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전쟁’에 맞선 학원계의 대반격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7.0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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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연합회, 교과부·국회의원 찾아다니며 전방위 로비 교육계, ‘성매매와의 전쟁’과 닮았다며 풍선효과 우려

▲ 서울 용산구 한국학원총연합회 건물에 ‘불법 사교육 처벌’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학원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정부가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서울 용산에 있는 한국학원총연합회(이하 학원연합회)에서는 거의 매일 과목별 대책회의가 열린다. 지난 5월21일에는 ‘학원교육말살정책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까지 발족했다. 지금까지 네 번에 걸쳐 회의가 열렸으며, 정부 정책에 대한 대응책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학원연합회 건물에는 ‘재벌 사교육 처벌’ 등 비장한 각오를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 등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정부에 맞서 학원계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학원연합회는 전국 지회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전방위 로비에 돌입했다. 전국의 모든 지회에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과 접촉해 정부 정책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학원계의 요구를 전달하라’는 지침을 하달한 상태이다. 문상주 총회장을 비롯한 학원연합회 임원들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위원들과 정부 부처를 찾아다니며 학원계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지역구 의원들에게는 해당 지역구의 학원 관계자들이 직접 찾아가고 있다. ‘선거’를 염두에 두고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학원계도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정치권에서는 ‘돈 로비’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전례를 보면 학원계의 돈 로비는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특목고 입시, 교재 선택, 학생 명단 유출 등 이권이 있는 곳에는 돈이 오고 갔다. 교육계에서 학원과 학교의 검은 커넥션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는 ‘돈 거래설’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사교육 제도가 여러 번 뒤바뀌는 과정에서 모종의 돈 로비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지난 4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심야 교습 제한’ 발언이 당·정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백지화된 것이 원인이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과 정두언 의원은 각각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압력설’을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정두언 의원은 지난 5월21일 SBS <이승열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학원들이 개입해 당정 정책 논의가 왜곡되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지 학원의 대표가 아니다. 학원 입장에 따라 국민 입장을 바꿔 버리는 것은 반개혁적이다”라며 심야 교습 제한에 반대한 의원들을 겨냥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최근의 사교육 정책이 속도를 내지 못하자 로비설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대통령은 지난 6월23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서민 부담을 줄이려면 사교육을 없애는 일이 매우 중요한데 뭘 하느냐. 학원 로비의 힘이 센 모양이다”라며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을 질타했다.

그러나 학원계는 금전 로비 의혹에 대해 펄쩍 뛰었다. 전방위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봉투를 건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학원연합회 김제완 사무총장은 “대통령께서 어떤 로비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돈 로비한 사실은 없다. 가뜩이나 예산이 빠듯해서 갖다 줄 돈도 없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국회의원이나 교과부 정책담당자들을 찾아가 우리 입장을 전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것까지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 한국학원총연합회는 지난 5월21일 ‘학원 교육 말살 정책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5공 시절 학원 말살 정책의 과오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 성토

학원들의 생존권을 건 싸움은 처절하다. 충북 청주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 원장은 청와대와 교과부 등에 호소문을 보내 “과거 전두환 정권에서 행해진 학원 말살 정책으로 순식간에 전국의 학원이 문을 닫고 일부 특권층 자녀들만 비밀리에 사교육을 받았다. 이로 인한 피해는 몽땅 대한민국의 중산층·서민들과 선량한 학생들이 입었다. 정말로 정부와 언론이 싸우고 없애야 할 대상은 고액 과외, 불법 과외 등이다”라고 강조했다.

