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놀이공원, 갈 곳 잃은 ‘동심’
  • 이 은 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5.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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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테마파크들, 재투자 없어 갈수록 낙후화…에버랜드·롯데월드 등, 콘텐츠·시설 빈곤으로 입장객 계속 감소

ⓒ시사저널 박은숙


5월5일은 어린이날이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부모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테마파크들이다. 국내 테마파크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한마디로 낡아가고 있다. 에버랜드는 개원한 지 34년이 되었다. 그동안 놀이기구가 12개에서 36개로 늘어났다. 롯데월드는 지난 20년 동안 놀이기구가 14개에서 34개로, 관람물은 세 가지에서 여덟 가지로 늘었다. 유니버설스튜디오나 디즈니랜드 같은 외국 테마파크와 달리 국내 테마파크는 콘텐츠 보강이나 기술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나아진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에버랜드는 콘텐츠와 시설 빈곤을 퍼레이드와 이벤트로 채웠다. 테마파크 입장객 수는 2002년 정점을 찍은 이래 해마다 5~10%씩 줄어들고 있다. 수익성이 나빠지고 재투자할 여력이 없다 보니 업체들은 기존 콘텐츠를 우려먹는 식으로 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에버랜드는 테마파크로서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1976년 문을 열 때,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테마파크를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버려진 자연 환경을 개발한다는 생각으로 ‘자연농원’을 만들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출신인 고정민 홍익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용인자연농원은 방치된 자연을 개발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자연농원 캐릭터는 개장 이후에나 등장했고, 당시에 설치되었던 시설물과 최근에 설치된 위락시설의 연계성이 부족해 통일적인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처음부터 테마파크로 개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에버랜드는 들어가는 입구부터 평범하다. 테마파크는 일관된 테마를 가지고 철저하게 현실과 차단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야 하지만, 에버랜드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캐릭터가 난립하는 통에 강렬한 인상도 심어주지 못한다. 놀이기구의 노후화도 문제이다. 현재 운행 중인 36개 놀이기구 가운데 25개가 2000년 이전에 만들어졌다. 에버랜드가 강점으로 내세우는 퍼레이드도 총 다섯 종으로 짧게는 5년부터 길게는 10년까지 부분 수정을 반복하며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 한번 에버랜드를 방문한 고객이 다시 이곳을 찾아 변화를 느끼려면 최소 10년은 걸리는 셈이다. 테마파크는 2년마다 추가 투자를 하지 않으면 고객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입장객의 ‘초기 집중화’ 현상이 벌어진다. 시설 도입 초기에 방문객이 몰리지만 새로운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금방 식상해져서 방문객 수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현상이다. 지난해 에버랜드를 방문한 입장객은 6백16만명이다. 2008년과 비교해 6.5% 줄어들었다.

노후화한 놀이기구도 경영 실적 악화 이유로 ‘방치’  

▲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독수리요새(1992년 설치)가 장기 안전 점검을 이유로 운행을 중단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롯데월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89년 개장 당시 롯데월드는 국내에 최초로 선보이는 실내 테마파크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롯데월드는 공간이 협소해 시설 투자가 어렵고, 친자연 환경의 정서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놀이기구의 노후화도 심각하다. 34개 놀이기구 가운데 22개가 200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탓인지 해마다 매출액이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008년과 비교해 1.9% 감소한 1천7백1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 손실 56억원을 기록했다. 2008년 영업 손실은 1백41억원이었다. 입장객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방문객은 4백40만명에 불과했다. 업계 3위 서울랜드는 더욱 어둡다. 지난해 서울랜드를 찾은 입장객은 1백73만명으로 전년보다 8% 감소했다. 적자는 4억원에서 21억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테마파크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레저산업연구소가 매년 발간하는 <레저 백서 2010>에 따르면, 교양오락비는 1999년 이후 매년 상승하고 있지만, 테마파크 입장객은 2002년 이후 꾸준한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테마파크가 경영 실적 악화를 이유로 재투자를 줄이다 보니 방문객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테마파크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좀 더 쉽게 알 수 있다. 세계 최초로 테마파크 사업을 시작한 월트디즈니사는 기존 공원형 테마파크라는 개념을 버리고 하이테크 테마파크로 거듭났다. 최근 엡콧센터(Epcot Center)라는 미래형 실험 도시를 건설하면서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엡콧센터는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3차원 그래픽과 입체 음향, 로봇과 같이 실제 움직임을 그대로 만들어주는 시뮬레이터 등을 이용해 다양한 가상 현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이곳을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계획 연구소’라고 평가할 정도로 혁신적인 변화였다. 엡콧센터는 연간 방문객 수가 1천만명에 이르며, 테마엔터테인먼트협회(TEA)가 최근 발표한 2009년 세계 테마파크 부문에서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테마파크 산업은 여전히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도쿄디즈니랜드와 도쿄디즈니씨를 운영하는 오리엔탈랜드의 2009년 총 매출액은 3천8백92억 엔으로 전년보다 13.7% 증가했다. 영업 이익은 4백1억 엔으로 28.7% 늘어났다. 입장객 수도 해마다 증가한다. 2008년에는 3천만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 비결이 무엇일까. 지난해 도쿄디즈니랜드에서는 개장 25주년에 맞춰 새로운 주간 퍼레이드를 시작했고, 놀이기구도 2개 더 보강했다. 다양해지는 고객 취향에 대응하기 위해 폐장 후 야간 특별 영업으로 리듬과 댄스를 즐길 수 있는 스페셜 프로그램인 ‘클럽 디즈니’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에 디즈니랜드 산하 테마파크는 테마엔터테인먼트협회(TEA)가 발표한 2009년 세계 테마파크 10위권 안에 무려 9개나 포함되어 있다.

