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사람 잡아 가두는 억울한 ‘옥살이’가 늘고 있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10.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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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형사보상금 지급 액수 해마다 크게 늘어…지검이 기소한 범죄의 무죄율도 매년 약 30% 증가

▲ 영화 의 실제 주인공인 지강헌(왼쪽)이 외친 ‘유전 무죄 무전유죄’는 1980년대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숙제를 남겼다. ⓒ연합뉴스


사례1

▲ 지난 2004년 1월 현대건설로부터 사업 관련 청탁과 함께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법정 구속되었다가 무혐의로 풀려난 박광태 광주시장. ⓒ시사저널 임준선

올해 초 한 일간지에는 중견 그룹 창업주와 법정 투쟁 중인 50대 여성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서울시 종로구 여성단체연합 총회장을 지낸 조명운씨(56)가 그 주인공이다. 조씨는 지난 1996년 승상배 전 동화홀딩스 회장(별세)과 인연을 맺었다. 몸이 불편한 그를 보좌하는 조건으로 자녀 학비와 부동산 일부를 받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났음에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2002년 7월에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직원이 입회한 가운데 각서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조씨는 약정금 이행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승 전 회장은 조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조작된 각서로 사기를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조씨는 검찰에 기소되어 1심에서 법정 구속되었다.

다행히 조씨는 지난해 6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되어 누명을 벗었다. 당시 대법원은 “승상배 회장이 수사 과정에서 각서를 본 적도 없고, 이를 작성해 준 사실도 없다고 진술했다. 고령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라고 판결했다.

이후 조씨는 검찰 및 국가를 상대로 형사보상금 청구를 신청했고, 1천7백여 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조씨는 현재 자신을 고소한 승회장과 법정에서 위증을 한 직원들을 무고죄로 고소한 상태이다. 



사례2 서울 가락시장에서 일을 하는 박 아무개씨(41)는 올해 초 성매매 및 위조 수표 사범으로 몰렸다가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그는 7개월여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경찰이 수사를 벌인 것이 문제였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은 한 은행으로부터 위조 수표 신고를 받았다. 한 중년 여성이 은행에 수표를 입금하러 왔는데, 위조 수표였다는 것이다. 이 여성은 경찰에서 “딸이 가지고 있는 수표를 몰래 가져온 것이다”라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딸은 성매매 대가로 위조 수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여성의 전화 통화 내역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범인이 대포폰을 사용했고, 피해 여성도 더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 역시 대부분 위조 수표를 받았지만, 나중에 위조 수표인 것을 알고 폐기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박씨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당시 경찰은 피해 여성을 상대로 사진을 대질하는 과정을 거쳤고, “박씨가 (범인과) 비슷하다”라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박씨는 당시 가락시장에서 새벽 1시부터 다음 날 1시까지 일하던 상황이었다. 범인이 성매매를 하던 시간은 박씨가 시장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던 때이다. 박씨는 이같은 점을 경찰에 적극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지난 2009년 2월 1심에서 법정 구속되었다. 2심 재판부가 사건을 뒤집기까지 7개월여를 구치소에서 보내야 했다.

