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선덕여왕>은 온 국민을 얻었다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08.2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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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고현정의 힘…시청률 40%대 올라

▲ ⓒMBC 제공

시청률 40%를 돌파하며 국민 드라마 반열에 올랐던 <찬란한 유산>이 종영한 지금, <선덕여왕>이 다시 40% 고지를 넘어 <찬란한 유산>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젊은 층이 많이 보는 주중 미니시리즈이기는 하지만, 주부들도 편하게 몰입할 수 있는 사극으로서 저변을 넓힌 것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사극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자명고>는 ‘자멸고’라고 불릴 만큼 재난을 당했다. <천추태후>의 성적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이 두 작품은 기본적으로 어둡고, 무겁다. 요즘 한국인은 ‘칙칙한’ 분위기의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자명고>는 젊은 스타를 내세워 시청자층을 좁혔고, 무거운 내용 때문에 젊은 시청자들에게마저 외면을 당했다. <천추태후>는 전통적인 대하 사극으로 주부보다는 성인 남성에게 주목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성인 남성들은 강력한 남성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선덕여왕>은 일단 주부들에게 최고의 유명 인사라고 할 수 있는 고현정을 내세워 시선몰이에 성공했다. <꽃보다 남자>의 꽃미남들을 떠올리게 하는 젊고 용맹한 전사들을 차례차례 부각시켜 젊은이들의 주목을 유지했다. 또, 화사한 화면과 빠른 전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구성도 드라마의 인기에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1등 공신은 역시 미실 역의 고현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고현정은 이미 고현정이 출연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이 작품에 공헌했지만, 드라마 속에서의 연기는 스타 고현정의 스타성을 뛰어넘는 카리스마로 작품의 인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선덕여왕>이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열전’처럼 느껴질 정도의 존재감이었던 것이다.

미실은 ‘마성’으로, 화랑은 ‘야성’으로

고현정은 <찬란한 유산>의 악역인 김미숙, <아내의 유혹>의 악역인 김서형 등과 함께 올해의 악역으로 꼽힐 만하다. 하지만 김미숙과 김서형이 극 중에서 주인공을 받쳐주는 역할을 한 것에 비해, 고현정은 마치 모든 인물이 고현정을 빛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함으로써 독보적인 악역으로 우뚝 솟았다.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가 그녀의 파멸을 바라지 않는, 오히려 고현정의 미실을 은근히 응원하는 듯한 양상까지 나타났을 정도이다. 한국인은 요즘 선하든 악하든 강력한 캐릭터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김미숙도 김서형도 욕을 먹기보다는 찬사를 받았었다. 고현정의 미실은 강력한 악역의 카리스마에, 미모에서 풍기는 팜므파탈적인 마성까지 더해 최고의 캐릭터가 되었다. 여성으로서 여러 남성들을 당당하게 거느리는 전복적인 매력도 여성 시청자들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은 어린 아역들이 성인이 된 후, 처절한 전투신을 선보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처절한 전투신에서 전면에 등장한 것은 바로 젊은 화랑들이었다. 극 초반에 화랑은 세력 다툼이나 하는 귀족 도령들처럼 보여 이렇다 할 매력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국(신라)에 위기가 닥치자 모두들 떨쳐 일어나 최전선으로 달려나갔다. 거기서 시청자들은 말로만 듣던 화랑의 용맹을 볼 수 있었다. 이때부터 화랑들은 미실과 함께 <선덕여왕>의 인기를 견인하는 두 축이 되었다. 

<선덕여왕>은 젊은 전사들을 한 명씩 부각시켜 그때마다 화제몰이를 해나갔다. 요즘 <결혼 못하는 남자>에 등장했던 것과 같은 초식남 캐릭터가 트렌드라는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뛰게 한 것은 초식남이 아니라, <선덕여왕>의 카리스마 꽃미남들이었다. 이 용맹한 청년들 때문에 잠도 못 잘 지경이라는 여성팬들이 속출했다. 가요계에서 걸그룹 소녀들의 천하가 펼쳐지고 있을 때 미실의 마성이 드라마계를 평정하고, 보이밴드들이 주춤한 사이에 <선덕여왕> 화랑들의 야성이 여성들의 심장을 뚫은 것이다.

덕만과 유신의 강력한 변신도 한몫

이에 반해 주인공인 덕만과 김유신의 캐릭터는 너무나 존재감이 없었다. 아역 당시 이 두 캐릭터는 많은 기대를 품게 했으나, 성인이 된 순간 기대는 전면적으로 배반당했다. 덕만은 도무지 감정을 이입할 수 없는 ‘땡깡’ 소녀가 되었으며, 김유신은 엄태웅의 ‘엄포스’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에 따라 엄태웅은 연기력 논란까지 벌어지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작품 중반 25회를 기점으로 이 두 인물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덕만과 김유신에게 리더십과 의지, 카리스마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비담’이라는 새로운 청년 전사가 등장하고, 덕만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덕만과 김유신 캐릭터에 변화가 시작되었던 시기에 <선덕여왕>은 수도권 시청률 40% 돌파에 성공했다. 앞으로 미실의 카리스마와 꽃미남 청년들의 활약 그리고 덕만과 김유신의 강력한 변신이 어우러진다면 우리는 또 다른 국민 드라마를 만나게 될 것 같다.


▲ 왼쪽부터 알천랑 역의 이승효, 김춘추 역의 유승호, 비담 역의 김남길, 월야 역의 주상욱. ⓒMBC 제공
<선덕여왕>은 사극판 <꽃보다 남자>이다. 덕만 주위에는 신라시대 F4가 포진해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이는 알천랑 이승효이다. 알천랑이 전투를 지휘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네티즌은 열광했다.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나팔을 불던 야성적인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될 만큼 강렬했다. 최근 이승효를 잡기 위해 매니지먼트사들이 ‘불꽃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 다음 등장한 것은 비담 역의 김남길이다. 김남길의 경우도 첫 번째 전투신 이후 신드롬 현상이 일어났다. 비담은 김남길이 벤치마킹했다고 밝힌 것처럼 만화 <배가본드>의 주인공 무사 같았다. 충격을 받은 네티즌은 ‘짐승 간지’라는 헌사를 바쳤다. 알천랑과 비담의 야성은 초반부 김유신의 무기력함과 대비되어 더욱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꽃미남은 월야 역의 주상욱이다. 주상욱은 아직 용맹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얼굴만 비추었는데도, 바로 검색어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무서운 꽃미남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누나들의 로망이라는 유승호가 김춘추 역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유승호는 꽃미남 군단의 화룡점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엄태웅이 덕만을 지키는 꽃미남 군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것은 문제이다. 엄태웅이 카리스마 있는 눈빛을 완전히 회복해야 덕만 군단의 중심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외모가 아니라 힘의 문제이다. 엄태웅은 그동안 너무 힘이 없어 보였다. 과연 엄태웅이 ‘포스’를 회복해 F5를 형성할 수 있을지, 주목해볼 만하다. 신라 F4는 경쟁 프로그램에는 절망이 되고 있다. 알천랑, 비담 등이 등장하며 화제를 쓸어갈 때마다 경쟁작들의 존재감은 작아져 갔다.

<드림>의 손담비와 원조 F4인 김범은 재난을 당하고 있다. 원조 F4를 잡은 <선덕여왕> F4, 그 가운데에 있는 덕만은 꽃미남으로 둘러싸인 행복한 여왕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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