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진’ 없이 모신 외국인 유학생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07.2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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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학, 입학시 건강검진 서류 요구한 곳 없어 취업 비자 신청시 ‘필수’…범위 확대 당장 힘들어

▲ 7월22일 종로구 인사동 하나로의료재단 하나로의료원에서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진찰실로 들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국내 대학들의 검역에 구멍이 뚫렸다. 신종플루가 사그라들기는커녕 점점 확대되고 있는 요즘, 현재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 예정인 2010년 재외국인 입학 전형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 서류를 요구하는 대학은 전무한 상태이다. <시사저널>은 서울대·부산대·경북대 등 국립대 세 곳과 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서강대 등 사립대 네 곳 등 일곱 개 대학의 입학처를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결과, 2010년 입학 전형은 물론 가까운 2~3년 내에도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건강검진 증빙서류인 ‘메디컬레터’를 요구할 계획이 있는 학교가 한 곳도 없었다. 

보건진료소 담당자와 입학처 담당자가 서로 다른 말을 하는 대학도 있었다. 서울대의 경우 보건진료소 담당자인 한성구 교수는 “2010년부터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입학 신청 서류와 함께 메디컬레터를 받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으나 입학관리과에서는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라고 딴소리를 했다.

이화여대도 마찬가지이다. 이화여대 대학건강센터 김은경씨는 “1년 전쯤, 대학 본부에서 이 제도의 시행 여부에 대해 문의해 왔다. 그때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공부를 제대로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건강 상태를 점검해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답했다. 그래서 ‘메디컬레터’ 제도가 시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답했지만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화여대 최기준 입학처장은 “자문을 얻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 제도가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인 발전 방안으로 구상은 하고 있지만 당장 개선될 여지는 희박하다”라고 해명했다.

한국 학생들은 외국 나갈 때 검사 비용만 15만원

한국의 학생들은 외국 대학으로 나갈 때 깐깐한 건강검진 과정을 거친다. 방역 체계가 세계적으로 가장 철저한 호주의 경우, 호주 정부가 각 나라마다 지정해 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에 여섯 개 정도의 지정병원이 있다. 병원에 가서 다섯 가지 항목 정도에 대해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의사의 문진과 청진도 받아서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기록해야 한다. 이때 드는 비용만 15만원이다.

호주에 유학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최제민씨(28)는 “엑스레이 판독을 아주 까다롭게 한다. 별 것 아닌 흔적을 가지고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재차 검사를 요구해 다소 번거로웠다. 문진도 했다. 전염성이 있는 환자가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호주의 의지가 엿보였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미국도 철저한 검역 체계를 갖추고 있기로 유명하다. 미국 주립대는 각 주가 정한 주법에 따라 외국 유학생들의 건강을 관리할 정도이다. YBM 어학원의 한 직원은 “서부보다 동부에서 좀더 깐깐하게 외국 유학생들의 건강을 살펴보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포스트 닥터 과정을 밟고 있는 최제민씨는 입학 당시 무려 여덟 개의 백신 주사를 맞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다행히 군 장교로 파병을 나간 경험이 있어 그때 당시 맞았던 기록들이 남아 있어 쉽게 증명할 수 있었다. 최씨는 “나 같은 경우는 드문 경우이다. 한국 학생들 대다수가 미국에 유학 오려면 백신을 다시 맞는다. 신생아 수첩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지 않은 탓에 과거 맞았다는 점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신생아 수첩 없으면 유학도 못 간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겠는가”라며 씁쓸해했다.

일부 외국 대학은 질병에 대한 검사뿐만이 아니라 학생의 체력 상태를 묻기도 한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하나로 의료재단 홍두루미 의학 전문의는 “학생이 거친 운동을 해도 되는지 여부를 묻기 위해 마르판 증후군이 있는지도 본다. 손발이 비정상적으로 길고 키도 지나치게 크면 운동을 하다가 순간 쓰러질 수 있어 이런 문제의 소지를 사전에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외국 대학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건강검진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함이 크다. 미국이 유독 아시아계 유학생에 대해 결핵 검사를 철저하게 하는 것도, 결핵이 모두 아시아계 미국인에게서 발생했다는 통계 자료 때문이다. 서울메디칼 김형일 원장은 “한국은 결핵 고위험 국가로 분류되어 있어 국내 학생들이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훨씬 더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책임 소재를 확실히 하기 위한 방편으로 ‘메디컬레터’를 요구하기도 한다. 홍의학 전문의는 “미국만 보더라도 학내에 홍역이 발생하면 학교가 책임진다. 똑같은 논리로 외국 학생들이 입학해 전염병이 발생하게 되면 책임 여부를 따지게 된다. 그때 대학은 ‘이 학생에 대해 검사할 만큼 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철저한 과정을 거치는 측면도 있다”라고 해석했다. 쉽게 수치화되지 않는 사회적 비용마저도 계산한다. 즉, 외국 학생들이 질병에 걸려 병원을 이용하게 되면 자국민들이 병원을 이용할 때 겪어야 하는 불편과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전 예방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계산이다. 

▲ 미국 대학에서 요구하는 메디컬레터(건강검진 확인표).

외국인 유학생 급증하는 추세에 맞춰 제도 도입해야

한국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전염병을 퍼뜨려 크게 문제시된 사례는 없다. 학교 당국에서 ‘메디컬레터’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인들을 중심으로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화여대 대학건강센터 김은경씨는 “유학생들의 입학 여부를 제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를 제대로 마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지 정도는 학교가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 도입을 이야기했다. 유학생들이 급증하고 있어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의료인들은 외국인 유학생들의 건강을 검진한다는 것이 자칫 외국인 차별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워 한다. 한국 대학 신입생들에게 건강검진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외국인들에게만 요구하면 그런 오해를 살 여지가 충분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한성구 교수는 “서울대는 10여 년 전부터 한국인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건강검사를 필수 사항에서 선택 사항으로 바꾸었다. 매년 건강검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수검률이 20% 남짓밖에 안 된다. 미국이 외국 유학생들에게 건강검진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자국민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검진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려면 재학생에 대한 검진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2008년부터 취업 비자를 신청하는 외국인들에게 건강검진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외국인 유학생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게 되면 대학들의 반발만 살 뿐이다. 하지만 각 대학에 혜택을 주면서 제도 도입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견인차 역할을 한다면 도입 시기를 한참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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