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의 기개, 두루 떨치다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5.1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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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우태윤

 

1백24년의 역사, 세계 최대 여자대학, 17만7천여 동문을 자랑하는 대학의 위상에 걸맞게 이화여대는 정·관계뿐 아니라 재계, 언론계, 법조계, 학계, 문화예술·체육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출중한 인물들을 다수 배출했다.

이화여대 출신 가운데는 자신의 능력에다 유력한 가문이라는 배경이 더해져 재계에서 여성 경영인으로 이름을 알리는 이가 많다. 법조계, 언론계, 사회단체에 몸담고 활동하면서 불우·여성 차별 철폐와 권익 신장에 앞장서 온 동문들 또한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우선 재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물들부터 알아보자.

 

대표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이인희·명희 자매이다.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3남5녀 중 맏이로, 이건희 삼성 회장보다 열네 살 위이다.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중퇴한 그녀는, 신라호텔 고문을 지냈고 그 후 3년 동안 맡고 있던 한솔제지 대표이사 자리를 2001년 삼남인 동길씨에게 물려준 뒤 고문으로 물러났으며, 현재 한솔문화재단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남편이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 명예이사장이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막내딸로, 이건희 회장보다 한 살 아래이다. 이화여고-이화여대 생활미술과를 졸업했다.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본부 이사로 경영 수업을 시작했고, 아버지가 타계한 후 회사를 물려받았다. 상무-부사장-회장을 차례로 거치고 현재는 신세계그룹 회장으로 있다. 남편이 정재은 웨스틴조선호텔 명예회장이다. 두 사람 사이에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과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가 있다. 또 다른 재벌가 딸로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이다. 1973년 롯데호텔 이사로 입사해 호텔과 롯데쇼핑을 오가며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두 딸이 모두 롯데쇼핑에 근무한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나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걸스카우트연맹, 대한적십자사에서 활동하다가 남편 정몽헌 전 현대아산 이사회장이 2003년 8월 갑작스럽게 타계하자 뒤를 이어 현대그룹의 지휘봉을 잡았다. ‘강단이 있는 외유내강형’이라는 평을 듣는다. 어머니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온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고, 외조부가 김용주 전 전방 회장이다. 김무성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는 그녀의 외숙부가 된다.

이화경 오리온그룹 사장은 외식업체 베니건스, 영화 사업인 복합상영관 메가박스, 투자배급사인 쇼박스, 케이블채널 온미디어 등 오리온그룹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양구 동양제과 창업주의 차녀로서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다니면서 1975년 동양제과에 인턴 사원으로 입사했다. “내 딸이라도 특혜는 없다”라는 아버지의 뜻이 작용했다. 그리고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것이 2000년 11월, 25년 만의 일이다. 남편이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며,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형부이다.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사장은 우리 재계에서 보기 드문 ‘부부 경영인’ 사례로 꼽힌다. 담회장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아이디어를 처음 내고 추진한 주역이다.

전성희 대성산업 수석비서 이사와 같은 진기한 기록도 있다. 1979년 4월16일 아이 둘 딸린 서른일곱 살 주부가 남편 친구의 비서 일을 하기 위해 첫 출근을 했다. 그 후 강산이 세 번 변했고, 묵묵히 자리를 지킨 그녀는 국내 현역 최고령 비서가 되었다. 약학과 출신인 전이사는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비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부지런하고 기억력 좋고 입 무거운 그녀에게 상사의 신임이 쏟아졌다. 1990년 남편을 따라 외국 생활을 하느라 2년간 휴직했을 때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비서 3명을 채용해야 했다는 일화는 업계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올해부터 한국비서협회 회장을 맡았다. 이 밖에 한경희 스팀 청소기로 유명한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 사장도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언론계에서의 이화 파워도 무시 못할 만큼 강하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먼저 장명수 전 한국일보 사장을 꼽을 수 있다. 10년 전 한국일보가 장명수 주필을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인으로 선임했다는 뉴스는 장안에 큰 화제를 일으켰다. 그에 앞서 그녀가 주필에 임명되었을 때에도 ‘여성 1호’의 기록으로 주목을 받았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63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그녀는, 문화부 차장이던 1982년 7월 ‘여기자 칼럼’이라는 기명 칼럼을 연재하면서 ‘장명수 신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어 ‘장명수가 만난 사람’ 등을 통해 한국의 간판 칼럼니스트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그녀는, 생활과 밀착된 소재에 날카로운 관찰력과 분석을 가미한 글을 통해 ‘장칼’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최은희 여기자상, 관훈언론상 등 무수한 상을 받았다.

