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금 마르면 탈레반이 죽을까
  • 조홍래 | 편집위원 ()
  • 승인 2009.10.2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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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자금줄은 아편…미국, 자금 루트 차단 위해 특수 작전 벌였지만 성과 미미

▲ 10월4일 파키스탄 탈레반의 새 지도자 하키물라 메수드(오른쪽)가 로켓포 발사기를 들고 시범 사격을 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요즘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최근 파키스탄에서 세 차례 대담한 공격을 벌였다. 군 사령부를 점령해 22시간 동안 벌인 인질극에서는 수십 명이 죽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8년째에 접어들었으나 탈레반이 소탕되기는커녕 더 강해지고 있다. 9·11 사태 이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1차적 목적은 탈레반보다는 알카에다를 궤멸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으로 알카에다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으나 탈레반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알카에다와의 전쟁은 어느새 탈레반과의 전쟁으로 변질되었다.

탈레반은 스스로 아프가니스탄의 ‘대안 정부’임을 자처한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정권을 잡고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기도 했다. 알카에다가 외부에서 잠입한 테러 조직인 데 비해 이들은 반정부 반군이라는 것 외에는 일반 국민과 다를 바 없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이다. 이들에게 생계를 의지하는 다수 주민들의 지지도 받고 있다. 따라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결코 말살될 수 없는 숙명적인 실체이다. 유능한 정부가 나타나 이들을 정상적인 국민으로 바꾸지 않는 한 탈레반은 무한정 존속한다.  

탈레반을 지탱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큰 저력은 막대한 군자금에서 나온다. 탈레반이 연간 조달하는 자금은 대략 3억~4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 돈은 탈레반만이 갖고 있는 미묘하고도 복잡한 모금 네트워크를 통해 마련된다. 수입원은 아편 밀거래, 납치에 의한 인질 대금, 갈취 그리고 외국의 기부금이다. 특히 외국 기부금은 미국이 온갖 수단을 통해 차단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편을 경작해 가공·수출하는 농민들로부터 ‘아편 세금’을 걷는다. 탈레반 장악 지역에서는 밀농사를 짓는 농민들로부터도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돈을 받는다. 또한, 중동의 아랍국들에게는 모금 특사를 보내 돈을 거둬온다.

미국 국방부와 유엔에 따르면 탈레반의 연간 수입은 아편 거래에서만 7천만 달러 내지 4억 달러가 생기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편 외에 다른 경로를 통한 수입을 합치면 이들의 수입은 천문학적 액수이다. 이 막대한 군자금 덕분에 이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공격을 자행한다. 이들의 자금줄을 차단하려는 미국과 나토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한다. 이들의 자금 조달 경로가 워낙 비밀스럽고 특이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동맹들은 지난해 탈레반의 자금 루트를 분쇄하기 위해 특수 작전까지 벌였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탈레반, 작전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아 무기한 투쟁 가능

▲ 기자회견에서 연설하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9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방문하고 온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민주당 상원의원 애덤 스미스(워싱턴 주)는 탈레반의 자금 루트를 차단하는 작전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실토했다. 탈레반의 모금 능력은 아프가니스탄 증원 문제를 놓고 오바마 행정부를 궁지에 빠뜨렸다. 국방부에서는 해병대 1만명을 아편 재배 중심지에 보내 관련 조직을 일망타진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으나 성공할 자신이 없어 결정을 미루고 있다. 설사 이 작전이 성공하더라도 아편에 의지해 살아가는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을 자극해서 나타날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아편 루트를 차단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탈레반 반군들의 작전 비용은 매우 싸게 먹힌다. 훈련 및 무기 조달에 거의 돈이 들지 않고 전사들의 월급은 월 2백 달러 내지 3백 달러 정도이다. 미국 의회조사국의 중동 전문가 케네스 카츠만 씨는 작전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탈레반은 자금줄이 끊어져도 무기한 투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편 다음으로 가장 큰 몫을 하는 수입원은 외국의 기부금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의하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탈레반이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외국에서 모은 군자금이 1억6백만 달러였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키스탄, 아랍에미리트연방 및 기타 페르시아 국가의 많은 개인이 탈레반에 기부금을 보낸다.

페르시아만 국가들이 직접 탈레반에 돈을 제공한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미국 정보 기관은 파키스탄 정보국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거액의 돈을 대고 있다고 본다. 파키스탄은 탈레반을 지원해 인도를 견제하려는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파키스탄은 이런 시각을 완강히 부인한다.

미국 재무부와 유엔은 탈레반과 알카에다에 돈을 대는 사람들이 기록된 금융 블랙리스트를 수년째 보유하고 있으나, 익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 제공자는 찾지 못했다. 어쨌든 탈레반의 최대 자금줄은 아편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아편 생산량의 75%를 차지한다. 아편의 재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돈이 징수된다. 아편을 재배하는 농민에서부터 가공 공장과 밀매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보호 명목으로 세금을 거둔다.

지난 8월에 발표된 상원 외교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아편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부담하는 아편 세금은 통상 10%이다. 일부 탈레반 전사들은 아편 농장에서 노동을 해 월급을 보충한다. 아편으로 생기는 최대 수입은 밀매업자들이 탈레반 지도부에 정기적으로 상납하는 돈이다.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아편 밀매 게릴라들은 약 1만t의 아편을 비축하고 있으며, 이 양은 2년간 세계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시가로 치면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이런 엄청난 자금력 앞에 미국과 나토의 작전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탈레반의 세 번째 자금원은 범죄 활동이다. 주로 납치를 통해 인질 대금을 받고, 탈레반 통제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기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보호세를 받는다. 상황이 이러니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승자는 미국이 아니라 탈레반이 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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