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세계 1위’ 삼성전자의 야망과 굴레
  • 이철현 (lee@sisapress.com)
  • 승인 2010.02.0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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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에서 휴렛패커드와 지멘스를 제치고 세계 전자업계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동안 주효했던 ‘미등 전략’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삼성전자 앞에 이제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전자·IT 업종이 근원적으로 안고 있는 기술적 불확실성과 선두에서 맞서야 한다.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커졌다. 그동안 독자적으로 개발해 시장을 일궈낸 제품군이 없는 것도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삼성에게는 지금이 기회이자 위기인 것이다.


삼성전자는 전자·정보기술(IT) 분야 세계 1위에 올랐으나 앞길은 여전히 안갯속에 갇혀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1백36조원(연결재무제표 기준)을 기록하며 휴렛패커드(HP)와 지멘스를 제치고 전자업계 시장 1위에 올라섰다(도표 참조). 영업 이익은 10조9천2백억원을 거두어 애플과 휴렛패커드에 이어 세계 3위이다. 삼성전자는 불과 몇 해 전까지 일본과 미국 전자업체의 ‘후발 업체’에 불과했다. 앞서가는 소니, 도시바, GE, 필립스의 뒤를 따르는 미등 전략(tail light strategy)을 채택했다. 그 덕에 선발 업체가 겪은 시행착오를 줄이며 기술과 제품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이제 삼성전자 앞에는 아무도 없다. 전자·IT 업종이 근원적으로 안고 있는 기술적 불확실성을 업계 선두에 서서 맞서야 한다. 그만큼 리스크도 커졌다.

전자·IT 업종은 유연한 발상과 창의력이 중요한 분야이다. 미국의 전자업체 애플은 매출에서는 삼성전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영업 이익(13조7천억원가량)은 삼성전자에 앞선다.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은 어플리케이션 시장과 음원 플랫폼을 만들어낸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혁신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전자·IT 시장의 경쟁 방식까지 바꾸어놓는다.

삼성전자는 태생이 제조업체이다. 시장을 창출하거나 경쟁 방식을 혁신하지는 못한다. 독자적으로 개발해 시장을 만들어낸 제품군이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삼성전자는 지금 4개 사업 부문에서 출시하는 제품마다 시장 1위를 다투고 있다. 하지만 10년 후 미래 성장 동력은 갖추지 못했다. 지난 1997년 부도 위기까지 처한 삼성그룹이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당장 수익을 내지 않는 사업부는 싹을 잘라낸 탓이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마저 ‘삼성전자가 10년 후 먹고살 사업 영역을 갖추지 못했다’라고 우려한다.

삼성전자에게 세계 1위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시장 지배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새롭게 도약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을 수 있으나 자칫 발을 헛디디면 나락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GM을 제치고 세계 시장 1위에 오른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도요타가 지금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는 것이 상징적이다. <시사저널>은 한국 경제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떠한지, 또 직면한 안팎의 도전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더불어 잠재적인 위기 요인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2월12일은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전 회장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된 날이다. 이 전 회장이 1938년 설립한 삼성상회가 이제 총매출 2백6조원(1998년 결합재무제표 기준), 영업 이익 12조원을 올리는 거대 기업 집단으로 성장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는 1백75억 달러가 넘는다. 영국 브랜드 평가 기관 인터브랜드가 지난해 9월 발표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 조사에서 삼성은 19위에 올랐다.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삼성그룹의 기함은 단연 삼성전자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 전자·IT 기업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휴렛패커드와 지멘스를 제치고 매출 기준으로 세계 1위에 오른 것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전자·IT업계에서 ‘언터처블’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한 해 벌이들인 영업 이익은 11조원(94억 달러)에 육박한다. 일본소니는 지난해 20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냈고, 파나소닉은 7억5천만 달러 흑자를 내면서 체면치레를 하는 것에 그쳤다. 후지쓰가 6억달러 흑자를 냈으나 NEC는 6천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세계 전자업계를 쥐락펴락했던 일본 전자업체 9곳이 지난 한 해 벌인들인 영업 이익을 모두 합쳐도 삼성전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세계 불황에 휘청거리는 일본 전자업계는 삼성전자 배우기에 한창이다. 소니의 글로벌마케팅 담당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연구해서 어떻게 하면 싸워나갈 수 있을지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오쓰보 후미오 파나소닉 사장은 “종래의 상품으로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것은 어렵다. 에너지 절약처럼 우리에게 강점이 있는 기술을 살려서 씨름판을 바꾸어 싸워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세계화와 리버스(반전) 엔지니어링이다. 요시카와 료조 일본 도쿄 대학경제학대학원 특임연구원은 ‘삼성전자 개발 수법을 상징하는 것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라고 정의한다. 료조 연구원은 삼성전자 상무로 재직한 바 있고, 지난해 9월 <위기의 경영, 삼성을 세계 제일 기업으로 바꾼 3가지 이노베이션>을 저술한 한국통이다. 료조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경쟁사 제품을 분석하고 소비자 요구와 비교해 필요한 기능을 덧붙이고 필요하지 않은 기능은 없앤다. 일본 업체들이 흉내 내기라고 치부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에서 삼성전자는 전혀 다른 새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일본 기업 앞지른 삼성의 최대 무기는 ‘세계화’

