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살기도 벅찬 ‘투사의 후손’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8.1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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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 “독립유공자 직계 1백32명, 생계 곤란”

▲ 곽재구 선생의 손자인 곽두열씨. ⓒ시사저널 임영무

8·15광복절이 올해로 64주년이다. 해마다 광복절이 돌아오면 ‘잊혀졌던’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09년 8월 현재 독립유공자 수는 6천6백99명이다. 이 가운데 현재 생존해 있는 독립유공자는 1백90명이며, 유족은 6천5백9명이다. 그런데 독립유공자의 유족들, 다시 말해 독립유공자 후손들 가운데 1백32명이 국가보훈처에서 실시한 생활실태 조사 결과 ‘생계 곤란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북아현동 빌라에서 살고 있는 곽두열씨(62)는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된 이후 전라도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곽재구 선생의 손자이다. 곽씨는 요즘 지병인 당뇨에 합병증까지 겹쳐 아내가 식당 일 등으로 벌어오는 월 50만~60만원 정도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지급되는 연금도 받을 수 없다. 연금이 독립유공자 맏손자까지만 지급되는데, 곽씨는 둘째 손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딸을 출가시켜놓고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는데 생활이 너무 어렵다. 다행히 올해부터 국가보훈처에서 월 9만원 정도 지원비가 더 나오고 있어 근근이 버텨가고 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명한 독립유공자 후손이 못사는 경우는 드물어

이런 곽씨에 비해 같은 독립유공자 후손인 최호석씨(71)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1920년대 간도 지역에서 독립군에게 자금을 댔던 최진동·최운산·최치흥 3형제의 활약은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 승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 최운산 선생의 아들이 최씨이다. 최운산 선생은 슬하에 3남4녀를 두었는데 가족들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와중에 뿔뿔이 흩어졌고 최씨는 큰누나, 둘째형과 중국 도문 시에 남겨졌다. 그러다 지난 1986년 KBS의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통해 우리나라에 살던 큰형과 재회했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그동안 최씨는 국내 대학에서 중국어 강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왔는데, 당뇨에다 척추와 목 수술까지 받으면서 가계가 기울었다고 한다. 서울 화곡동 14평짜리 빌라에 살고 있는 그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 사이에서도 그 지명도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는 모양새이다. 실제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인 김진 전 대한주택공사 사장과 김양 국가보훈처장 등은 모두 정부 고위직에 올랐다. 개인적 능력과 함께 백범의 손자라는 배경도 작용했으리라는 분석이다. 특히 김처장은 방산업체인 외국계 기업의 대표직을 역임하는 등 상대적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국가보훈처의 한 관계자는 “우리 국민들이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독립유공자의 후손들 가운데 생활이 어려운 사람은 그리 많지 많다. 반면에 유명하지 않은 독립유공자 후손이거나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후손들 가운데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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