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육 풍토를 만드는 데 이념이 끼어들 수 없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11.1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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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 교사 징계 반대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인터뷰

ⓒ시사저널 유장훈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와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정면충돌했다. 시국선언 참여 교사 징계를 계기로 촉발된 교과부와 김교육감 사이의 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교과부는 ‘김상곤 옥죄기’의 강도를 더욱 높일 기세이고, 김교육감도 여기에 대항할 태세이다.

전교조의 시국선언에 대해 교과부는 중대한 도전으로 생각했다. 시국선언 교사 ‘중징계’라는 칼을 빼든 것도 ‘교육 문제’만큼은 전교조에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 그런데 걸림돌이 생겼다.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시국선언 교사 징계를 받아들이는 흐름을 보였지만, 경기도 교육청이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교과부는 ‘직무 이행 명령’을 발동하면서 초강수를 두고 있다. 만약 한 달 안에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교과부의 징계 절차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직무 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에 대해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은 난감해하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이 교과부의 징계 요구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에 당혹해하고 있다. 김교육감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교사들의 정치적 중립 문제 등에서 법률적인 다툼의 소지가 있고, 법률 자문을 통해 징계 사유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것을 감안해 사법부의 최종 결정이 내려질 때가지 징계를 유보하겠다는 입장인데, 교과부가 너무 몰아붙이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교과부와 김교육감의 충돌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4월 경기교육감 보궐선거에서 김교육감은 진보 성향의 범도민 단일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개혁 성향의 김교육감이 당선된 후 경기도의 교육 정책은 진보 교육의 시험 무대가 되었다. 그러자 김교육감의 개혁 정책에 대해 보수층의 반발이 이어졌다. 경기도와 교과부도 견제에 나서면서 ‘진보 교육감’으로서의 행보가 순탄치 않았다. 그러다가 시국선언 교사 징계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양측의 갈등이 폭발 직전에 다다랐다.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인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김교육감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경기도는 최근 제2청에 ‘교육국’을 설치하고, 31명의 직원을 배치했다. 경기도 교육청은 여기에 반발해 대법원에 교육국 신설에 대해 집행정지 결정을 신청한 상태이다. 전국의 시도 교육감들도 교육국 설치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라며 반대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취임 6개월이 되는 시점에서 김교육감의 개혁 정책은 얼마나 실효를 거두고 있을까. 김교육감은 선거 당시 무상 급식, 혁신 학교, 고교 평준화를 3대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공약들은 초기 단계부터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보수 성향의 경기도 교육위원회와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는 도의회가 김교육감의 교육 정책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최대 공약인 무상 급식의 경우 실현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7월 경기도 교육위원회가 무상 급식 예산 전액을 삭감하면서 불투명해졌으나, 11월2일에 열린 2010년도 본예산 심의에서 교육위원회는 사업비 9백95억원 전액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경기도의회가 예산을 가결하면 경기도에서는 내년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무상 급식 시대가 열린다. ‘무상 급식’이 도교육위원회를 통과한 것은 도교육청과 교육위원들이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룬 성과로 볼 수 있다.

공교육 활성화 모델로 제시한 ‘혁신 학교’는 1차 추경 예산 회의에서는 28억2천여 만원의 예산 전액이 삭감되었으나, 지난 11월2일에 열린 2차 추경 예산 회의에서 1백4억원의 예산 가운데 38억여 원(37%)만 삭감되었다. 이에 따라 지난 9월부터 경기도 내 13곳의 학교를 지정해 운영해 오던 혁신 학교를 내년에는 5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고교 평준화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의정부·광명·안산 지역은 물론 기타 지역으로의 평준화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김교육감의 개혁 교육 정책은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학생 건강권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심야 교습 시간 제한’ 조례 제정 등이 학원가 등의 반발에 부딪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교육감이 현안인 정부와의 갈등, 보수층의 반발 등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된다. 지난 11월4일 경기도 교육청을 찾아 김교육감을 만났다.

취임 6개월이 되었다. 소감이 궁금하다.

▲ 김교육감이 지난 11월1일 경기도교육청에서 “시국선언 교사의 징계를 유보하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정상적인 4년의 임기라면 지난 6개월 동안은 탐색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임기는 1년2개월이다. 벌써 임기의 절반이 흘러갔다. 그동안 여유를 가질 틈도 없이 경기도의 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지난 6개월을 돌이켜보면 공교육 정상화와 차별 없는 교육 기반을 형성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다른 기관들과 소통과 대화가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교조 교사들의 징계를 놓고 교과부와의 갈등이 심하다. 일부에서는 김교육감이 진보 성향이어서 전교조 교사들을 감싼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지난 4개월 동안 심사숙고하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 내린 결정이다. 지난 6월21일에 교과부로부터 징계 요청이 있은 후에 교육감으로서 이 문제를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하고 판단해야 했다. 법률적인 다툼의 소지도 있었다. 그래서 변호사 5명, 법학 교수 4명에게 법률적인 자문을 구했다. 그중에서 7명은 징계 사유가 아니라고 했고, 2명이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는데, 이 시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할지 고민하고, 그 다음에 교육 현장에 미칠 영향을 따졌다. 만약 교과부의 뜻대로 시국선언 교사들을 해임이나 파면 등 중징계를 하면 혼란과 갈등·반목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교과부의 징계 협조 요청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징계를 유보하고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지켜보자는 것이다. 앞으로 교과부와 여러 가지 접점을 찾으면서 해결해나가려고 한다.

