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더욱 더 친절히 다가가겠다”
  • 안성모 기자 | 정리·최제열 인턴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2.0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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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 인터뷰

ⓒ시사저널 유장훈


민주노총이 젊어졌다. 김영훈 위원장이 그 중심에 있다. 올해 43세인 김위원장은 지난 1월28일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을 이끌어갈 새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철도기관사 출신의 현장 노동 운동가이다. 지난해 5월까지도 무궁화호를 직접 몰았다. 특정 정파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대중 노선을 강조하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앞으로 3년간 민주노총을 운행할 김위원장을 지난 2월2일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만났다.

당선되면서 어떤 생각이 먼저 들었나?

무거운 책임감부터 느꼈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국민들에게 희망보다는 많은 걱정을 끼쳐드린 것이 사실이다. 조합원들도 ‘제대로 해야 한다’라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번 지도부는 현 정부의 나머지 임기와 같이한다. 책임이 더 무겁다.

민주노총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혁신이다. 일차적인 과제인 동시에 임기 내내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지금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창립할 때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노동자와 서민의 희망이 되겠다고 결의했다. 양적인 팽창은 성공적이었다. 반면, 필연적으로 여러 문제가 나타났다. 선거 때마다 서로 갈라서는 정파 문제도 시급히 풀어야 한다. 혁신 없는 통합은 없다.

낡은 사업 방식을 지적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

‘뻥 파업’ 같은 것이 있다. 파업 결의는 잘한다.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결의한다. 하지만 실제로 집행되고 있는지, 안 되었다면 무엇 때문인지 냉정하게 평가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결의는 과잉인 데 반해 실천은 미비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아픔을 같이하고자 하는 자세가 부족했다.

그동안 너무 정규직 중심이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있는데, 비정규직을 위해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나?

그런 주장에 대해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동안 비정규직을 위해서 민주노총이 가장 열심히 투쟁해왔고 또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 다만, 한계에 부딪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한 대 팔려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고객들에게 다가선다. 비정규직에 다가가기 위해서도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민주노총 사무실 1층에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비정규직이나 영세 소상공인 등이 어려움을 겪을 때 민주노총이 함께 고민하는 친구가 되겠다. 국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히는 사업을 직접 챙겨나갈 것이다.

통합 문제는 여전히 난제이다. 어떻게 해결해나갈 계획인가?

먼저 기득권을 놓아야 한다. 위원장으로서 놓을 수 있는 권한은 모두 내놓겠다. 제도적으로도 이를 뒷받침할 생각이다. 예를 들어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이루어진 상무집행위원회가 중앙집행위원회에도 포함되는데, 의결권에서 이를 분리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대중들로부터 선출된 산별 위원장과 지역 본부장들이 중요한 사업을 결정하고 집행을 점검할 수 있도록 혁신 작업을 펼치겠다.

 노조법 개정 후속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어떤 입장인가?

올해 초 그 난리를 치면서 개정안을 통과시킨 명분이 무엇이었나. 이대로 가면 사업 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될 것이기 때문에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개정된 노조법으로 인해 오히려 사업 현장의 혼란이 더 심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강해지고 있다.

공공 부문 노조에 대한 정부의 탄압 양상은 거의 이성을 잃은 수준이다. 정상적인 노사 관계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결국, 정치적 이해에 따라서 노조를 괴멸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범죄 집단으로 여기는데, 정말 거대한 범죄 집단은 따로 있다. 공무원노조를 탄압하면서 정치적 중립을 위배했다고 하는데, 한나라당은 한국노총과 정책 연합을 하고 있지 않나. 한국노총에도 공무원노조가 있다. 법을 어기고 있는 집단이 어디인지는 국민이 다 알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진보 정당 간 연합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현장은 분열을 원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진보 정당의 분당 과정에서 두 가지 논쟁이 있었다.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이다. 기본적으로 종북주의 논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제1의 가치로 여기는 운동가의 덕목이 아니다. 너무 큰 상처를 주었다. 다만, 패권주의 논쟁은 충분히 가능하다. 소수파는 언제나 다수파에게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 정치이다. 소수파의 분권주의보다 다수파의 패권주의가 더 무섭다. 민주노총이 이를 치유하겠다. 물리적인 통합보다는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한 단계 더 진화한 진보 정당이 되기를 바라며, 그 중심에 민주노총이 서겠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대표들을 다 만났고, 그분들의 진정성을 확인했다.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민주노총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보고서 채택이 미루어진 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곱지 않은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민주노총을 더 질타하고, 애정 어린 비판을 더 해주셨으면 한다. 그래서 더 준엄하게 깨우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직 멀었다. 보고서 채택 문제는 차기 대의원대회에서 제1호 안건으로 다루게 되어 있다. 이번 선거에서 임원을 다 채우지 못해서 대의원대회를 다시 열어야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 대의원대회는 성폭력 보고서가 채택되는 시점에 열 것이다.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에 임원이 부족한 것도 감내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많이 낮아진 것 같다.

바닥을 쳤다. 땅 밑으로 안 들어간 것이 다행일 정도이다. 우선 권위가 실추되었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1천5백만명의 노동자가 아니라 15만명의 노동자라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싸울 때 권위가 생긴다. 그런 의지를 가지고 싸운다면 바닥을 친 위상이 다시 올라갈 것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노총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닌가?

철도노조 출신으로서 너무 절절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는 것도 힘든데, 왜 노약자의 이동권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조합원들이 잘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노조의 역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노조의 투쟁이 곧 국민의 복지로 이어지는 경험을 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미 마쳤다. 우리는 그런 무거운 짐을 안 졌기 때문에 이제 지고 있는 것이다. 거부해서도, 부인해서도 안 되는 엄연한 현실이다. 후대에는 정말 조합원의 이익에 충실한 노조가 생겨날 것이다.

온건파로 분류가 되는데, 이런 평가를 어떻게 보나?

좀 더 온건해져야 한다. 국민들에게 더 친절하게 다가가야 한다. 우리는 이미 강경하다. 그리고 지금은 힘자랑을 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드러운가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다만, 우리의 권리를 위협하는 세력과 투쟁할 때는 더욱더 강경해야 한다. 온건하면서도 강한 위원장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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