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효과도 ‘쓰나미’급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6.1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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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완성도 높인 한국형 블록버스터 줄이어 선보여

▲ 한국 최초 휴먼 재난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

여름 극장가를 지배하는 것은 대형 블록버스터이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 블록버스터가 선사하는 스펙터클한 볼거리는 영화 성수기에만 맛볼 수 있는 영화팬들의 특권이다. 지난 6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에서 1, 2위를 차지한 <박물관이 살아있다 2>, <터미네이터 : 미래 전쟁의 시작>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여전히 강세이지만 만만치 않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들도 있다.

충무로와 할리우드 기술진의 ‘공조’ 결과물

첫 번째 주자는 한국 최초의 휴먼 재난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는 <해운대>이다. <두사부일체> <색즉시공>의 윤제균 감독이 연출을 맡은 <해운대>는 1백5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대형 블록버스터로 7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의 여름하면 바로 떠올려지는 해운대라는 공간에 쓰나미가 갑자기 밀어닥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등 한국의 대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해운대>의 주인공은 부산을 집어삼킬 쓰나미이다. 쓰나미의 형상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위력적이냐에 영화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JK필름의 이지승 제작 프로듀서는 “쓰나미의 비중이 주연배우보다 높을 수 있다. 쓰나미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제작에 임했다. 쓰나미가 관객이 보기에 어설프게 표현되거나 퀄리티가 낮다면 영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CG의 부족함이 용서될 수 있는 영화도 있겠지만 <해운대>는 아니다. 그런 만큼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름을 기다리는 두 번째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차우>이다. <해운대>와 마찬가지로 7월에 개봉할 <차우>의 주인공은 식인 멧돼지 ‘차우’이다. 100억원이 투입되는 제작비 중 상당 부분이 ‘차우’의 구현에 소요되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대형 멧돼지를 영화 속 현실로 끌어들이기 위해 전체적인 비주얼과 자연스러운 동작, 미세한 털의 움직임까지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두 영화는 CG로 구현되는 창조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 외에 또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진다. 바로 두 작품의 CG를 담당하고 있는 곳이 할리우드의 폴리곤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이다. 폴리곤 엔터테인먼트를 이끌고 있는 한스 울릭은 <해운대>와 <차우>에 모두 발을 담그며 올여름 한국 영화계의 키워드가 되었다. 그는 15년 동안 <투모로우> <퍼펙트 스톰> <싸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1> 등 수많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CG를 담당했다. 특히 <퍼펙트 스톰>과 <투모로우>에서 보여준 워터시뮬레이션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한스 울릭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제작진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이다. 제작 환경과 규모 등에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기술이 있더라도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영화가 산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실례로 <싸이렌>은 할리우드의 특수효과 전문가 폴 스테이플을 기용하며 화재 장면에 공을 들였지만 흥행에서 참패했다. 이야기에 허점이 있었겠지만 비주얼에서도 허점이 드러났다. <싸이렌> 화재 장면에서 폴 스테이플과 한국 제작진에는 소통이 부족했다. “예정보다 불길이 너무 세서 놀랐다”라거나 “제작발표회에서 무대 특수효과에서 준비한 불쇼가 화재로 이어졌다”라는 이야기는 주연배우 신현준의 입을 통해 우스웠던 추억담처럼 회자되었다. 반대로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만든 뉴질랜드 웨타 워크숍이 참여한 <괴물>은 성공적인 캐릭터를 구현하며 한국 흥행 역사를 새로 쓰기도 했다.

<해운대>가 <싸이렌>의 편에 설지 <괴물>의 편에 설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제작진은 한스 울릭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문제는 없다고 자신한다. <해운대> 제작진은 1주일에 두세 번씩 화상회의를 통해 할리우드 기술팀과 조율한다. 폴리곤 엔터테인먼트가 물 장면을 제작하면 한국의 VFX(Visual Effect·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한 영화상의 시각적인 효과를 통칭) 제작팀인 모팩의 기술진이 완성본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물을 가지고 제작진, 폴리곤, 모팩이 참여하는 화상회의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짚어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국내 CG업체들도 할리우드 진출 성공

▲ 올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

이지승 프로듀서는 “처음에는 물 CG에 관한 경험이 없어 한스 울릭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물 CG를 처음 구현해내는 것보다 수정할 때 세 배의 노력이 들어가다 보니 수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퀄리티에 대한 것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재작업을 해나가면서 중반 이후부터는 폴리곤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고, 커뮤니케이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올여름을 장식할 두 편의 블록버스터가 할리우드 기술진과의 공조 작업을 통한 결과물이지만, 한국의 기술력이 세계 수준에 뒤지는 것은 아니다.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인 <전우치> 에는 <놈놈놈> <적벽대전>의 특수효과를 맡았던 데몰리션, <괴물> <박쥐>를 작업한 에이지웍스 등 한국의 VFX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100억원대의 제작비 중 CG 작업에만 30% 이상이 들어갈 예정이다. CG 작업은 요괴가 나오는 부분과 전우치의 도술 장면을 위주로 이루어진다. 영화사 집의 허지희 팀장은 “기술력 자체는 국내 업체가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다. 에이지웍스는 할리우드 영화들과도 작업한 바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의 일부 CG업체들은 이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의 진출에 성공했다. 매크로그래프는 지난해 개봉한 성룡 주연의 <포비든 킹덤>의 CG를 담당했다. 한국의 CG업체가 총출동했던 <중천>에서 보여준 기술력을 할리우드에서 높이 산 때문이다. 매크로그래프는 할리우드로의 진출을 피토프 감독의 <Empires of the Deep>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한국의 VFX 기술력이 결집될 또 하나의 프로젝트인 <로보트 태권브이>는 내년 겨울로 개봉이 늦춰졌다. 개봉을 앞당기기보다는 완성도 있는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모팩, 매크로그래프, 인사이트비주얼, EON, 인디펜던스, FX기어, DTI픽쳐스 등 국내의 대표적인 VFX업체 7개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다. 제작비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VFX 비용으로 책정했을 정도로 태권브이의 실사 구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식회사 로보트 태권브이의 박관우 실장은 “CG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100이라면 한국의 업체들이 90까지는 도달해 있다. 컨소시엄 형태로 진행되는 이번 작업은 서로 다른 전문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는 업체들이 기술적인 노하우를 나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게 된다면 한국의 VFX업체 컨소시엄이 할리우드 메이저 블록버스터의 VFX를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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