국내 테마파크는 투자를 꺼리고 있다. 놀이기구를 포함한 시설 투자에 수백억 원에 달하는 많은 돈이 들어가는 데다가, 설치한 이후 손익 분기점을 넘기려면 10년 정도 걸리는 탓에 선뜻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교육과 오락이 결합된 ‘키자니아’처럼 이종 간 결합을 통해 새 콘텐츠를 만들려는 시도도 아직 없다. 국내 테마파크에 시설 투자 컨설팅을 하는 윤세한 아주프론티어 개발사업팀 차장은 “테마파크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한 분야만 생각한다. 경영·공학·문화 등 모든 분야를 섭렵해 이를 조합한 콘텐츠를 생각하는 부분이 부족한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소비자들의 변화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첨단 기술 접목도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고정민 홍익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첨단 컴퓨터와 영상 기술에 노출된 채로 자란 아이들은 3D나 4D를 활용한 가상 현실과 입체 영상을 체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기술력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는데, 이것을 반영한 테마파크가 아직 국내에 없다. 콘텐츠 개발에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투자해야”

테마파크는 기업 논리로 손익을 따져서는 안 되는 산업 분야라는 지적도 있다. 서천범 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동심을 지켜줄 수 있는 공공적인 역할이 테마파크에 있다. 대기업이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으로 테마파크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테마파크는 매입 부지가 넓기 때문에 땅값 상승으로 인한 부가 가치가 적지 않다. 에버랜드의 경우 자연농원이 개장할 당시 부지 매입비는 8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매입 부지 면적이 총 1천4백88만㎡로 당시 1㎡당 54원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개별 공시지가를 살펴보면 1㎡당 7만4천원으로 뛰어올랐다. 땅값 상승으로 인해 발생한 수익이 1조원에 이른다. 개발 호재를 누릴 만큼 누린 셈이다. 롯데월드 역시 개장할  당시 부지 매입비는 8백억원이었지만, 지금은 15조5천만원이 넘을 만큼 땅값이 상승했다. 매입 당시 ㎡당 개별 공시 지가가 14만원 정도였는데 현재 2천6백만원을 넘는다.

그런데도 국내 테마파크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재투자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의지는 다소 초라해 보인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인철 에버랜드 홍보과장은 “에버랜드 콘셉트가 가족 중심 테마파크로 동물원, 튤립 축제, 퍼레이드 등을 통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화려한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테마파크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해외유명 테마파크가 국내 진출했을 때이다. 유니버설스튜디오, 파라마운트 무비파크, MGM 테마파크 모두 다양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최첨단 영상기술인 3D와 4D를 결합시킨 입체 체험관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테마파크이다. 불과 3~4년 뒤에 국내 테마파크와 해외 테마파크의 경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라도 국내 테마파크가 적극적인 투자로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도심 한복판에 테마파크가 등장했다. 지난 2월 문을 연 ‘키자니아’는 국내 최초로 도입된 어린이 직업 체험 테마파크로 만 3~16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기존 테마파크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오락적 재미만 추구한 반면, 키자니아는 특정 소수에게 교육적 의미를 담은 특화된 콘텐츠로 승부수를 띄웠다. 두 달 만에 10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일단 반응이 좋다. 서천범 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이종 결합으로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테마파크 산업의 새로운 흐름으로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키자니아는 1999년 멕시코시티에서 첫선을 보인 에듀테인먼트 테마파크이다. 일본, 인도네시아, 포르투갈, 아랍 에미리트에 이어 한국에 여덟 번째로 진출했다. 키자니아 서울은 100% 국내 자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업 운영권은 MBC 자회사인 MBC플레이비가 가지고 있다. 키자니아는 브랜드와 운영 노하우를 건네주고 로열티를 받는다. 키자니아의 인기 비결은 잘 짜인 스토리텔링에 있다. 단순히 직업 체험을 하는 공간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실과 완전히 차단된 어린이들만의 공화국이 만들어져 사회와 똑같이 운영되고 있다. 가령 불이 났다고 치자. 소방관 체험을 하는 친구들이 불을 끄고 있으면 경찰차가 따라온다. 경찰관 체험을 하는 친구들이 와서 교통정리를 도와준다. 곧이어 응급 구조대원이 환자들을 구급차에 싣고 있으면 옆에서는 기자 체험을 하는 친구들이 현장을 취재하는 식이다. 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 배울 수 있다. 직업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았다면 돈을 벌 수도 있다. 은행이 있어 돈을 넣어두면 이자도 붙는다.

