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쫓고, 스스로 나가고… 사장 ‘연임’ 위한 멍석 깔기인가
  • 김성후 | 기자협회보 기자 ()
  • 승인 2009.09.08 17: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병순 KBS 사장, 임기 만료 두 달여 앞두고 부사장·본부장 일괄 사표 처리해 “경영 성과에만 집착, 프로그램 질과 공정성 모두 잃었다” 비판도 가중

▲ 이병순 KBS 사장(맨 왼쪽)은 정연주 전 사장의 잔여 임기를 맡았던 까닭에 오는 11월23일 임기가 끝난다. ⓒ연합뉴스(왼쪽), 시사저널 이종현(오른쪽)

이병순 KBS 사장은 지난 9월2일 오전, KBS 신임 이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전날 김성묵·유광호 부사장의 사표를 전격 수리한 배경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전화였다. 후배들의 길을 터주기 위해 부사장들이 자진해서 사표를 냈고, 사전에 알리지 못해 유감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그 이면에는 후임 부사장에 대해 이사들이 동의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한다. 김부사장과 본부장들의 전원 일괄 사표, 이어진 유부사장의 동반 사퇴는 KBS 내부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임원진 총사퇴는 이병순 사장 직계로 알려진 유광호 부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부사장은 임원진에게 사퇴를 종용했고, 그 과정에서 김성묵 부사장과 일부 본부장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이사장은 유부사장의 사표까지 일괄 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금 누진제 폐지에 따른 보수 규정안이 이사회에서 두 차례 부결된 데 대한 문책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이병순 사장의 연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난해 8월27일 취임한 이병순 사장의 임기는 오는 11월23일까지이다. 전임 정연주 사장의 잔여 임기를 맡았던 까닭에 재임 기간이 1년3개월에 불과하다. 그래서 연임에 대한 의지가 역대 어느 사장보다도 강하다고 한다. 이번 임원 총사퇴가 연임으로 가는 걸림돌을 우려한 이사장 측근들에 의한 ‘친위 쿠데타’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KBS 노동조합은 ‘본부장 신임 투표를 취임 후 1년이 경과되는 시점에 실시한다’라는 단체협약 규정에 따라 오는 16~17일 본부장 신임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신임 투표는 ‘이병순 사장 체제’에 대한 평가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관심이 높았고, 특히 이사장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이 높아지면서 부정적 표심이 예상되기도 했다. 그런 파장을 없애기 위해 신임 투표 대상자인 본부장들을 조기에 사퇴시켜 투표의 싹을 제거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사장이 청와대 등으로부터 연임에 대한 언질을 받고 이른바 ‘집권 2기’에 대비해 ‘친정 체제’를 구축, 조직 장악력을 높이려는 시도라는 관측도 있다. 임원진에게 일괄 사표를 받고,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할 채비를 하는 것은 임기 만료를 두 달 여 앞둔 ‘레임덕’ 사장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이유에서이다. KBS 주변에서는 “경영진 재편 같은 큰 사안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일 만한 배짱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라는 평이 많다. 한편에서는 연임이 불투명해진 이사장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도 있다.

“흑자는 신뢰도 하락과 맞바꾼 것” 

취임 초부터 연임을 염두에 둔 이병순 사장은 경영 성과를 내는 데 공을 들였다. 정연주 전 사장이 표면적으로 적자 경영을 이유로 해임되었던 터라 가시적인 경영 성과는 그의 능력을 대내외에 알릴 수 있는 필요 충분 조건이었다. 이사장은 매달 경영수지 동향을 점검할 정도로 경영 적자 해소에 주력했고, 그 결과 7월까지 79억원의 흑자를 내면서 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사장은 이런 경영 개선 성과를 발판 삼아 수신료 인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KBS의 구성원들 대다수는 수신료 현실화 필요성에 공감한다. 하지만 KBS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신료 인상은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수신료 거부 운동 등을 검토하고 있다.

KBS에 대한 불신은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사저널>이 전문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KBS(25.5%)의 신뢰도는 MBC(31.3%), 한겨레(30.3%)에 뒤졌다. 

<기자협회보> 조사에 따르면, 사장 교체 이후 KBS 보도가 ‘더 불공정해졌다’는 의견이 54.8%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연주 사장 교체 과정에서 결성된 ‘공영 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측은 최근 성명에서 “신뢰도 하락은 ‘공정’과 ‘공익’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병순 사장 1년의 초라한 성적표이다”라고 밝혔다.

신뢰도 하락은 KBS 프로그램의 질 저하와 ‘비판성 상실’로 나타난다. “3년 만의 흑자는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과 맞바꾼 것이다”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KBS 기자들과 PD들은 지난 1월 용산 참사와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일부 국민들로부터 지탄과 야유를 받고 취재를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때부터 KBS 내부에서 위기론이 비등해지기 시작했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이병순 사장은 연임을 위한 조건을 저울질하고 있는 사장의 자리에서 내려와 KBS의 현주소를 돌아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