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사가 돌아오지 못하는 까닭은…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11.02 20: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뤼순 감옥까지의 안중근 투쟁 기록…의거 100주년 기념해 개정판 나와

지난 10월26일은 안중근 의거 100주년이었다.

안중근이 거사를 이루어내고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를 외쳤던 것이 1909년. 일본이 짓밟은 반도에 하나의 국가가 아직 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던 그 함성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감동적이다. 그날의 감동을 되살리려는 100주년 기념 사업들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만세 삼창도 들렸다. 서울 남산에 기념관이 건립되고 동상이 제막 되는가 하면, 그의 투쟁과 삶을 되돌아보는 뮤지컬 공연과 소설 연재 등도 이어졌다.

그러나 아쉽다. 찾아가 진심으로 추모할 그의 묘소가 없다. 그의 유해를 찾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1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누구 손에 파헤쳐져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디에 있는지 기록 조차 찾을 길이 없다. 죽어서도 그는 ‘그의 전쟁’을 계속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광복 후에도 친일파가 득세한 고국에서 도저히 자리 잡을 수 없었는지, 그의 후손들 대다수가 해외로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접하는 이의 마음은 그렇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뮤지컬과 소설로 안중근 의사를 만나는 일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팩트’가 분명한 사건을 ‘픽션’으로 만들면서 미화하거나 재미를 우선시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들어서다.

안중근 의거의 진실과 인간 안중근의 면모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책이 있다. 10년 전 안중근 의거 90주년을 기념해 출간되었던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의 개정판이 그것이다. 초판의 일부 오류를 정정하고, 안중근 의거와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서문과 안중근 공판 관련 자료 및 사진 자료를 추가했다. 자료로 추가한, 영국 화보신문 더그래픽(The Graphic) 1910년 4월16일자에 실린 찰스 모리머 기자의 ‘안중근 공판 참관기’는, 이 책에 실린 재판 기록의 전말과 함께 당시 법정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재미있는 책을 원하는 독자와는 거리가 좀 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과 거리를 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안중근의 ‘검찰관 신문 조서’와 ‘공판 시말서’라는 역사적 사실을 잘 정리해 더 많은 대중과 만나려 한 것이다.

안중근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아주 구체적이어서 지금도 살아 펄떡이는 메시지로 들린다. 이 책을 엮은 이는 “안중근 공판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진실’을 알아내는 행위야말로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고 느꼈다. 공판 기록의 글줄 마디마디, 그 행간들에서 읽히는 우리의 한 젊은 인간 혼의 외침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당시의 상황에서 울려 퍼진 웅장한 ‘교향시’였던 것이다. 한 치의 오류도 없는 역사적 사실이요, 뛰어난 문학성을 지닌 ‘안중근 법정 투쟁 기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생생한 삶의 교과서이다”라고 말했다.

안중근이 바란 조국의 모습이 지금의 한국인지는 알 길이 없다. 개탄할 지경인지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가 있다. 이 책의 엮은 이도 “‘안중근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하얼빈에서 목숨을 건 의거로써 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안의사를 이어, 이제 우리가 온몸으로, 온 정신으로 그 전쟁을 치러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있는 그대로 그 시대의 안중근을 만나는 일은 영웅을 기리는 일이 중요해서가 아니다. 생생한 가르침을 얻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웅이 없는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영웅의 눈을 뜨게 하는 계기는 ‘드라마’가 아닌 ‘진실’이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므로 안중근은 죽지 않았다. 그의 유해가 고국에 돌아와 편히 쉬기 전까지, 그가 “나는 죽어서도 마땅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이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우리’의 ‘진실’을 곧추세우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박종근
영화 <내 사랑 내 곁에>를 본 사람이면 알 만한 사람,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남자, 박승일. 그는 영화 속 장면이나 상상, 그 이상으로 힘든 루게릭병 환자이다.

“그렇게 내 몸은 서서히 굳어갔고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동자밖에 안 남았다.”

절망이라는 그림자는 순식간에, 그것도 아주 빠르게 그의 인생을 덮쳤다. 프로농구 코치직 사퇴는 물론이고 인생의 동반자라 여기던 아내마저 그를 떠났다. 하지만 박승일에게 포기란 없었다. 그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어둠의 독백에서 그의 목소리를 되찾아준 것은 ‘안구 마우스’였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체력 소모도 상당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한 자 한 자 땀 흘려 쓴 메시지를 통해 세상에 루게릭병의 무서움과 실상을 알려나갔다. 그렇게 그는 루게릭병환우들과 가족들의 영웅, 나아가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 아이콘이 되었다.

<눈으로 희망을 쓰다>(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오랫동안 그를 취재한 이규연 기자와 박승일 선수가 4년간 주고받은 50여 통의 e메일과, 그를 지켜본 가족과 주변인 20여 명의 인터뷰를 토대로 쓰였다.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고, 가진 것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에 불평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박승일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깨닫게 한다.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쓸 정도로 우울증이 가시지 않는 우리 사회에, 박승일은 이렇게 말한다.

“하찮은 벌레에게도 존재와 의무가 있고, 우리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