일본 업계가 삼성전자에 뒤떨어지는 것은 세계화에 대한 열의이다. 세이조 츠오 니혼게이자이 신문 편집위원은 ‘삼성전자의 성공을 보면서 일본 기업들이 배우는 교훈 가운데 하나가 세계화이다. 삼성전자는 신흥 시장을 비롯해 세계 진출을 가속화해 생산 거점과 판매 기지를 세계화했다’라고 지적했다. 내수 시장이 좁은 한국 현실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에게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삼성전자는 전세계에 연구·개발 거점을 확보하고 제품 사양의 70%는 공통적으로 적용해 일관성을 확보하면서도 나머지 30%는 현지 시장 조건에 맞추어 제품을 재개발해 출시했다. 단지 해외 시장 거점을 확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장 조건에 맞추어 유연하게 대응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욱일승천하는 기세는 지난 1월10일 막을 내린 세계최대 가전박람회 ‘CES 2010’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국제전자 제품박람회(CES)의 주인공은 삼성전자였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주변은 온통 삼성전자 광고판으로 도배되었다. 일본 기업들의 광고판은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삼성전자 외에 눈에 띄는 광고판은 LG전자에 불과했다. 삼성전자는 가장 큰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경쟁 업체들은 비교당할까 봐 삼성전자 근처에 전시장 잡기를 꺼렸다. 지난 1월9일 컨벤션센터에 이건희 전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전세계 취재진이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의 손을 잡고 선 이건희 전 회장 주위로 몰리면서 이 전 회장 일가가 2010년 CES의 주인공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삼성전자는 이제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한국 투자를 고려할 때 가장 먼저 삼성전자를 눈여겨본다. 씨티은행은 이미 삼성전자 지분 6%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은 삼성전자에 투자하지 않는다.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헤더웨이가 투자한 국내 업체는 철강업체 포스코와 금속 절삭가공업체 대구텍뿐이다. 버핏이 세계 1위전자업체에 투자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불안정성 탓이다. 전자나 정보기술(IT) 업종은 기술 변화 속도가 크다 보니 기업의 흥망성쇠 주기도 가파르다. 디지털카메라 기술이 나오자 100년 기업 코닥이 하루아침에 퇴물이 되어버리고 플래시메모리가 나오자 컴팩트디스크(CD)나 자기(마그네틱) 저장 장치는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버핏은 전자·IT 분야 세계 1위 업체라도 기술 변화에 따라 하루아침에 몰락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삼성전자의 ‘애플 따라잡기’는 성공할까