재판부는 “범인이 대포폰을 사용한 내역을 보면 4~5일 연속으로 성매매를 했다. 가락시장에서 일하는 박씨의 입장에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 과정에서 경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 정황도 포착되었다. 당시 경찰 조사를 받은 여성 다섯 명 중 두 명은 박씨가 아닌 신 아무개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경찰은 신씨를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현재 대법원에 항소한 상태이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2심에서 이미 무죄를 받은 만큼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이재명 변호사(민주당 부대변인)는 현재 형사보상금과 별도로 경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그는 “공권력의 무리한 수사로 7개월여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로 인해 박씨는 직장을 잃었을 뿐 아니라 성매매범으로 낙인이 찍혀 주변에서 외면받고 있다. 형사보상금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어야 한다. 때문에 현재 경찰을 상대로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최근 ‘국가 폭력’으로 일컬어지는 억울한 옥살이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시사저널>이 입수한 ‘최근 3년간 지검별 형사보상금 현황’ 자료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 자료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가 정보 공개를 청구해서 확보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8개 지검이 지출한 형사보상금액은 51억9천3백여 만원에 이른다. 이는 2006년 16억7천9백여 만원, 2007년 15억7천6백여 만원에 비해 약 3백% 이상 증가한 것이다.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형사보상금은 말 그대로 수사 기관에 기소되었다가 무죄로 풀려난 뒤 국가로부터 받는 보상금이다. 형사보상금 액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형사보상 액수가 크게 늘어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군사 정권 시절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한 재심이 잇따라 무죄가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이른바 ‘태영호 납북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법원은 최근 선원 8명의 유족들에게 1천만~5억6천만원의 형사보상금 지급을 판결했다. 간첩 누명을 받았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강희철씨는 6억6천만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았고,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역시 유족 8명이 각각 6천2백87만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모두 합하면 2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법원이 지난해부터 형사보상금을 1일 최대 15만8백원으로 상향 조정한 점도 일조했다는 평가이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형사보상금 액수가 30억원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수사 기관이 무리하게 수사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정보공개센터가 최근 공개한 ‘지검별 기소자 및 무죄 판결자 수’ 자료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검찰의 기소자 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지난 2006년 1백9만4천여 명, 2007년 1백21만7천여 명, 지난해 1백31만7천여 명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무죄율도 매년 상승하는 추세이다. 1심과 2심을 합한 무죄율은 지난 2006년 3천1백72명에서 2007년 4천1백64명, 2008년 5천88명으로 매년 30% 가까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우선적으로 형사보상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이 옥살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정신적 피해는 차치하더라도, 경제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구금 없이 무죄 확정을 받을 경우 보상을 청구할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형소법 개정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국회 법사위 소속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은 최근 관련 내용을 담은 형사보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수사 기관의 강압 수사 사례 외에 고소·고발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접수된 고소·고발 건수는 56만4천5백32건에 이르고 있다. 인구 1명당 86.7건으로 일본의 1.3건보다 66.7배나 많은 수치이다. 특히 고소 사건의 기소 건수는 2007년 22.5%(9만3백60건), 2008년 21.2%(9만3천5백56건)로 매년 감소 추세이다. 이 때문에 수사나 기소가 수사 기관이나 고소·고발인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서 기인한 때에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이번 개정안의 골자이다. 최의원은 “일단 수사 대상이 되면 그가 구속되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당사자는 상당한 정신적·경제적 손실을 입었음에도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이를 위한 기틀을 마련해서 수사 기관의 수사권 남용과 함께 고소·고발의 남발을 방지하는 것이 개정안의 목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송상교 변호사도 “민사에서는 소송 비용을 상대방에게 넘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난 2007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불구속 사건이라도 소송 비용 등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가 있다. 소송 비용 확정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인지대, 송달료, 변호사 선임 비용 등 일부라도 되돌려 받을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번에 정보공개센터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눈에 띄는 통계들이 적지 않다. 우선 지검별로 기소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 소재 지검은 아니었다. 수원지검이 20만8천명으로 전국 18개 지검 중에서 기소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뒤를 이어 대구지검 13만4천명, 인천지검 11만3천명, 부산지검 11만1천명 순이었다. 서울의 경우 중앙지검이 8만7천여 명이었고, 동부지검이나 북부지검, 서부지검은 3만명대로 기소율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무죄율은 서울 중앙지검이 1천1백24건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뒤를 이어 수원지검(5백37건), 부산지검(3백53건), 광주지검(3백32건), 인천지검(306건) 순이었다. 서울 남부·동부·서부 지검도 무죄 건수가 각각 2백66건, 2백38건, 2백33건으로 기소율과 달리 무죄율은 상위권에 머물렀다.

대법원에서 공개한 전국 지방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율과 기각률 자료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구속영장 청구는 6만2천여 건이고, 발부는 4만8천여 건이다. 청구된 구속영장의 77%가 발부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구속영장 발부율이 가장 높은 곳은 춘천지법으로 84%에 달했다. 춘천지법의 경우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도 96%(2천9백24건)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에 반해 서울중앙법원은 구속영장 발부율이 66%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1위인 춘천지법과는 18%의 차이가 나오고 있다. 이를 역으로 풀어보면 구속영장 기각률이 가장 높은 곳이라는 얘기여서 주목된다. 아울러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가장 낮은 곳도 역시 서울 중앙지방법원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은 “지역 지검이나 법원별로 비교한 자료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권력을 엄정하게 집행하는 것은 무어라 할 것이 아니다. 다만, 지역별로 차이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부적으로 지침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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