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고-서울대 법조 라인 막강 학문·문화예술 뿌리도 깊어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11.3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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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작가 이문열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경북 지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지역이 안동이다. 안동을 중심으로 동으로 청송과 영양, 서에는 예천, 남에는 의성, 북으로는 봉화가 둘러싸고 있어 이들 경북의 북부 지역 9개군을 안동 문화권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각기 지역마다 나름대로 특색이 없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대체적으로 이곳에는 은둔, 은거, 둔피(遁避)의 분위기가 서려 있다.’ 이곳에서 퇴계 이황의 학맥, 유교 문화, 서원 문화가 연면히 흘러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불교 문화권과는 차이를 보인다.

예부터 안동은 ‘해동(海東)의 추로(鄒魯)’라고 일컬어졌다. 추로지향(鄒魯之鄕)은 맹자가 태어난 추 지방과 공자의 모국인 노나라를 합친 말이다. 안동을 해동의 추로라고 부르는 배경에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이퇴계가 있다. 

안동에는 크고 작은 서원이 34군데나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 도산서원이다.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한 도산서원은 퇴계가 별세(1570년, 선조 3년)한 지 4년이 지나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웠으며 그 이듬해 한석봉이 쓴 ‘陶山書院’ 편액을 하사받은 사액(賜額) 서원으로서 영남 유학의 총본산으로 추앙받고 있다. 퇴계가 1561년(명종 16년)에 낙향한 후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바라고 세웠던 도산 서당이 있던 곳에 그가 타계한 사당과 서원을 건립해 추증한 것이다.

유서 깊은 서원·동성 마을 많아

또한, 하회마을(왼쪽 위사진)은 풍산 류씨가 6백여 년간 대대로 지켜온 동성(同姓) 마을로 서애 류성룡의 출생지이다. 서애가 31세 때인 1572년 후진 양성을 목적으로 풍천면 병산리에 건립한 병산(屛山)서원도 사액 서원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주세붕이 풍기 군수를 지내면서 세운 조선 최초(1543년, 중종 38년)의 소수(紹修) 서원으로 유명한 영주(순흥면 내죽리)는 안동 문화권에 속한다고 말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안동과는 일종의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영주에 있는 순흥 고을은 우리나라 최초로 성리학을 도입한 고려 말 대학자 안향(安珦 : 1243~1306)을 배출한 선비의 고장이자 충절의 고을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던 곳이다. 여말과 조선 초기만 해도 수많은 학자를 배출해 명성이 대단했으나 수백 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던 비운의 고을이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반발해 성삼문 등 사육신이 단종 복위 운동을 일으켰다 실패하자 수양의 동생인 금성대군이 여기에 연루되어 이곳 순흥으로 유배되었다. 순흥에서 귀양살이하던 금성대군은 순흥 부사 이보흠(李甫欽)과 지역 선비들을 규합해 단종 복위 운동을 꿈꾸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기천(基川) 현감의 고변(告變) 때문에 들통이 나고 말았다.

세조는 안동 부사에게 명을 내려 순흥도호부를 불사르고 금성대군과 이보흠 등 모의에 가담한 자를 모두 처형했다. 뿐만 아니라 순흥 일대 30리 안 고을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역향(逆鄕)으로 낙인 찍힌 영주의 사람들은 조선 초 안동에 비해 컸던 세력을 빼앗겼다고 여긴다.

안동 지역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이곳에 뿌리를 둔 재지 사족(在地士族)은 중앙의 경화(京華) 사족과 달라 벼슬을 하려면 생활의 근거지를 옮겨야 했는데 이들이 출사하면서 솔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회에는 정계, 관계, 재계로 나아간 대구·경북 인맥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지만, 대구·경북 지역 출신들의 법조계와 언론계 진출 역시 그에 못지 않게 매우 활발하다. 법조계 인물들을 보면 경북고-서울대 법대의 학벌로 이어지는 법조인들이 기라성처럼 늘어서 있다. 출신 고등학교별로 법조인 숫자를 따져보면 우리나라 법조계에는 서울의 경기고등학교가 단연 1위를 차지하고 그 뒤를 경북고가 뒤따른다. 그 뒤로 경복고나 광주일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현직으로는 구욱서 대전고법원장(의성), 김대휘 의정부지법원장(대구), 김병화 서울고검 차장(군위), 김상준 대법원장 비서실장(상주), 김수학 대구지법원장(대구), 김영한 대구지검장(의성) 등이 있다(표 참조). 부장급 판검사, 평판검사는 하도 많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법원과 검찰의 요직을 지내고 지금은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들 중에는 강신욱 전 대법관(봉화), 강원일 전 검사장(의성), 강철구 전 고법원장(봉화), 권남혁 전 부산고법원장(예천), 권재진 전 서울고검장(대구) 등이 눈에 띈다(표 참조).

