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주역들, 지금은…
  • 조현주 기자 ()
  • 승인 2010.05.1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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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름이 익숙한 많은 이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5·18 최후의 수배자로 알려진 윤한봉씨는 1980년 비상계엄 확대 이후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3년 만에 귀환해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윤씨는 폐기종에 걸려 투병하다 지난 2007년 5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6년에는 재야 원로였던 홍남순 변호사가 94세의 일기로 숨졌다. 5·18 당시 옥살이를 했던 윤영규 초대 전교조 위원장은 2005년에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광주의 어머니’로 불렸던 조아라 광주 YMCA 명예회장 역시 지난 2003년 92세를 일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껏 ‘5월 광주’의 주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왕년의 투사들도 있다. 1980년 5월 공수부대와 계엄군은 광주를 고립시켜 외부와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했다. 이때 광주 시민들의 언로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유인물’이었다. 당시 전남대 국문과 4학년생으로서 유인물 제작과 배포에 참여했던 김태종씨(51)는 현재 ‘5·18 30주년 기념 뮤지컬 추진위원회’ 추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오는 5월15일에 막을 여는 뮤지컬 <화려한 휴가>의 예술감독을 병행하고 있다.

5·18이 일어나고 난 뒤 거리 방송을 했던 차명숙씨(49)도 있다. 차씨는 영화 <화려한 휴가> 신애 역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그녀는 현재 경북 안동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종종 5·18과 관련된 행사에 참여하며 당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옛 전남도청 앞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기지 역할을 했던 ‘녹두서점’이 있었다. 이곳의 안주인이었던 정현애씨는 낮에는 삼계중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민주화운동가들을 뒷바라지하며 생활했다. 광주항쟁 지도부의 여성 대표이기도 한 그녀는 현재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비례대표 후보자이자 사회운동가로 일하며 여전히 광주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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