국인 직접 투자(FDI)이다. 세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외국인 직접 투자는 3백67억 달러나 들어왔다. 2007년과 비교해 60%나 늘어난 수치이다. 유입 추세는 올해에도 여전하다. 지난 4월 4억9천만 달러가 들어와 월간 단위로는 최대 규모 유입액을 기록했다. 외국인 직접 투자가 느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싱 총리 내각의 개혁 조치이다. 싱 총리는 그동안 인도 경제에서 금기시했던 금융시장 개방 조치를 단행했다. 우선 시중 은행의 외국인 지분 한도를 74%에서 100%로 확대했다. 보험업 외국인 지분 한도는 26%로 늘렸다.

외국인 투자자가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소매유통업 개방 여부이다. 싱 총리가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소매유통업 개방에 성공한다면 인도 경제는 도약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기업형 유통이 인도 유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에 미치지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매유통시장 개방은 인도의 낙후한 유통 구조를 개선시킬 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농수산물 유통구조가 개선되어 농가 소득과 생산성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제품 회전율이 높아져 경영 효율과 실적이 향상된다. 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계에서 소매유통업을 개방하지 않은 얼마 되지 않은 나라가 인도이다. 중국과 베트남이 소매유통업을 개방했다. 인도도 그 추세를 따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월마트·까르푸·테스코는 이미 인도에 들어와 도매유통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들은 이미 소매유통업에 진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싱 총리의 개혁 조치들이 과거처럼 연립여당 내부 반대로 차질을 빚지 않는다면 인도의 자산시장 전망은 밝다. 이번 총선 압승은 불안 요소를 없앤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싱 총리에 대해 갖는 신뢰는 전세계 금융회사 보고서에 반영되어 있다. 스위스 은행 UBS는 지난 5월22일 발간한 ‘새 새벽을 맞는 인도(India: A New Dawn)’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인도 자산시장이 채권보다는 주식 투자 비중이 느는 순환주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경기 상승기에는 주식 선호 현상이 뚜렷하고 하락기에는 현금 보유 성향이 커진다. 경기 침체 속도가 가팔라져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 선호 현상이 뚜렷해진다. 필립 와이얏 UBS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는 아직 채권 선호 현상이 뚜렷하나 인도는 저점을 지나 증권 선호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씨티은행, 2010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9%로 상향 조정

▲ 월마트는 인도 유통시장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5월30일 암리챠르에 1호점을 개장했다. ⓒAP

UBS 시장전략연구팀은 인도 경제와 기업 실적이 2010년 하반기 바닥에서 벗어나고 2011년 완전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앞으로 12개월 동안 인도 투자시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자동차, 은행, 부동산, 대기업군 투자를 추천했다. 필립 와이얏 이코노미스트는 “인도 경제가 올해 하반기 강한 성장세로 반전해 2009~10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5.2%에서 6.2%로 올린다”라고 말했다. 로히니 말카니 씨티은행 애널리스트는 “투자 위축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인도 경제의) 최악의 시기는 끝났다고 판단한다. 2010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에서 9%로 상향 조정한다”라고 밝혔다. 씨티은행 6월1일 인도 거시지표 전망에서 올해 인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7%에서 7.1%로 높였다.

한국 투자시장에 조심스러운 변화가 보인다. 현금 선호 성향이 약해지는 징후가 뚜렷하다. 지난 5월 머니마켓펀드(MMF)에서 3조5천억원이 빠져나갔다. 국내 주식형 펀드가 2개월째 빠지고 있으나 해외 주식형 펀드는 4개월째 불어나고 있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해외 시장은 브릭스이다. 브릭스 투자 펀드 규모는 6천8백억원이다. 그 가운데 5천7백49억원이 중국에 투자된다. 중국 편중 현상이 뚜렷하다. 국내 인도 펀드 설정액은 5월에 4백39억원이나 줄어들었다. 한국인 해외투자 성향은 세계 투자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과 인도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전혀 다른 성장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수출과 제조업 위주 성장 전략을 추구하는 중국과 달리 인도는 내수 산업과 서비스업이 발달되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라는 투자 격언이 유효하다면 중국에 담겨 있는 계란 몇 개를 인도로 옮길 때가 아닐까. 조충제 연구위원은 “중국 시장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휘발성이 적어 안정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장이 인도이다”라고 말했다.

▲ 물동이를 진 인도 여성이 5월18일 손수레를 뒤집고 있는 공공 근로자 옆을 지나고 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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