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노조’…새로운 길 들어선 KBS
  • 채은하 | 프레시안 미디어 담당 기자 ()
  • 승인 2009.12.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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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사 최초 복수 노조 탄생…새 노조, 기존 노조보다 ‘강성’ 뚜렷해 ‘김인규호’의 미래에 중요 변수 될 듯

▲ 지난 11월24일 KBS 노조 조합원들이 김인규 사장에 대한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KBS의 노동조합이 2개가 되었다. 지난 12월16일 KBS 노동조합에서 탈퇴한 조합원 50명이 새 노조를 설립하고, 18일 산별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부터 정식으로 가입 승인을 받았다. KBS에 현 KBS 노동조합 외에 전국언론노조 KBS 지부(지부장 엄경철)가 새로 설립된 셈이다.

현재 6백명을 넘는 조합원이 KBS 노조를 탈퇴한 상태이다. 대부분 새로 출범한 노동조합에 흡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새 노조는 12월 말까지 1천명을 넘겨 언론노조 KBS 본부를 설립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언론노조 규약상 ‘본부’는 조합원
1천명이 넘어야 설립이 가능하다.

4천2백여 명의 KBS 전체 조합원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지만 대부분 방송의 제작 및 보도를 담당하는 기자·PD가 주축이 되어 보도의 독립성, 제작 자율성 등의 문제에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연주 전 사장 퇴진 때부터 이병순 사장을 거쳐 지금의 김인규 사장 취임까지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의 핵심에 섰던 PD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들이 KBS 노조와 결별한 가장 가까운 원인은 ‘김인규 사장 퇴진’ 총파업 투표가 부결된 데 있었다. 이들은 당초 “김인규씨의 퇴진을 위해 구속과 해고, 옥쇄를 각오한다”라고 선언한 노조 집행부에게 퇴진을 요구했으나, 노조는 ‘공정방송 협약’ 등을 성과로 내세워 퇴진을 거부했다. 그러자 이들은 역으로 자신들이 탈퇴를 감행하는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이들이 물밑에서 KBS 노조의 탈퇴를 논의해 온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특히 정연주 전 사장이 강제 해임되기 직전인 지난해 8월 KBS 노조가 전국언론노조에서 탈퇴할 때 내부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당시 KBS 노조 박승규 집행부는 “이명박 정부의 사장 교체 시도에 반대한다”라면서도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했고,  KBS 본관 앞에서 촛불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과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언론노조는 박승규 본부장을 제명했고, 이에 KBS 노조는 전국언론노조 탈퇴 투표로 대응해 67%의 찬성을 얻어 탈퇴했다.

이번에 새로 출범한 노조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대표 양승동)은 ‘언론노조 탈퇴 반대’ 운동을 벌였으나, 당시 숫자에서 밀렸다. 또, 2008년 말에 치러진 12대 노조 선거에서도 박빙의 승부 끝에 사원행동이 지지한 김영한 후보가 66표 차이로 패배하고 현 집행부인 강동구 후보가 승리하면서 또다시 ‘수적 열세’를 실감했다. 이러한 차이는 이번 ‘김인규 사장 퇴진’ 파업 투표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새 노조, ‘통합집행부’ 구성 제의 거부

KBS 노조와 대립각에 서 있는  KBS의 한 관계자는 ‘파업 부결’ 직후 “지난 언론노조 탈퇴 투표에서부터 반복적으로 확인되어온 KBS 내의 거대한 보수적 그룹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KBS 내에서 ‘방송의 공영성’을 강조하는 그룹과 ‘안정성’을 강조하는 그룹 간에 끊임없는 갈등을 예고하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연 이들(안정성을 강조하는 그룹)과 함께하는 한 KBS 노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KBS 노조를 탈퇴해 새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 중에서는 “속 시원하다” “후련하다”라는 식의 반응이 많다. 또, 앵커 출신인 엄경철 노조위원장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도도 높은 편이라는 전언이다. 엄경철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김인규 체제의 공영방송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하고 논쟁하고 싸우는 것이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강조해 향후 사측과 만만찮은 파열음을 낼 수 있음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 새 노조가 갈 길이 순탄치는 않으리라는 전망이 많다. 일단 사측으로부터 교섭권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가장 관건이다. 언론노조에 가입한 이상 노동법에 따라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을 행사할 수 있으나 사측이 단체교섭을 응낙할지가 미지수이다. 이미 사측은 엄위원장에게 지방 발령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져 “노조 무력화 시도 아니냐“라는 반발을 사고 있다.

한편, 기존 KBS 노조와의 관계 설정도 관건이다. 최근 KBS 노조는 정·부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집행부의 전원 사퇴를 조건으로 새 노조에 ‘통합집행부’ 구성을 제안했으나, 새 노조는 “어설픈 통합보다는 필요할 경우 연대 투쟁을 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라며 거부했다.

새 노조측은 “조합원들의 복지를 중시하는 기존 노조와 ‘방송의 공정성’을 주요 과제로 삼는 새 노조는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두 노조 간 긴장 관계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 노조가 주요 과제로 삼는 ‘방송의 공정성’ 등의 문제에서도 사측과 ‘공정방송 협약’을 체결한 KBS 노조와 접근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 언론사 최초의 복수 노조 실험에 언론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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