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새는 북한 경제 ‘바깥 돈’으로 살길 찾을까
  • 김영윤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3.2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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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한 경제 위기 돌파 위해 외자 유치 몸부림…‘자본주의 바람’ 우려해 개방에는 여전히 소극적

 

▲ 3월10일 북한 평양 양각도국제호텔에서 국가개발은행 제1차 이사회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단행했던 화폐 개혁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오히려 민심만 더 흉흉해졌다. 나랏돈이 그것을 사용하는 주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은, 신체로 치면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 경제가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은 텅 비어 있는 고속도로와 시가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류가 거의 없는 편이다. 경제는 기본적으로 교환이다. 사회주의에서나 자본주의에서나 마찬가지다. 분업을 통해 교환이 이루어져야 하고 물류를 통해 교환된다. 교환이 많아야 소득이 올라간다. 필자가 들여다보는 북한은, 사는 수준에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마찬가지다. 20년 전 단선이었던 평양-개성 철길은 아직도 단선이다. 앞에서 오는 차를 피하려면 역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평양-개성 고속도로에 기름을 넣을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식 경제가 위축되는 공간을 주민 간의 거래인 개인 경제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 북한이 요즘 들어 부쩍 경제를 위한 잰걸음을 하고 있다. 외자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해외에 근로자를 파견해서 외화 벌이를 독려하는가 하면, 외자 유치를 위한 기구를 설립한 것도 눈에 띈다. 국가개발은행을 설립하고, 국방위원회 산하에 외자 유치 전담 기구로 ‘룡악산 지도총국’을 신설했다고 한다. 지도총국 산하에 ‘령봉경제연합회’가 만들어져 특정 지역, 예를 들어 압록강의 위화도나 황금평을 대상으로 외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남 사업을 총괄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도 경제 모드로 돌리려는 눈치이다. 무역상을 지냈던 이광근을 통전부 부부장에 임명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 자금을 관리해 온 39호실의 실장인 전일춘을 국가개발은행 이사장에 발탁해 중국 자본 유치에 적극 나설 기세이다. 여기에 국가개발은행과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도 합세하고 있다. 국가개발은행에는 국방위원회와 아·태평화위원회, 재정성 그리고 대풍투자그룹이 이사회에 들어가 중앙 정부 차원에서 경제 회복과 인프라 재건을 꾀하고 있다. 최근에 우리에게도 널리 소개되고 있는 대풍투자그룹은 중국의 자본과 함께 한국의 기업들에게도 접근해 대북 투자를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풍투자그룹은 국가개발은행을 통해 식량·철도·도로·항만·전력·에너지 여섯 개 사업을 추진하는 등 ‘경제 인프라 구축 10개년 계획’을 이끌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상과 같은 움직임이 어제오늘의 급작스러운 현상은 아닐 것이다. 북한도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으로 이런저런 노력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경제 개발을 위해 멀게는 외국에서 차관을 가져오거나, 합영법 같은 것을 만들어 외국과 기업을 공동 경영하려고 했다. 가깝게는 아예 나진·선봉과 같은 지역을 경제 특별 지역으로 만들어 100% 해외 투자를 유도하기도 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열었던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법·제도적 뒷받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투자 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사회 간접 시설이 태부족인 상태에서 원만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민간 기업이 투자에 나서겠는가. 투자에 따른 자본주의 황색 바람이 주민과 체제에 영향을 줄까 봐 ‘모기장식 개방’만을 허용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가진 북한에 대해 누가 흥미를 가지겠는가. 더구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국제 사회로부터 매를 벌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 김정은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이는 평양 거리의 컴퓨터수치제어(CNC)선전 포스터. ⓒ연합뉴스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북한의 부산함은 열에 아홉은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사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갖는 관심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동북부 경제 개발을 위해 북한과 의도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만들고 있다. 자원의 보고이자 생산 기지로서의 동북 3성은 자신이 가진 경제적 힘을 바깥으로 분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지역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은 서쪽보다는 북한이 있는 동쪽이 훨씬 더 가깝다. 동북 3성의 경제력이 대련을 거쳐 일본이나 태평양으로 가기에는 거리나 시간적으로 너무 멀고 길다. 반면에 북한의 나진항을 거치면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 중국이 전과 달리 지금에 와서 ‘신압록강대교’를 전액 부담해 건설하고, 훈춘-권하-원정-나진을 잇는 물류 통로를 고속도로화하려는 것은 북한으로부터 자원을 얻고 헤이룽장 성과 지린 성의 경제력을 북한을 통해 바다로 내보내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나진항은 중국의 직접적인 영향력하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사회 간접 시설을 확장하고, 바깥 기업의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획기적인 개혁 없이 대외 협력만으로는 상황 나아질 수 없어

그러나 실제 투자를 할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중국 자본이 무턱대고 북한에 투자하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북한이 최근 신의주·평양 등 여덟 개 지역을 개방한다고 하면서도 획기적인 투자 유인책을 내놓지 못한 것은 돈이 들어오기만 바랄 뿐, 돈이 들어오게 하는 데에는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모습이다.

한 가지 의문점은 북한이 전방위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기구를 모두 동원하고, 지역적으로 할당을 하면서까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외자 유치의 몸부림이 과연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의지만으로는 그렇게 만들기 어려워 보인다. 내부를 향한 획기적인 개혁 없이 지금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대외 협력만을 계속한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10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획기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체제와 직결된다. 경제와 정치·사회가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북한이 변화할 수 있으려면 우선 북한에 드리워진 체제 불안이 불식되어야 한다. 현재 북한은 극심한 체제 불안에 휩싸여 있다. 정치·군사·사회·경제 어느 한 분야에서도 내놓을 만한 구석이 없다. 더할 나위 없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먹지 못하는 핵만을 껴안고 있을 뿐이다. 이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체제 존립에 대해 북한이 확신을 가질 수 없는 한, 스스로 체제에 제대로 된 충격을 가하는 개혁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렇다면 잘살기 위한 북한의 지금 몸부림은 또 한 번 무위로 끝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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