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돈, 이곳으로 흐른다
  • 이 은 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5.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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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이종현

 유럽발 금융 위기로 금융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이번 국면이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을 정도로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 않다. 적게는 10억원, 많게는 3백억원 이상의 금융 재산을 갖고 있는 부자들은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칫 잘못 투자했다가는 큰 손실을 보기 십상이다. 금융권 PB팀장 여섯 명에게 부자들이 어떻게 이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지, 어떤 상품에 투자하고 있는지를 들어보았다.

 

ⓒ시사저널 박은숙

금융 자산 1백50억원을 갖고 있는 김미숙씨(70·가명)는 올해 1월부터 경기선행지수의 상승 폭이 둔화되는 것을 보고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했던 45억원을 ELS(주식연계증권)로 바꿨다. 스텝다운형 ELS는 종합주가지수(코스피)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연 12%의 수익이 보장되는 상품이다. 김씨는 스텝다운형 ELS 상품이 원금 손실 위험은 있지만, 주식형 펀드보다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김씨뿐만 아니다. 서울 명동에 사는 최진배씨(54·가명)는 지난 4월 채권 3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금융 투자 자산 100억원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50억원을 주식에 투자했던 최씨는, 최근 유럽 재정 위기 사태를 보면서 불안감을 느껴 채권으로 상당 부분을 전환했다. 최고 4.5% 수익을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비과세 혜택이 부여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와 닿았다.

안전 자산으로 몰리는 경향 뚜렷…채권·사모펀드에 눈 돌려

유럽발 금융 위기로 금융 부자들의 자산이 안전 자산으로 몰리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현상은 채권시장으로 투자 자산이 유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3개월간 채권 발행액은 1백64조2천4백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백50조5천7백억원)보다 9.1% 늘었다. 국내 채권형 펀드에도 지난 2월과 3월에 걸쳐 3조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되었다. 외국인들이 5월에만 3조5천억원이 넘는 상장 채권을 순매수한 것과 흐름을 같이한다. 우리투자증권 명동 WMC 최용우 PB팀장은 “주식시장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안전하면서도 5~6%의 목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채권이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국·공채 가운데 절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국민주택2종채권과 같은 상품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다. 국민주택2종채권은 소득이 종합소득세 과세 표준에 합산되지 않고 분리되기 때문에 과세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최팀장은 “부자들은 절세에 가장 관심이 많다. 금융 투자로 얻은 종합소득세가 8천8백만원을 넘어가면 35%를 세금으로 내야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비과세 혜택이 있는 저축형 보험(10년 이상)이 최근 다시 인기를 끄는 것도 똑같은 맥락이다.

ⓒ시사저널 유장훈

부자들은 안전성이 담보된 국·공채 이외에도 우량 기업의 회사채나 기업 어음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재력가인 심상진씨(70·가명)는 3년 전 국내 펀드에 투자한 10억원이 원금 수준으로 회복되자 모두 환매했다. 그러고는 최근 연 금리 6%인 6개월짜리 우량 기업 어음에 모두 투자했다. 당분간 주가지수 움직임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과 저축성 예금보다는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기업 어음이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심씨를 상담한 국민은행 강남PB센터 이흥두 PB팀장은 “금융 자산이 100억원이 넘는 거부는 자산을 늘리는 것보다 돈을 잃지 않는 것에 더 큰 신경을 쓴다. 일반 투자자는 목표 수익률이 10%가 넘지만 이들은 목표 수익률이 5~6%만 되어도 만족한다”라고 말했다.

다소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부자들은 최근 ELD(주식연계예금), ELS(주식연계증권), ELF(주식연계펀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대신하는 대안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올해 초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다. 국민은행 PB 청담센터 정성진 PB팀장은 금융 자산 10억원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짤 때, 30%를 ELS에 투자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정팀장은 “세금과 물가 상승률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최소 6% 이상 투자 수익이 나야 한다. 예금과 채권만으로는 불가능하다. 10% 이상 고수익을 거둘 수 있는 ELS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ELS 가운데서도 스텝다운형 ELS에 대해서는 부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4개월마다 평가를 해 정해둔 수준 이하로 주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이익이 발생하는 상품이다. 보통 네 달 뒤에 10%, 12개월에는 15%, 만기에는 45%까지 주가가 떨어지지 않는 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1천6백 선인 코스피지수가 9백 선까지 떨어지지 않는 한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원금 손실에 대한 위험 부담은 적다.  

부자들 사이에서 또 하나 좋은 투자처로 꼽을 수 있는 상품은 사모펀드이다. 투자자 49명으로부터 각각 1억원 이상을 모아 1주일 만에 펀드를 구성할 수 있다. 구성 방식이나 시간에 규제가 덜하고 주식형 펀드보다 환매가 수월하다. 올해는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사모펀드가 큰 이점을 가진 상품으로 등장한 것이다. 신한은행 PB 고객부 한상언 팀장은 “신한은행에서만 하루에 한 개씩 사모펀드 상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의미이다. 인기 상품은 투자자 모집 공고를 낸 지 한 시간 만에 마감될 정도이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마땅한 투자처 없다며 대안 상품 찾아…관망하는 경우도 많아

