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원조에 이의 제기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0.03.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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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원조국 중 빈곤의 악순환 겪는 나라들 분석해 원인 밝혀…“대상국의 산업 활동 지원 방안 찾아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서유럽 16개국에 대해 대외 원조 계획을 실행한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조지 마셜이 처음으로 공식 제안한 ‘마셜 플랜’은 ‘무조건 퍼주기’ 식 원조가 아니라 원칙과 내용에서 엄격한 계획이었다. ‘유럽 부흥 계획’은 유럽인이 스스로 만들어야 하며, 경제 자립을 이루도록 경제를 회복시키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셜 플랜에 입각해 미국 정부는 1948년 4월부터 1951년 말까지 서유럽에 1백2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 원조를 단행했고, 빈국을 부국으로 성장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현재 원조를 받고 있는 국가 중 많은 나라가 빈곤의 악순환을 겪으며 경제 자립은커녕 더 악화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8년 8월 세계은행의 개발리서치 그룹은 1981~2005년까지 전세계적으로 극빈층의 비율이 52%에서 26%로 거의 절반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과는 대부분 자유 경제 체제로 돌아선 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과 인도의 발전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여전히 원조금을 받는 나라들, 특히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 국가들에서는 그 시기 동안 극빈층 비율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세계은행은 이 보고서의 끝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두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 특히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원조의 효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원조 기관들은 똑같은 활동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것일까?

<원조의 덫>을 펴낸 미국의 경제학자와 경영학자 두 사람이 이 의문에 대해 설명했다. 저자들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4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자선의 함정이다. 구호 활동이 대상국의 산업 활동보다 규모가 더 커지면 번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원조금의 대부분을 산업 발전을 위한 자금으로 돌리는 대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두 번째 이유는 구호 단체 자체의 사리사욕이다. 정부 기관과 NGO(비정부기구)의 전문가들 중에는 자신의 경력을 쌓기 위해 현재와 같은 구호 활동에 의존한다. 그들은 원조금이 산업 활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쓰여지면 일자리와 경력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세 번째 이유는 부유국 내에 빈곤국의 산업 육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부유국에서 흘러나오는 막대한 자금을 사용할 만한 강력한 대체 방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빈곤국에 제공되는 원조금은 1년에 총 5천억 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이 막대한 자금을 기업 활동에 대신 지원할 만한 확실한 방법이 없다.

저자들은 빈곤국이 당면한 정치·사회적 문제점도 빼놓지 않았다. 외국의 식민 지배에서 갓 벗어난 신생국의 새로운 정부들이 국가사회주의를 선호했다고 지적했다. 많은 기업을 완전한 국영 기업이나 준 국영 기업으로 전환시키는 등 자유 경제 체제를 억압했다는 것이다. 또, 아프리카의 경우 지리적 제약으로 인해 부족 체제가 지속되어 원조 활동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했다. 부족 경제 체제에서는 ‘연줄’에 기대는 ‘뇌물’이 횡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부정부패가 국가 사회주의와 만났을 때 그 폐해가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원조 활동이 가영세 농민과 영세 사업체는 도와주지만 그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다른 산업 분야는 억누르는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신 마셜 플랜’은 대략 이렇다. 빈곤국들의 민간 기업에 자금을 대출해주되 각 빈곤국의 정부는 민간 기업들이 갚은 대출금으로 민간 산업을 더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다. ‘원조’ 마셜 플랜의 비즈니스 모델 그대로이다.   

 

 

ⓒ살림
미국의 스포츠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이었던 미치 앨봄은 루게릭병을 앓으며 삶의 끝자락에 서 있던 대학 때의 은사 모리 슈워츠와 인생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한 그가 또 하나의 감동 실화를 들고 찾아왔다. <8년의 동행>(살림 펴냄)은 앨버트 루이스라는, 모리 슈워츠에 이어 앨봄이 만난 또 하나의 인생 스승과 나눈 이야기이다.

2000년 봄, 강연을 마치고 나오던 앨봄은 자신이 어렸을 때 다녔던 유대교회당의 랍비인 앨버트 루이스로부터 자신의 추도사를 써주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루이스와 앨봄의 이야기는 8년 동안 이어졌다.

앨봄은 그의 제안에 처음에는 주저했고, 만남도 불편해했다. 사회인이 된 후부터는 자연스레 종교에 등을 돌린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이스와 신, 믿음, 삶과 인간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앨봄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앨봄이 루이스에게서 본 것은 위대한 종교인이나 독실한 신앙인이 아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앨봄은 깨닫는다. 지금도 세상에서는 여러 크고 작은 싸움과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원인의 기저에는 ‘저들은 우리와 다르고, 그렇기에 공존할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이 있다. 하지만 길거리에 핀 이름 모를 꽃들도 틀에 맞춘 듯 서로 꼭 같기는 어려운데, 하물며 사람들은 얼마나 다르겠는가. 앨봄은 “우리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타인을 가족처럼 보듬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으니, 삶이란 너무나 위대한 여정 아닌가”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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