대구·경북 출신 언론인 중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거목이 적지 않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써 유명한 위암 장지연이 상주 출신이고, 이승만 정권 시절 대구매일신문 주필로서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마라’라는 사설을 집필해 대한민국 언론사상 첫 번째 필화 사건의 주인공이 된 몽향 최석채 선생이 김천 출신이다.

현역 언론인으로는 김동철 대구MBC 사장(경주), 김문순 조선일보 부사장(달성), 김창기 조선일보 논설위원(영덕),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의성), 배병휴 경제풍월 대표(김천), 서영관 매일신문 편집국장(대구), 신상민 한국경제신문 사장(문경), 이창영 매일신문 사장(대구), 정해영 조선일보 총무국장(김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청송), 최맹호 동아일보 상무(구미) 등이 활동하고 있다.

현역에서 물러난 사람들로는 구본홍 전 YTN 사장(대구), 권영빈 전 중앙일보 사장(예천), 권오기 전 통일원장관(안동), 금창태 전 중앙일보 사장(안동), 송진혁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대구), 신우식 전 서울신문 사장(김천), 정연주 전 KBS 사장 등이 있다.

경북 지역에는 풍산 류씨가 모여 사는 안동 하회마을처럼 동성(同姓) 부락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경주의 양동마을에서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번성한 것도 그렇고, 봉화로 올라가면서도 반듯한 마을에서 가문과 문벌이 형성된 예가 다수 발견된다.

경주와 상주에서 ‘경상도’라는 이름이 유래한 데서 알 수 있듯 대구·경북 지역에서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로 자리 잡은 역사·문화·관광 도시이며, 상주는 예로부터 농사가 활발했고 물산이 풍족한 고장이었다. 근자에 들어서는 다른 지역들이 크게 발전해 상대적으로 세가 약해진 느낌이 있으나 삼국 시대부터 쌀, 누에고치, 곶감이 유명해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알려져왔고, 중부 지방과 영남 지방을 연결하는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로도 유명하다.

‘문향의 DNA’가 흐르는 안동·청송·영양

그 밖에 몇 개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보면 김천은 경상북도 서북부에 위치해 경부선의 주요 역인 대구-대전 사이의 중간 지점으로 문경과 영주로 통하는 경북선의 시발점이며, 교통망이 잘 발달된 4통5달의 요충이다. 영천은 포은 정몽주 선생과 박인로, 최무선 장군 등 많은 선현을 배출했고 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 전투가 매우 치열했던 곳이다. 청송, 문경, 봉화처럼 산세가 깊고 험한 지형적 환경 속에서 우수한 두뇌와 강인한 생활력을 지닌 인재들이 많이 나온 것은 그만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투지가 형성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안동, 청송, 영양 등지는 문향(文鄕)의 DNA가 흐르는 지방으로서 유명한 학자와 문인들도 여럿 배출했다. 학계에서는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안동), 김민하 전 중앙대 총장(상주), 김우룡 한국외대 교수(상주), 김철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대구), 노동일 경북대 총장(대구), 박홍 서강대 전 재단이사장(대구), 배성동 서울대 명예교수(대구),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대구), 손봉호 전 동덕여대 총장(포항), 신일희 계명대 총장(대구), 임종률 전 중앙노동위원장(대구),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대구), 최송화 전 서울대 총장직대(김천), 현승일 전 국민대 총장(칠곡) 등이 두드러진다.

문학인으로는 청송 출신의 김주영, 안동 출신의 이육사·유안진·이인화, 영양 출신의 조지훈·이문열, 상주 출신의 성석제, 대구의 김남조 시인이 있다.

한 시대 영화계를 풍미한 영화배우 강신성일(영덕)과 영화감독 배창호(대구)·이창동(대구)·김기덕(봉화) 등이 이 지역 출신이고, 스포츠계에서는 김재박 LG 트윈스 감독(대구), 이승엽 야구선수(대구) 가 뛰어나다. 동아일보에 네 칸짜리 시사만화를 그리는 이홍우 화백(영일)과 이현세 만화가(경주)도 있다.

※ 인맥 시리즈 ‘대구·경북’ 편은 이번 호로 마치고 다음 호에는 ‘광주일고 대 광주고’ 편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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