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증파’ 뜨거운 감자 쥔 오바마 부시 전철 밟을까 전전긍긍
  • 조홍래 | 편집위원 ()
  • 승인 2009.09.1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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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미군 사령관, 알카에다의 2차 공격 방어책으로 지상군 대규모 추가 증원 건의해 논란

▲ 8월19일 아프가니스탄의 산악 지대에서 군사 작전을 벌이다 다친 미군 병사들을 후송하기 위해 헬기가 작전 지역에 내려앉고 있다. ⓒ연합뉴스


오바마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주둔 미군 증원 문제로 최악의 딜레마에 빠졌다. 지상군을 대규모로 증원해야 미국에 대한 알카에다의 2차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현지 사령관의 건의를 놓고 미국의 여론이 사분오열되었다. 증원 논의는 미국 조야를 뜨겁게 달구고 있으나 어느 길이 옳은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전쟁을 ‘필요한 전쟁’으로 규정하고 아프간 주둔 미국 지상군을 6만8천명으로 증원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연말이면 아프간 주둔 지상군은 나토군 4만명을 포함해 10만3천명으로 늘어난다. 문제는 이 규모의 병력도 모자라 추가 증원이 필요한 현실이다. 증원을 둘러싼 토론은 지난 6월 취임한 스탠리 맥크리스털 연합군 사령관의 전략평가서가 도착한 후부터 시작되었다. 25쪽짜리의 이 보고서는 게이츠 장관을 통해 오바마에게 전달되었다.

맥크리스털 장군은 보고서에서 구체적 병력 수를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세 가지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1만 내지 1만5천명의 소규모 증원, 2만5천명의 중규모 증원, 4만5천명의 대규모 증원이 그 골자이다. 게이츠 장관은 아직 최종 결정은 하지 않았으나 아마도 중규모 증원을 건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 건의가 수용되면 아프간 연합군은 미군 9만3천명을 포함해 총 13만3천명이 된다. 이 규모는 이라크 전쟁이 절정에 달했던 때의 연합군 총 병력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아프간 전쟁을 승리로 마감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보장이 없다. 9·11 사태 이후 아프간에서 알카에다를 몰아내기 위한 군사 작전은 8년째 계속되고 있으나 승리하리라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전 나토 사령관 웨슬리 클라크 장군은 아프간에서 탈레반과 알카에다 은신처를 소탕하고 정상적인 민주국가를 건설하려면 적어도 20~30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프간은 수천 년 동안 외침을 견뎌온 나라이다. 이런 나라를 미국 대통령의 1기 임기 중에 문명 국가로 바꾸려는 생각 자체가 무모해 보인다. 

이제는 이 전쟁에 대한 미국인의 전폭적인 지지마저 사라지고 있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인 3천여 명을 죽인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오사마 빈 라덴의 행방은 묘연하고 ‘오바마의 베트남전’으로 변해가는 양상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56%는 이 전쟁도 이라크전처럼  ‘불필요한 전쟁’이라고 인식한다. 오바마의 ‘필요한 전쟁’이라는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증원을 둘러싼 여론은 여야, 좌우는 물론 오바마의 측근까지 갈라놓았다. 대테러 전문가들은 알카에다를 성역에서 추방하기 위해서는 병력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지상군 증원이 해답이 아니라고 맞선다. 이들은 증원보다는 크루즈 미사일이나 무인기를 이용한 공격 또는 특공대 작전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알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하는 아프간 및 파키스탄 내 토호들을 매수하는 것도 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미군과 유럽 교관들은 아프간 군과 경찰을 훈련시킬 때까지 미군과 나토군이 탈레반 장악 지역을 소탕해 시간을 벌어주어야 한다는 현지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 과정을 거쳐 아프간이 스스로 치안 능력을 갖추고 정상적인 국가를 건설할 경우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준동할 소지가 없어진다는 논리도 그럴듯하다.

보좌관들도 의견 갈라져…이라크전 때 부시와 비슷한 처지에 몰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오바마의 전략은 ‘소탕, 장악, 건설’이다. 이는 한마디로 아프간 국민의 마음을 얻는 길이다. 재래식 전쟁이든 대테러전이든 사람의 마음을 얻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손자병법의 핵심이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마이크 밀런 합참의장도 이 전략에 동의한다. 조지타운 대학의 테러리즘 전문가 브루스 호프만 교수도 원격 조종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한다는 전략은 매우 유혹적이기는 하나 잘못된 이론이라고 말했다. 9·11 이전에 먼 거리에서 아프간 문제를 다루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공습은 민간인을 죽일 위험이 많다. 최근 아프간 북부 연료 탱크에 대한 나토의 공습으로 민간인 다수가 사망함으로써 독일군과 미군 간에 책임 공방까지 벌어졌다.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면 미국이 우호 세력으로 포섭하려는 사람들까지 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공습은 정확한 정보를 기초로 해야 하는데 주로 파키스탄 정보 기관이 제공하는 탈레반 및 알카에다 소재지 정보는 대부분 엉터리였다. 결국, 미군은 장님 폭격을 한 셈이다. 맥크리스털 사령관은 민간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공습 규칙을 강화했다. 그 결과 공습 작전은 크게 위축되었다. 

아프간에서 지상전을 줄이면 파키스탄 내 알카에다 성역이 증가해 결국 미국에 대한 위협이 증가한다. 아프간에서는 어떤 작전을 펴든 파키스탄이 변수이다. 현재로서는 파키스탄 북부가 테러리스트들의 성역이 되는 것을 방지할 묘안이 없다. 아프간 미군을 줄이면 파키스탄은 즉각 미국을 의심하게 된다. 미국이 파키스탄 안보에 관심이 없다고 판단하고, 과거처럼 테러리스트들과의 유대를 재건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파키스탄 국민 85%는 알카에다보다는 미군을 위협으로 간주한다.

조지타운 대학의 평화안보연구소장 다니엘 바이먼 교수의 생각은 또 다르다. 아프간 미군을 증원하면 할수록 미국은 점점 파키스탄에 의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병참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간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자 오바마는 증원이 어떻게 미국 안보를 지키는지에 대해 소상한 설명을 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최근 아프간 현지를 시찰하고 온 민주당의 봅 케이지 상원의원은 오바마가 본질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주 국민에게 성명하라고  촉구했다.

아프간 증원 문제를 놓고 오바마의 보좌관들마저 의견이 갈라졌다. 이들은 현지 사령관의 증원 요구가 오기 전부터 아프간 미군의 적정 규모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의 리더는 조셉 바이든 부통령이다. 그는 증원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파키스탄 안정화 작업을 방해한다는 것이 이유이다.

증원 찬성 쪽에는 아프간 특사 리처드 홀브루크가 있다. 그는 아프간 민간인을 보호하고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궤멸하기 위해서는 미군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증원에 동조하면서도 과도한 미군 증원 때문에 미군이 점령군으로 비칠까 우려한다. 역사의 심술일까, 부시의 이라크를 그토록 비난하던 오바마가 어느새 부시와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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