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한 자원에 ‘빨대’ 꽂나
  • 임을출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
  • 승인 2009.10.2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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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압록강대교 건설·나진항 부두 이용권 넘겨줘 경제 종속화 갈수록 심화될 듯

▲ 중국이 백두산(사진) 관광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등 북한 경제의 중국 종속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연합뉴스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지난 10월4일 평양 방문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북한에 대한 중국의 막대한 영향력이 관심을 끌고 있다. 북·중 수교 60돌을 기념하기 위해 방북한 중국 대표단은 북한에 적지 않은 선물을 안겼다. 두 나라는 ‘경제 원조에 관한 교환 문서’ 등 다양한 협정과 합의문, 의정서, 양해문 등에 조인했다. 그 외에 ‘조약 정리 의정서’ ‘경제 기술 협조 협정’ ‘교육 기관 간 교류 협조 합의서’ ‘소프트웨어 산업 분야 교류·협조 양해문’ ‘국가 품질 감독 기관 사이의 수출입품 공동 검사 의정서’ ‘중국 관광 단체의 조선 관광 실현에 관한 양해문’ ‘야생동물 보호 협조 강화 합의서’ 등이 한꺼번에 체결되었다. 이들 문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북·중 간의 경제 협력이 더욱 확대될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중국 정부 대표단이 무상 지원하기로 한 석유·식량 규모도 관심을 끌고 있다. 족히 5천만 달러는 넘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03년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방북 때 지원 규모가 5천만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양국 수교 60돌을 기념하는 특별한 자리인 데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이끌어내는 것이 시급한 중국의 입장에서 좀 더 많은 지원을 약속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중국측이 요구해 온 ‘신압록강대교’ 건설이 이번에 합의된 점이다. 중국은 수년 전부터 연간 27억 달러에 이르는 양국 교역 규모에 걸맞게 기존 압록강철교 외에 신압록강대교를 건설하자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유사시 중국군의 진입 루트가 될 수 있어서 이를 주저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측은 대교 건설에 1억5천만 달러가량의 공사비를 투입하게 될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교가 건설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2002년 무산된 ‘신의주 행정특구’가 되살아날 수도 있고, 북한이 2006년부터 추진 중인 압록강 하구 ‘비단도 자유무역지대’ 프로젝트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국은 앞으로 이 대교를 통해 물적·인적 교류를 확대할 것으로 보여 북한의 대중(對中) 경제적 종속화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한 셈이 되었다.

무엇보다 중국은 나진항 1호 부두의 사용권까지 확보해 동해 진출의 발판도 마련했다. 신압록강대교나 나진항 부두 등은 중국 기업에게 대북 진출의 교두보로서 매우 유용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국은 이 두 루트를 단순 교역의 통로뿐 아니라 북한의 풍부한 광물 자원을 대규모로 개발하고 생산품을 좀 더 빠르고 용이하게 운반하는 물류기지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진항을 통한 동해 진출은 또, 훈춘을 전진 기지로 한 두만강 유역이 동북아시아의 물류 거점으로 거듭날 기회도 부여하게 된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훈춘에 2016년까지 100억 위안을 들여 대단위 ‘동북아 변경 무역센터’를 건설키로 하는 한편, 한국과 일본·홍콩 등 외국인 전용 산업단지를 만드는 계획도 마련해 ‘두만강의 동해 시대’를 대비해왔다. 중국의 잇단 대북 진출은 2003년부터 중국판 ‘지역 균형발전’ 전략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는 동북 진흥 구상과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중 간 교역액은 지난 2008년의 경우 27억8천7백28만 달러에 이르렀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컸던 적은 없었다. 무역이 증가하면서 북한의 대중 무역 적자도 크게 증가해 2004년 이후 거의 여섯 배나 늘어났다. 북한이 3년 전 핵실험을 실시한 뒤 오히려 중국과 북한 간의 무역 거래는 증가했다. 유엔 제재가 확대되고 남북 간 무역이 줄어들면서 북·중 간 무역 규모는 지난해 41% 증가했다. 북한의 전체 무역 가운데 대중 무역이 차지하는 비율도 73%로 늘어났다. 더구나 중국은 원유, 식량 등 핵심 전략물자의 거의 대부분을 북한에 공급하고 있다. 중국산 제품은 북한 내 유통시장을 장악한 지 이미 오래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웬만한 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의 90% 이상은 중국산 저가 제품이라고 한다. 중국의 대북 투자는 2004년 이후 급증하고 있으며, 그중 70%가 무산 철광, 용등 탄광, 혜산 동광, 평양시 몰리브덴 광산 등 지하자원 개발에 집중되고 있다.

