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드라마에는 이유가 있다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07.1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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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유산>, 시청률 40% 눈앞 눈물 거둔 한효주는 ‘인상녀’로 인기 통속적 재미에 ‘따뜻함’ 담아 ‘대박’

ⓒSBS 제공


<찬란한 유산>이 이른바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오르려 하고 있다. 시청률이 4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부 드라마들은 높은 시청률을 손쉽게 올려 왔다. 하지만 젊은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에게 40%는 그저 꿈일 뿐이었다. <찬란한 유산>은 모처럼 젊은 시청자들까지 끌어들이며 40% 고지에 거의 근접했다. 화제성으로 보면 <아내의 유혹>이나 <꽃보다 남자>처럼 폭발적이지는 않다. <아내의 유혹>처럼 ‘센’ 이야기도 아니고, <꽃보다 남자>처럼 트렌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내조의 여왕>이나 <선덕여왕>처럼 대스타의 재기라는 화제성도 없었다. 때문에 <찬란한 유산>은 다른 유명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지지자를 늘려 왔다.

20% 선을 넘길 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조명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30% 선을 넘기면서 서서히 화제의 중심에 자리하기 시작했고, 40% 선에 육박하자 관련 기사가 쏟아지며 ‘완소’ 드라마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이다. 조연까지 핵심 캐릭터들이 모두 화제가 되는 전형적인 국민 드라마의 길로 가고 있다. 하지만 어느 한 명이 대스타로 뛰어오르는 것은 아니다. <모래시계>의 최민수나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처럼 화제를 폭풍같이 양산하는 캐릭터도 없다. 그렇게 강렬한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아직도 <찬란한 유산>은 시청률에 비해 화제성이 떨어진다. 그런 ‘강렬한 무언가’가 없어도 극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이 작품에 기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톡 쏘는 어떤 것이 없기 때문에 뜨거운 논란을 양산하거나 열광적인 붐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여러 요인들이 성공적으로 융합되어 작품의 인기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처음 방영될 당시에 아무런 화제성이 없었다. 오직 하나 있었던 것이 <1박2일> 의 남자, 이승기의 존재였다. <찬란한 유산>은 사실 ‘이승기가 출연하는 드라마’라는 것 하나로만 대중에게 알려졌던 것이다. 이것으로 젊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었다. 이승기는 <1박2일>에 출연한 것으로 이 드라마에 기여한 셈이다. 

이승기가 초반부에 화제성을 담당했다면 한효주는 작품 그 자체를 감당했다. <찬란한 유산> 초반부는 가히 한효주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효주는 처음에 절절한 눈물과 애절한 사연으로 시청자의 감정을 몰입시켰다. 그때만큼은 한효주가 한국에서 눈물의 여왕이었다. 당시 많은 여배우가 드라마 속에서 울었지만 한효주가 가장 절절하며 동시에 화사하게 울었다. 그래서 극의 비극성을 살리면서도 극을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곧 세상에서 가장 환한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이승기를 톡톡 쏘아붙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캐릭터가 생생하게 약동했던 것이다. 한효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착한 캐릭터이다. <그저 바라보다가>의 황정민 캐릭터도 그랬다. 여기서 황정민은 단지 착한 모습만을 보여줘서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대중적인 호응은 없었다. 한효주는 착한 것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대중은 그런 한효주에게 ‘인상녀’라는 애칭을 선사했다.

거기에 이승기가 불을 붙였다. 이승기의 캐릭터는 초반에 평면적이기만 했다. 하지만 한효주가 인상녀라고 불릴 즈음 이승기의 캐릭터도 입체적이 되었다. 한효주에게 점차 끌리며 성격이 변화해갔던 것인데, 이승기는 그것을 아주 성공적으로 표현해냈다. 이것으로 이승기는 연기력 논란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며 한효주와 함께 쌍끌이로 극을 이끌기 시작했다.

<찬란한 유산>에서 조연들의 역할은 최고 수준이다. ‘착한 할머니’ 반효정과 ‘나쁜 아줌마’ 김미숙의 기여도는 주연들에 못지않다. 김미숙은 한효주의 반대편에서 온갖 악행을 일삼으며 극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핵심 캐릭터이다. 김미숙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지 않고, 도끼눈을 하지도 않고,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음으로 해서 작품을 ‘막장’에서 구원했다. 하지만 그녀가 저지르는 악행의 수위는 막장과 동급이다. 그녀는 절대악의 화신으로 작품에 막장 드라마와 같은 흥미를 부여했다.

조연들의 매력도 최고 수준

▲ 제작발표회에서 진혁 감독, 이승기, 문채원, 김미숙, 한효주, 한예원, 배수빈(왼쪽부터) 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효정은 인본경영, 측은지심 같은 ‘착한 가치’를 구현함으로써 이 드라마를 확실하게 막장과 다른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효정의 존재와 그녀가 대표하는 가치로 인해 이 드라마에는 찬사가 쏟아진다. <찬란한 유산>의 약진을 두고 막장의 시대가 끝났다는 식의 보도들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효주를 지켜주는 배수빈은 여성들이 열광하는 훈남 보디가드 캐릭터이다. 이런 캐릭터의 인기는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을 지켰던 훈남 보디가드 이정재, <내조의 여왕>에서 김남주를 도왔던 훈남 사장 윤상현이 이미 증명했다. 나쁜 남자 이승기와 훈남 배수빈의 조합은 작품에 힘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도 <찬란한 유산>은 극 자체에 힘이 있다. 한효주도 이승기도 절대로 본인들의 스타성만으로 극을 성공시킬 수는 없었다. 극의 매력이 받쳐준 상태에서 주요 캐릭터들이 만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중 통속극으로서

<찬란한 유산>의 매력은 전형적인 명랑소녀 신데렐라극이라는 데 있다. 최근 한국인은 ‘칙칙한’ 이야기보다는 밝고 화사한 것을 원했다. 초반 <찬란한 유산>처럼 <남자 이야기>도 주인공이 절절한 추락을 경험했다. 그러나 <남자 이야기>는 칙칙한 복수극으로 갔고, <찬란한 유산>은 한효주의 화사한 눈물과 함께 밝은 신데렐라극으로 갔다. 대중은 후자에 환호했다.

동시에 <찬란한 유산>에는 강렬한 선악 대비가 깔려 있다. 절대 선 한효주와 절대 악 김미숙의 대립이다. 대중이 이런 단순함을 얼마나 선호하는지는, 젊고 예쁜 딸인 문채원보다 엄마인 김미숙에게 시선이 모아지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문채원은 주저하는 보통 사람인데 반해 김미숙은 가증스런 절대 악인이다. 대중은 악인이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구도에 빠져들었다.

<찬란한 유산>은 여기에 다른 미덕을 첨가함으로써 여느 선악 구도 신데렐라극에서 벗어났다. 바로 ‘따뜻함’이다. 이 드라마는 시종 인간의 가치를 역설함으로서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밝고, 경쾌하고, 극단적인 감정과 대립이 어우러지는 준재벌 신데렐라극으로서의 통속적 재미는 다 주면서도, ‘따뜻함’을 첨가함으로서 시청자의 얼굴에 미소를 만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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