보수층에서는 김교육감이 교육보다는 ‘이념’을 내세운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금의 어려운 교육 현실을 개선하고 해결하는 데 이념의 잣대가 필요하지는 않다. 교육이 무너지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에게 아픔을 주는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전교조이든 교총이든 어느 단체이든지 다 같이 교육의 일원이다. 이분들이 제기하고 제안하는 사안들에 대해 귀담아 듣고 검토하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실현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나는 선거 기간 중에 전교조가 반대하는 ‘교원 평가’를 찬성했다. 내가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조직이나 계획을 세워서 실천한 것을 평가해야 한다. 여기에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다만, 평가를 하는 데 한쪽에 편향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경기도가 ‘교육국’을 신설하면서 업무 중복 등이 우려되고 있다. 도교육청은 여기에 반발하고 있는데.

대법원에 집행정지 결정을 신청했다. 지금은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의회에서 지난 9월15일에 교육국 신설 안이 통과되고 10월5일에 조례를 공포했다. (경기도와 교육청이) 기관과 기관으로서 교육국 신설에 대해 당연히 협의하고 자문을 구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경기도는 이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도내 행사가 있으면 만나서 대화하는 등 관계가 좋았다. 물론 사안에 따라 조금씩 의견 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소통에 문제는 없었다.

도교육청 내에서도 김교육감의 개혁 정책에 반발하는 공무원도 있을 것이다. 평소 ‘관료주의 타파’를 강조했는데 취임 후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나는 초·중등 교육에 종사했던 사람이 아니다. 초·중등 교육에 인맥을 형성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교육 종사자들의 전문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당선인 시절에 인수인계와 보고 등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문제가 거의 없다. 교육계의 보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면을 없애기 위해 직원들과 더욱 더 밀착하고 세심하게 관계를 형성했다. 이들에게 학교 현장 중심으로 교육 행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많이 가졌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열린 마음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교육 행정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전국 시도 교육감 대부분이 외국어고에 대해 ‘현행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김교육감은 ‘외국어고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인 것으로 아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외국어고 폐지’라는 말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다만, 지금의 ‘외고 정책’이 무한 경쟁을 부추기고, 당사자들에게 엄청나게 큰 고통을 주고 있고, 이로 인해 사교육 시장을 팽창시키고, 외고가 본래 목적이 변질되어 입시 학원이 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여기에 국제중을 설립하면서 초등학생까지 사교육에 내몰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나는 외고가 이렇게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외고가 본래의 목적에 맞도록 외국어 특기자를 양성하든지 아니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월25일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대회’를 열었다. 조례가 제정되면 학생들의 인권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가?

학생이 미성년자라고 해서 ‘인격과 인간으로서의 대우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우리 학생들은 학교 현장에서 폭력에 시달린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이런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 학창 시절에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지만, 지금은 심각한 상황들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학생들이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풍토를 만들려고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또 단순히 학생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존중받고 존중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경기도 교육청과 교과부의 마찰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혼란만 야기하고 정작 김교육감의 개혁 정책이 빛을 보지 못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정부의 교과부는 올해 들어와서 ‘사교육 없는 학교’를 비롯해서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 면에서 경기도 교육에서 하고자 하는 것들과 접점이 형성되고 있다. 다만, 몇 가지 면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 차이들은 또 어디에나 있다. 지금 현안이 되고 있는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 문제는 교과부를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김교육감께서 꿈꾸고 실현하고자 하는 ‘경기도 교육’은 무엇인가?

경기도의 교육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교육 자치구에서 이 정도의 인적 자원 규모가 없다. 질적으로 봐도 세계 최상급 수준이다. 그런 만큼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경기도의 교육은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나는 경기도의 교육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 경기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지향적인 교육 단체가 될 수 있도록 풍토를 바꾸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핵심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별·계층별 교육 격차를 줄여야 한다. 허물어진 학교 현장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과 방향이 있어야 한다. 그 방향은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차별 없고 기회가 균등해지는 것이다. 내가 꿈꾸고 실현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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