법조계 거목 이태영 박사의 후예들

 

 

 

내일신문 편집국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지낸 이옥경씨는 이미경 민주당 사무총장의 언니이고, 남편이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고 조영래 변호사이다. 강경란 프런트라인뉴스서비스(FNS) 대표는 회사 이름이 말해주는 그대로 분쟁 지역 전문 PD이다. 사람들은 “전쟁 있는 곳에 그녀가 있다”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CNN 서울지국장을 지내다가 올해 초 G20정상회의 준비위원회 대변인을 맡은 손지애씨는, 경제기획원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4년간 워싱턴에 머무르면서 배워 익힌 영어를 자신의 강점으로 키워낸 경우이다. 

이화여대 출신 법조인의 효시는 고 이태영 박사이다. “법과 인습에 억눌려 우는 한국 여성과 평생 같이 눈물 흘릴 것입니다.” 이박사가 평소 자주 했던 말이다. 축첩 반대, 동성동본 금혼제 폐지 등 가족법 개정 운동으로 그녀가 앞장서 이루어낸 결실은 이 나라 여성 해방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녀에게는 여러 가지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화여전을 나와 서울대 법대에 여성 최초로 입학,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여변호사, 여성 법학 박사, 법대 여성 학장 등. 그녀 자신 못지않게 풍파 많은 삶을 살았던 야당 정치인 고 정일형 박사의 아내로서 우리 정치사의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다. 

전효숙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이태운 전 서울고등법원장과 합께 고위직 법관에 오른 부부 법조인이다. 두 사람은 각기 순천여고와 순천고를 다녔다. 전 전 재판관은 현재 모교인 이화여대 법학과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 말 제51회 사법시험 3차 시험 결과 이화여대 출신 55명이 최종 합격했다. 모두 9백97명의 합격자를 낸 이 시험에서 법학과 4학년생이던 김나래씨가 최연소 합격의 영광을 차지했다. 합격자 중 재학생은 15명, 법학 전공이 아닌 사람은 12명이었다. 

기독교의 교리인 ‘사랑’의 정신을 일찌감치 교육받아온 이화인들 중에는 YWCA 등 종교 관련 단체, 불우 이웃 시설을 중심으로 한 봉사활동과 가정 법률 상담 등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다. 이행자 전 대한YWCA연합회 회장과 박은경 물포럼 총재 등이 YWCA에 관여한 경우이고 김임순 거제도 애광원 원장, 박정숙 부산 매실보육원 원장은 사회복지 사업에 헌신해 온 사람들이다. 황년대 정립회관 이사장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 병원 소아재활원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1975년 정립회관을 설립해 지체가 부자유스러운 소년 소녀들을 위해 일생을 몸바쳐왔다. 이행자 전 회장은 한때 장관, 국회의원으로 정·관계에 이름을 날렸던 이태섭 한국원자력의학원 이사장과, 박은경씨는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 고문과 짝을 이룬 여걸들이고, 평민당 부총재를 지낸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행동하는 믿음’ ‘민중 신학 개척자’로 불린 고 안병무 한신대 신학과 교수를 남편으로 두었다. 표에 실린 명단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체적으로 영문과, 사회학과, 신문방송학과, 정외과 출신들의 사회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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