북한의 대중 무역 적자, 2004년 이후 6배나 늘어

▲ 북한을 방문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운데)가 10월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자신이 가져온 선물을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

중국은 그 밖에도 관광 분야와 관련한 협력·협정을 통해 중국 관광객이 북한 관광을 할 수 있는 길을 확대했다. 이미 중국은 백두산 관광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북·중 간 경제 교류 협력 현황만 보더라도 북한 경제권의 중국 종속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지금 상황에서 볼 때, 북한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출구로 중국 외에는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과 같은 남북의 경색 국면 그리고 북한과 국제 사회와의 관계가 계속 경색된다면 북한의 대중 종속은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스스로 키워가는 측면도 있지만, 그냥 내버려두어도 북한이 스스로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이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중국 기업들이 북한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열악한 투자 환경 때문에 기대한 만큼 경제 협력 속도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또한,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인한 국제 사회의 제재는 중국 기업의 북한 진출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 중국 정부는 지난 5월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를 지지하고 이에 동참할 의사를 밝혔다. 중국 당국 역시 제재에 참여하면서 북·중 무역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중국 공산당은 유엔이 대북 제재를 합의한 이후 북한과 무역 거래를 할 때 군사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것을 일절 금지하라는 지시와 더불어 군사 전략물자 이외의 수출입 항목들에 대해 철저히 기록하고 보고를 강화하라는 당 중앙 지시를 내려보냈다. 이런 제재 조치에 따라 거래가 위축되면서 올해 상반기 북·중 교역액은 11억2백만 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3.7% 감소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유엔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북한과의 정상적인 거래에 대해서는 제한을 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은 안보리 산하 ‘1718위원회’, 일명 대북제재위원회에 최근 제출한 ‘1874호 이행 국가 보고서’에서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안보리 결의와 제재위원회의 관련 결정을 정확하고 진지하게 이행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중국도 결의를 전면적으로 이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중국은 하지만 “안보리 결의 이행이 북한의 국가 발전이나 정상적인 대외 접촉, 북한 일반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며, 북한의 다른 나라들과의 정상적인 대외 관계를 해쳐서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북·미 관계 개선은 중국 견제용?

▲ 북한 나진항-러시아 카산 연결 철도 복구 공사장에서 노동자들이 새 철로기를 쳐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며 대규모 지원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사항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와 연결된다. 중국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직후에도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는 유엔의 제재가 북한의 민생과 경제·무역 교류, 인도주의적 원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 1874호는 금융 제재와 관련해 북한 주민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인도주의 및 개발 용도에 대해서는 공적인 금융 지원 제한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조항은 중국이 주도해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태도들은 북한이 자신들의 반대에도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고 있지만, 결코 친북한 노선을 버리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중국 내 폭넓은 인식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북·중 우호조약의 존속 △북한에 대한 중국의 신뢰 유지 필요성 △미국과의 완충 지대로서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 등이 친북 노선을 유지하는 근거로 중국 내에서 제시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공식적으로는 내정 불간섭 원칙을 매우 엄격하게 고수하고 있다. 급변 사태와 후계 문제 등에 대해 공개적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험적·역사적으로 북한 정권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중국은 현 단계에서는 일관된 협상과 설득·노력만이 핵문제를 푸는 해법이라 보고 있다. 북한의 안보 우려를 고려하지 않는 강경 일변도의 접근은 더 도발적 행동을 취하도록 만들 뿐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는 중국이 미국이나 우리 정부에게 직·간접적으로 보내는 일관된 메시지이기도 하다. 또한, 이처럼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면에는 중국을 견제하는 끈을 놓지 않는 김정일 정권의 태도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상당히 집중력 있고도 일정하게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견제해왔다. 오래전부터 미국과 관계 개선을 추구해 온 것도 과도한 중국 의존을 피하기 위한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또한 정설이다. 더구나 핵실험 이후 유엔 제재 결의에 찬성한 중국의 태도는 북한 당국의 불신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에 참여한 6월 이후 북한 당국이 한때 북한 거주 화교와 중국인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한 것도 이런 불신과 연관되어 있다. 

이처럼 북·중 관계는 한편으로 더욱 밀착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견제하는 사이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손을 놓고 그냥 방관만 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북한의 대중 견제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제 사회에서 고립이 심화될수록 중국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북한의 구조적 현실은 우리의 대북 정책이나 대중 정책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김정일 이후 북한에 ‘친중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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