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다리’ 잘린 엄기영 사장 이제 무엇으로 살아갈까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12.1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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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사장 유임으로 경영 공백은 모면…노조 반발 심해 ‘가시밭길’ 예상

▲ 12월11일 MBC 노조원들이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출근을 막기 위해 사무실 앞을 지키고 있다. ⓒ연합뉴스


엄기영 MBC 사장이 유임되었지만 MBC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12월9일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MBC 임원진 8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는 하루 뒤인 10일 엄사장을 비롯한 임원 네 명의 사표는 반려하고, 네 명은 교체했다.

이번에 사표가 수리된 임원들은 김세영 부사장 겸 편성본부장, 이재갑 TV제작본부장, 송재종 보도본부장, 박성희 경영본부장이다. 편성·보도·제작 본부장은 엄사장의 팔다리와 같은 존재라고 보면, 엄사장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팔다리는 잘린 셈이다. MBC는 곧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공석이 된 편성·제작·본부장의 후임을 인선할 예정이다.

일단 방문진은 엄사장을 재신임했지만 ‘절대 신임’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표를 반려한 것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주었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끊임없이 나돌았던 엄사장의 ‘경질설’을 일축하는 대신 엄사장이 추진했던 ‘뉴 MBC 플랜’ 등에 속도를 내라는 일종의 경고성 신임이라는 것이다.

‘뉴 MBC 플랜’은 공정성위원회 설치, 노사 단체인 미래위원회를 통한 단체협약 조정, 인력 구조조정 등이 핵심 내용이며, 방문진의 요구 사항이기도 하다. 향후 엄사장은 ‘뉴 MBC 플랜’을 마무리하기 위해 ‘단체 협약’ 등의 개정을 서두르면서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100분 토론>의 시청자 의견 조작 등에 대해 철저한 진상 파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엄사장이 유임됨으로써 MBC는 당장 경영 공백과 혼란은 피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MBC의 앞날이 순탄해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노조의 반발이 심하다.

방송의 독립성·공정성 우려 목소리도 커져

MBC 노조는 “자신의 팔다리를 잘리고도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는 굴욕을 선택한 엄사장은 이제 방문진의 하수인이며, 정권의 나팔수를 자처한 인물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다”라며 엄사장을 불신임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측과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겠다며 ‘대화 중단’을 밝히기도 했다. 정권의 방송 길들이기라는 비판과 노조의 반발 등은 엄사장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얼마만큼 지켜갈지도 미지수이다. 새로 임명될 편성·보도·제작본부장이 엄사장보다는 방문진의 입김에 좌우될 가능성이 있어 벌써부터 ‘허수아비 사장’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돌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벌써부터 MBC의 공정성이 우려된다며 연일 방문진과 엄기영 사장에 대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미디어행동 박영선 국장은 “엄사장은 방문진의 투항 요청에 굴복했다. 방문진의 압력에 끝까지 대항해나가겠다는 의지는 지금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공영방송의 정신은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줄 수밖에 없다. MBC 구성원들이 단결된 모습으로 방문진의 압력에 대항해나가야 한다. 공영방송에 대한 시청자와 시민단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이우환 사무처장은 “엄사장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MBC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공정성과 독립성을 저버렸다”라며 엄사장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엄기영 사장은 향후 가시밭길을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방문진을 만족시키고,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어떻게 지켜갈지가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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