각종 교육관련 세미나와 토론회에도 학원계 사람들이 넘쳐난다. 보통 방청객들의 40%는 학원 종사자들이다. 지난 6월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중산층과 서민경제를 위협하는 ‘사교육과의 전쟁’ 어떻게 이길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약 6백여 명의 방청객이 몰리면서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패널들의 토론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주최측을 당황스럽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 방청객이 손을 치켜들고는 단상을 향해 “왜 ‘사교육’과의 전쟁인가. 용어부터 잘못되었다. ‘사교육비’를 겨냥한 것인지 아니면 ‘사교육 종사자’인지 헷갈린다. 사교육 종사자를 모두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면 용어를 바꿔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이날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용어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라고 인정했다. 학원 관계자들은 정부의 사교육 대책이 주먹구구식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배포된 자료집도 문제가 되었다. 자료집 표지는 영화 <300>의 한 장면을 전면에 실었다. 여기에는 창과 방패로 무장한 고대 병사들이 적군 병사들을 벼랑 끝으로 떨어뜨리며 참혹하게 살육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진 경희대 겸임교수는 “표지에 전쟁 모습을 담은 것은 그만큼 사교육과의 전쟁이 절박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학원연합회는 논평을 내고 “여기서 처참하게 벼랑 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 이것이 진정 학원 교육자를 비롯한 사교육 종사자를 의미한다는 말인가. 학원 교육자를 이처럼 잔인한 살육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것에 우리 학원계는 큰 분노를 느낀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인터넷은 학원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성토장이 되고 있다. 지난 6월17일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학원 심야 교습 제안’을 골자로 법안을 발의하자 학원계가 발끈했다. 안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학원 교습시간을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로 제한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1년 이하의 금고 또는 3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안의원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는 법안 발의를 항의하는 학원 종사자들의 항의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오고 있다. 학원연합회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안의원의 프로필을 공개하며 은근히 공격을 부추기기도 했다. 네티즌 김은경씨는 “학원 교습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위헌적인 발상이다. 국민들에게도 선택권을 주기를 당부한다”라며 심야 교습 제안의 부당성을 제기했다. 안민석 의원실의 곽민욱 비서관은 “우리는 과다한 사교육, 문란해진 사교육을 바로잡자는 것이지, 사교육을 때려잡자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정책을 펴면서 사교육 시장이 문란해졌다. 사교육 시장을 조장한 주범이 사교육을 없애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강조했다. 학원계는 더 이상 막다른 길로 몰아붙이면 대규모 시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관할 행정 기관에 등록된 전국의 학원 수는 약 7만8천여 개이다. 여기에 딸린 식구만 해도 10만명이 훨씬 넘는다. 학원계는 교육 당국에 허가받고 적법하게 일을 하는데도 범죄자로 취급당하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아울러 생계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방의 한 학원 원장은 “우리도 사교육비를 줄이자는 데에 찬성한다. 하지만 정부는 학원 교육을 아예 말살시키려고 하고 있다. 고용인력 창출을 말하면서 학원계의 생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당장 심야 교습 제한을 실시하면 네 시간 정도 밖에 일을 못하는데, 그럼 우리는 망한다. 살기 위해 지하에서 은밀히 야간 교습을 하거나 폐쇄된 공간에서 불법 교습을 할 수밖에 없다. 제발 우리를 범법자로 내몰지 마라. 우리는 국민이지 적이 아니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 지난 6월26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주최로 ‘사교육과의 전쟁’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무원칙·무대포 방식으로 전시효과 노린 이벤트 단속 말아야

지난 수개월 동안 온 나라가 사교육 논란에 휩싸여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교육 실세들이 옥신각신하면서 ‘사교육 대책’은 계속 헛바퀴만 돌았다. 이를 보다 못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교육 경감 방안 마련’을 지시했지만, 정부와 여당 내에서는 여전히 교육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다. 이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는 사이에 신음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이다. 사교육 문제는 전두환 정권 때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매년 반복되었다. 그런데도 사교육비가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늘어나고 서민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사교육 대책의 큰 틀은 규제와 단속 그리고 억제이다. 쉽게 말해 힘의 논리로 옥죄겠다는 것이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사교육과의 전쟁’이 지난해 경찰이 벌인 ‘성매매와의 전쟁’과 아주 흡사하다고 말한다. 경찰의 ‘성매매와의 전쟁’은 무원칙과 무대포 방식이었다. 음성적인 성매매를 차단하고 집창촌 여성들에 관한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그런데도 당장 단속이 쉬운 집창촌에 집중하다가 풍선효과만 유발했다. 주택가로 스며든 음성적인 성매매는 단속 사각지대에 놓이고 말았다. 앞뒤 가리지 않고 전시효과를 노린 이벤트 단속의 한계였다.

이명박 정부의 ‘사교육과의 전쟁’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사교육과의 전쟁으로 생길 후유증에 대한 대책이 별로 없다. 벌써부터 방과 후 프로그램의 부작용, 방과 후 학교 운영 민간업체 위탁 백지화, 학교의 학원화, 음성 고액과외 우려 등이 나타나고 있다. 상당수의 학원들은 매년 10%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온라인 교육업체, 학습지 등은 주식시장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교육 1번지’라고 불리는 강남 지역에서는 불법 고액과외 등이 더욱 문란해지는 형국이다. 사교육의 ‘풍선효과’가 벌써부터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정원일 ‘사교육 없는 학교’ 정책간사는 “영어 사교육을 예로 들자. 우리나라의 영어 사교육 열풍은 거의 비정상적이다.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영어 사교육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특목고 특히 외고 입시로 인해 중학생들이 휘둘리더니 국제중이 생기면서 초등학생까지 살 떨리는 영어 사교육 경쟁으로 죽을 지경에 내몰렸다. 국제중을 설립하고, 영어 사교육을 부추긴 것이 바로 현 정부와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아닌가. 영어 사교육을 뿌리 뽑으려면 영어 사교육을 유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학교 영어 교육이 왜 정상화되지 않는지를 규명해서 이를 바로잡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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