삼성전자는 내재적으로 안고 있는 리스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 1월 CES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국내외 기자와 만나 “(10년 후 삼성을 먹여살릴 신수종 사업에 대해) 아직 멀었다. 삼성이 10년 전 지금의 5분의 1 크기 구멍가게 같았는데 까딱 잘못하면 그렇게 된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미래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 초 신사업추진단을 만들었다. 최지성 사장은 입을 열 때마다 ‘혁신’, ‘콘텐츠’, ‘변화’를 강조 한다. 제조업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업 창출력을 갖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국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삼성전자는 애플 아이폰과 경쟁에서 뒤쳐졌다고 판단하고 (기술 혁신과 소프트 웨어 파워 면에서) 애플을 따라잡고자 지난해 12월 최지성 사장을 대표이사로 내세우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라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새 경쟁자 ‘애플 따라잡기’에 나섰다. 삼성전자가 애플까지 제치면 규모의 경제와 함께 수익성까지 담보할 수 있어 ‘100년 기업’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지금 보아서는 삼성전자가 애플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창의적 사고나 혁신적 발상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흉내 내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애플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삼성전자의 장담이 허무맹랑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삼성전자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세계 최대 전자업체 소니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것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프리미엄 브랜드 가치 높여나가겠다”

인터뷰 | 김양규 삼성전자 영상전략마케팅팀장(전무)

삼성전자가 채택한 마케팅 전략은?

 
 
철저히 시장 중심으로 트렌드를 분석한다. 지역별로 소비자는 물론 거래선의 니즈(욕구)까지 수렴해 제품 기획부터 광고 메시지까지 효과적이고 일관된 전략이 수립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 침체에도 유기발광다이오드(LED) TV 시장을 성공적으로 창출했다. 올해 LED,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전 영역에서 3D(3차원) TV를 출시할 계획이다. 성장 시장부터 선진 시장까지 시장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크기와 가격으로 TV 라인업을 구축하고자 한다.

세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은?

삼성전자는 2006년부터 4년 연속 글로벌 TV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북미와 유럽은 물론 신흥 시장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새로운 종’이라고 불린 LED TV를 2백60만대 판매한 것은 단순히 제품력 외에 삼성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거두기 어려운 성과이다.

TV 분야에서 경쟁 우위 전략은 무엇인가?

기본 성능을 바탕으로 디자인에서 혁신을 가져왔고, 블루레이, 홈씨어터 등 토털 솔루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그간 경험을 통해 콘텐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만큼 드림웍스와의 파트너십처럼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보완하거나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제품력·품질 등 기본적인 것에 중점을 두고, 소비자와의 지속적인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하는 노력을 강화할 것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가치를 높여나가고자 한다. 올해 목표는 ‘3D TV=삼성’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키는 것이다.

 


“글로벌 1위 원동력은 기술 리더십”

인터뷰 |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개발팀장(전무)

 
 
삼성전자가 보유한 디지털미디어 기술은 어느 정도인가?

 글로벌 1위 브랜드가 된 것은 기술 리더십이 받쳐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까지 LED 관련 미국 특허를 3천건 이상 취득해 적용했다. 2010년에는 풀 고화질(HD) 3D TV를 출시해 그 기술 리더십을 이어갈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특히 경쟁 우위를 갖는 기술은 어떤 것인가?

TV 핵심 부품인 시스템 온 칩(System On Chip)과 패널(Display)을 자체 개발했다. 자체 개발 칩은 TV 본연의 역할 외에 차별화된 기능 제공을 가능하게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인터넷 TV 기능이다.

삼성전자가 기술 분야 리더십을 갖추게 된 계기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에 적극적으로 선행 투자와 기술 혁신을 추진한 결과이다. 각 사업부 간 긴밀한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한 것도 역할을 했다. 위기 속에서도 연구·개발 부문에서는 투자비를 늘리고 인력 비중을 높인 것이 삼성 기술 리더십의 힘이다.

해당 기술 영역에서 가장 큰 경쟁자는 누구이며, 경쟁 전략의 핵심은 무엇인가? 

현재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경쟁자는 우리 자신이다.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혁신을 거듭한 것이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기에, 1등이라는 자만심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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