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트·대리인 내세워 ‘철통 보안’ 누가 사고파는지 아무도 모른다
  • 강용석 | 미국 부동산 전문가 ()
  • 승인 2009.09.2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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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동산 진짜 투자자는 쇼핑센터 등 상업용에 눈독…유한책임회사 형태로 투자하면 추적 어려워

▲ 미국 주택에 투자하는 한국인들은 거주용을 선호한다. 아래는 로스앤젤레스 북부 해안가에 있는 벤투라의 고급 주택들. ⓒ강용석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30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이 아무개씨는 ‘조용한’ 거래만 한다. 

그는 1년에 3~4차례만 바쁘다. 한국에서 오는 투자자 때문이다. 한국 투자자는 유명 인사는 아니지만 돈은 많다. 연줄로 인연을 맺고 수년째 거래 중이다. 그는 평상시에는 쇼핑센터에서 나오는 임대료의 4%를 관리비조로 챙긴다. 그리 많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1년에 한두 차례 건물을 매매하고 받는 커미션 수입이 상당하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매매가의 3~4%가 그의 몫이다. 매매가가 5백만 달러라면 수수료가 15만 달러 정도는 되는 셈이다.

투자자와 에이전트는 동반자 관계이다. 투자자는 자신의 미국 투자를 에이전트에게 위임하고, 에이전트는 투자자 덕분에 생계를 유지한다. 미국 부동산 투자와 관련해 한국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보안이다. 자신이 미국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아마도 돈의 출처가 의심스럽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구린 돈’의 미국 부동산 투자는 항상 이슈화하고 있다. 한 정치인이 정치 자금을 로스앤젤레스의 오피스 빌딩에 투자해 묻어두고 있다는 루머 등이 바로 그런 예이다. 하지만 실체가 드러나는 일은 그다지 흔치 않다. 에이전트와 투자자가 공생 관계인 탓이다. 미국 부동산 투자는 실명이 아니라도 투자할 수 있다. 미국만큼 부동산 투자에 개방적인 나라도 없다. 불법체류자일지라도 돈만 있으면 부동산 매입이 가능하다. 다만, 거주자보다 융자 금액이 적거나 이자율이 약간 높은 정도일 뿐이다. 유한책임회사(Limited Liability Company) 형태로 투자하면 돈을 댄 사람 이름을 등기부등본에서 찾지 못한다. 회사 이름과 대리인인 대표 이름만 있다. 건물 10동을 구입했다 하더라도 유한책임회사 이름을 모두 다르게 하면 추적하기가 어렵다.

불법체류자도 돈만 있으면 부동산 매입 가능

▲ 매달 임대 수입이 들어오는 쇼핑센터는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업용 부동산 가운데 하나이다. ⓒ시사저널 자료사진

미국 부동산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이는 대리인이다. 대리인은 투자자의 친인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에서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 한국인 투자자가 많은 것은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다 보니 믿을 만한 친인척이 많이 살고 있어 그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사례가 많다. 물론 매매가 쉽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투자자들은 로스앤젤레스 어느 지역에, 어떤 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을까? 먼저 주택 투자는 주거용이 많다. 유학을 하는 자식을 위해 주거용으로 투자하고, 때가 되면 자식들에게 물려준다는 생각에서다. 1년에 두세 차례 들어오는 투자자가 호텔 투숙을 꺼려 집을 사는 사례도 있다.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지역은 학군이 좋고 교통이 편리한 베벌리힐스, 어바인, 한인타운, 라크라센터 등이다. 아무리 가격이 싸더라도 내륙 쪽 투자는 자제한다. 휴가를 보내기 위한 용도로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지역은 바닷가가 가까운 샌디에이고, 벤투라, 팔로스버디스 등이다.

투자용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예상보다 많지는 않다고 지역 에이전트들은 말한다. 매년 재산세로 주택 감정가의 1~1.5%가 지출되고, 또 임대했을 때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엄청난 부동산 호황기라면 몰라도 시세 차익을 챙기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100만 달러를 투자해 1백50만 달러에 판다 해도 투자자 수익은 그리 많지 않다. 먼저 주택을 구입할 때 비용이 소소하게 들어간다. 주택 보험료, 에스크로 비용, 융자 비용 등을 합치면 매매가의 3~4% 선, 팔 때 역시 중개 수수료 5~6%, 그밖에 각종 비용으로 7~8%가 빠진다. 집을 구입할 때 초기 리모델링 비용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래저래 15만 달러가 지출된다는 계산이다. 거기에 양도소득세로 차액의 30%를 내게 된다면 크게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없다.

‘진짜’ 투자자들은 수익이 발생하는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한다. 매달 나오는 임대 수입으로 은행 융자를 충당하고 시세 차익을 노린다. 쇼핑센터, 오피스 빌딩, 한국 다세대 주택격인 아파트, 호텔 투자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매입 규모가 2백만 달러를 넘어가면 대부분 개인이 아닌 유한책임회사 명의로 등기한다. 요즘 로스앤젤레스에서 인기를 끄는 매물은 건축을 하다가 공사가 중단된 채로 있는 콘도나 타운하우스, 완공은 되었으나 분양이 안 되는 콘도를 통째로 구입하는 콘도 벌크이다. 하지만 매매 가격을 놓고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흥정만 오갈 뿐 그다지 큰 진척은 없다. 구매자는 가격이 더 내리기를 기다리고, 판매자는 가격을 고수하려는 형국이다.

과거 검은돈으로 미국에 투자를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정치인이었다. 심심찮게 한인타운의 어느 건물이 전직 대통령의 통치 자금 가운데 남은 돈이라는 등등의 소문이 돌곤 했다. 정치인들의 로스앤젤레스 투자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인타운 내 대형 쇼핑센터도 바로 그 대상이었다. 소문이 계속 번지자 실소유주의 대리인은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로스앤젤레스의 기자들이 초대되었고 보도 자료가 들어 있는 봉투에는 거액의 현금이 담겨져 있었다.

아직도 이같은 소문은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에이전트와 대리인, 투자자를 잇는 연결 고리가 워낙 단단한 데다 유한책임회사라는 확실한 ‘차명 계좌’가 있어 밝혀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계 인사들도 투자를 했지만 현지 법인이라는 ‘보호막’이 있기 때문에 뉴스에 오르내리는 ‘어설픈’ 투자가 있을 리 없다. 스포츠계와 연예계 인사들의 투자 이야기도 있으나 대부분 주택 정도의 개인 투자 목적이고, 금액이 그리 많지 않아 커다란 논란거리는 되지 않는다.

요즘 한국에서의 투자는 100만~2백만 달러 개인 투자자나 펀드로 움직이는 기관 투자자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나 아직도 높은 달러화 가치 때문에 성사율은 그리 높지 않다. 한인타운에서 25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해 온 한 부동산 회사 대표는 “한국으로부터의 투자는 대부분 순수하게 접근해 온다. 검은돈 투자는 빙산의 일각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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