하지만 운영의 미숙함이 곳곳에 보인다. 인기 직종인 의사나 약국, 방송국 체험은 대기 열이 길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또,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은 함께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마냥 지켜보아야 한다. 세계 8개 키자니아 가운데 가장 넓다고 하지만 다소 협소한 느낌이 든다.

 

▲ 일본 오사카에 있는 유니버설스튜디오. ⓒ연합뉴스
국내에 들어오기로 한 해외 테마파크들이 국내외 악재 탓에 주춤거리고 있다. 세계 금융 위기 때문에 자금을 동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데다가 테마파크 수익성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들이 쏟아져나오자 선뜻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동안 물망에 올랐던 유니버설스튜디오를 비롯해, 파라마운트 무비파크, MGM 테마파크가 모두 좋지 않은 상황에 몰려 있다. 

유니버설스튜디오는 지난 1월19일 ‘화성유니버설스튜디오’ 사업 프로젝트 선포식을 열고 15개 참여 기관과 MOA(투자합의각서)를 체결하면서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사업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토지 소유주인 수자원공사와 가격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아 3개월째 협상만 거듭하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감정가로 땅을 공급하겠다고 하는 반면, 유니버설스튜디오는 원형지 가격 기준을 제시하면서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유니버설스튜디오 테마파크 산업 위탁 업무를 맡고 있는 AMC 관계자는 “일본도 유니버설스튜디오를 설립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당초 6월에 본 계약을 체결해 토지 보상 절차에 들어간다는 계획은 달성하기 어렵다. 3~4개월 더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2014년 완공한다는 계획도 실현 여부가 불투명하다.

파라마운트 무비파크는 시행사인 대우자동차판매가 최근 부도 위기에 내몰릴 정도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빨간불이 켜졌다. 간신히 회사 부도는 막았지만 워크아웃 상태에 들어가면서 7월13일까지 모든 사업이 중단된다. 오는 10월부터 워터파크 공사를 시작으로 테마파크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당초 계획은 늦춰질 수밖에 없다. 

영종도에 들어설 계획이었던 MGM 테마파크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사업 승인을 1년 이상 끌면서 답보 상보에 놓였다. MGM 테마파크 사업권을 가진 MSC코리아는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제주도로 눈을 돌린 상태이다. 영종도에 테마파크를 짓는 대신 제주도에 휴양 리조트를 건설하기 위해 MGM과 제주도 라이선스를 체결하였고,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사업파트너로 참여하여 합작법인을 추진 중이다.

자본력 있는 국내 대기업이 주주로 나서는 경우에는 전망 밝아

국내에서 해외 테마파크를 볼 날이 늦춰질 뿐이지 사업 자체가 완전 무산될 가능성은 낮다. 유니버설스튜디오의 경우 자본력이 있는 롯데자산개발과 포스코건설이 1, 2대 주주로 되어 있는 데다가 경기도와 화성시가 국내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직접 국내 기업을 돌며 투자자를 모집할 정도이다. 파라마운트 무비파크 역시 대우자동차판매가 워크아웃에서 졸업하게 되면 다시 사업 진행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파라마운트 무비파크가 들어설 예정인 인천 송도 일대 부지가 대우자동차판매 소유지이기 때문에 시설 투자 비용만 충당되면 곧바로 착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MGM 테마파크 역시 영종도에 테마파크를 세운다는 계획은 철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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