대안 투자 상품이 각광을 받는 데에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이유가 크지만, 부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구체적으로 변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골드넛 멤버스 정연아 부장은 “그리스 위기로 유로화가 급락하자 유럽 주식에 투자할 수 있도록 연계해달라는 문의가 상당히 많았다. PB센터 팀장보다 더 빨리 고급 정보를 가져와서 이 부분에 투자할 수 있도록 상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고객도 생겨날 정도로 똑똑해졌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PB센터 팀장들은 금융 위기로 인한 학습 효과라고 분석했다. PB센터 팀장 여섯 명이 관리하고 있는 고객 4백여 명 대부분이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상당액에 달하는 투자 손실을 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국민은행 PB 강남센터 이흥두 PB팀장은 “금융 위기 이후 PB센터 팀장의 말도 믿지 않을 정도로 신뢰도가 많이 무너졌다. 10% 이상 수익이 나는 상품이 있다고 하면 각서를 쓰라고 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였다. 고객 스스로 공부한 뒤에 투자 상품을 결정할 정도로 투자 문화가 성숙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 국민은행 강남PB센터(개인금융) 고객 상담실에서 이흥구 팀장이 개인금융자산관리에 대해 상담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조심스럽게 투자에 나서는 동시에 전문적인 투자 자문을 원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자문사 연계형 상품이 나오고 있는 것도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투자증권 골드넛 멤버스 정연아 부장은 “간접 투자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펀드가 제대로 수익을 내주지 못하자 새로운 간접 투자 형태로 자문사 연계형 상품이 등장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브레인투자자문을 비롯해 가울, 슈프림, 인피티니 등 투자자문사들이 가파르게 성장한 것도 부자들이 새로운 투자 흐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펀드가 50개 내외의 종목에 투자를 한다면 투자자문사는 10개 내외의 실적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부자들은 물가 상승에 따라 금융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막고자 대안 상품을 비롯한 틈새 투자 상품에 눈을 돌리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관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28일 발표한 2월 말 기준 시중 단기 자금(현금+요구불 예금+수시 입출금식 저축성 예금) 비율은 24.3%로 2007년 9월 24.5%를 기록한 이후 29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3백34조5천억원이나 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까지 낮춘 지난해 2월보다 53조원이 더 늘어난 금액이다. 한국시티은행 서초타운지점 이호경 PB팀장은 “향후 시장이 회복될 것에 대비해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어음관리계좌(CMA)나 머니마켓펀드(MMF)에 돈을 묶어두고 있다. 투자 대상에서 주식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장이 회복되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재빨리 진입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남유럽의 재정 위기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으면서 두드러진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런 추세는 금융 자산이 100억대가 넘는 큰손으로 넘어갈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국민은행 PB 강남센터 이흥두 PB팀장이 관리하는 고객 40명 가운데 24명은 100억대 금융 부자들이다. 부동산 자금까지 합치면 3백억원이 넘는 부자이다. 이들 가운데는 확실하게 투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이들이 많다. 이팀장은 “지난 한 해 동안 확장 국면이 유지되었다. 확장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조정 국면이 오는 법이다. 거기에 유럽발 금융 위기까지 더해져 안정적인 투자 종목을 발굴해 내기가 힘들다. 이럴 때에는 대부분 지켜보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고객 대부분이 기업 CEO이기 때문에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충분해서 섣불리 금융 투자에 나설 이유가 전혀 없다. 이팀장은 “경기선행지수의 상승 폭이 1월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시장 변동성이 클 것으로 보여 최근 고객들의 펀드를 대부분 환매시켰다.

ⓒ시사저널 유장훈

오는 7~8월까지는 금융 투자로 수익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이후에야 투자처를 적극적으로 찾아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단기성 예금에 묶여 있는 부자들의 자금이 유럽발 금융 위기 이후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따라 국내 금융 투자 시장의 새로운 흐름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사는 동네마다 투자 성향도 달라

서울 강남 고객은 화려하고 강북 고객은 수수하다. 고객 연령대 역시 강남은 30~40대 젊은 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강북은 60~70대 노년층이 대다수이다. 위험하지만 수익이 많은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비율도 강북보다 강남이 높다는 것이 PB센터 팀장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서울 강북에 위치한 우리투자증권 명동 WMC 최용우 PB팀장은 “강북 부자들은 겉으로 봤을 때에는 100억원대 자산가인지 전혀 모른다. 고객들과 밥을 먹어봐도 설렁탕 집에서 먹을 정도로 수수하다. 그만큼 안전 지향적이다”라고 말했다. 가업을 물려받아 부자가 된 정통 부자가 많기 때문에 씀씀이가 헤프지 않다. 꼼꼼하기 때문에 투자에서도 굉장히 신중하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강남에서도 정통 부자가 많은 압구정동은 명동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신한은행 PB 압구정센터 조성만 PB팀장은 “주식시장이 활황이던 지난해에도 주식 투자에 선뜻 나서지 않을 정도로 안전 지향적이다. 몇 번씩 권유를 한 덕에 올해부터 주식 연계형 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 주가연계예금(ELD)에 투자하는 비율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40~50대 중반 남성 고객이 많은 도곡동 부자들은 PB팀장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접하고, 투자 결정도 신속하다. 우리투자증권 골드넛멤버스 정연아 부장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고급 정보를 빨리 수집하는 편이다. 투자 흐름을 읽어내는 안목도 뛰어나, 이런 상품을 만들어달라고 먼저 말하는 고객도 꽤 있다”라고 전했다. 법조인과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은 서초동은 시쳇말로 ‘사모님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바쁜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금융 투자를 도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씨티은행 서초타운지점 이호경 PB팀장은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가 받은 투자 정보를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따로 서면을 만들어둘 정도이다. 일부 고객은 중요한 투자 결정을 아내가 전적으로 맡아 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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