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 곁 ‘특급 도우미’들
  • 도영인 | 스포츠서울 기자 ()
  • 승인 2010.05.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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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조리·의무·비디오 분석 등 지원…코칭 스태프와 보조 맞추며 ‘구슬땀’

2008년 1월 출범한 한국 축구 대표팀 ‘허정무호’에는 2년5개월여의 기간 동안 90명이 넘는 선수들이 드나들었다. ‘허정무호’에 탑승하는 선수들은 소집 때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을 보좌해주는 지원 스태프들은 한결같았다. 2010남아공월드컵에 참가하는 한국은 역대 최다 선수단을 파견한다. 선수 26명(훈련 멤버 세 명 포함) 이외에도 허정무 대표팀 감독을 포함한 코칭 스태프와 지원 스태프 등 총 50명이 선수단 자격으로 6월5일 남아공에 입성한다. 선수를 제외한 24명의 임원단에는 단장인 노흥섭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비롯해 비디오분석관, 조리장, 장비 담당, 주치의 등 최고의 전문가들이 태극 전사들의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을 위해 힘을 모은다.

▲ 16년째 대표팀과 인연을 맺고 있는 최주영 의무팀장(왼쪽 사진 왼쪽), 대표팀 단장인 노흥섭 축구협회 부회장(가운데), 김형채 조리장(오른쪽). ⓒ연합뉴스

대표팀의 지원 스태프 가운데 선수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챙겨주는 역할은 국가대표 지원팀의 조준헌 과장(36)이 한다.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엄마’ 같은 존재이다. 조과장은 대표팀의 팀매니저를 맡고 있다. 선수들의 불편 사항을 해결해주는 것부터 일정 관리 등 행정 업무를 총괄한다. 대표팀의 해외파 선수들이 늘어날수록 그의 업무량은 폭증한다. 선수들의 소속 구단에 차출 협조 공문을 보내고 선수들의 입국과 출국 일정을 잡는 것은 물론 파주NFC부터 일본, 오스트리아, 남아공까지 숙소 배정 및 일정 조율을 책임지고 있다. 그는 “남아공의 현지 사정이 좋지 못하다고는 해도 미리미리 준비해왔기 때문에 대표팀 행정 지원에는 문제가 없다. 항공펴ㄴ과 숙소도 이미 준비가 끝났다. 준비는 잘 되었으니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해서 좋은 성적을 얻어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선전을 기원했다.

 

■“역시 밥심이 최고” 전기밥솥 들고 남아공으로

김형채 조리장(37)과 신동일 조리사(27)는 선수들에게 신선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역대 월드컵에서 조리사는 한 명만 대동했지만, 이번 대회에는 선수들의 영양 관리에 신경을 쓰기 위해 두 명의 조리사를 파견한다. 김조리장은 오스트리아와 남아공으로 이어지는 원ㅈㅓㅇ길에 대부분의 조리 기구들을 가져가지 않았다. 하지만 전기밥솥과 압력 밥솥만은 예외였다. 그 이유는 한국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맛있는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해발 1천m가 넘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전지훈련지와 남아공의 고지대는 기압 영향으로 밥이 설 가능성이 커 특별히 밥솥을 준비하기로 할 만큼 선수들을 아낀다.

2006년부터 각급 대표팀의 식단을 관리해 온 김조리장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선수들에게 가장 알맞은 시ㄱ단을 구성한다. 남아공월드컵 기간에는 국 종류 70가지와 반찬류 2백여 가지의 리스트를 이미 만들어놓았다는 김조리장은 경기 전에는 항상 단백질이 풍부한 닭요리를 준비한다. 경기 당일에는 최대한 자극을 피하기 위해 주로 된장국 등을 식탁에 올리고, 경기 후에는 극심한 체력 소모로 식욕을 잃을 수 있어 입맛을 돋우는 음식들로 식단을 구성한다.

차윤석 장비 담당(31)은 지난 5월10일 대표팀이 첫 소집을 하기 이전부터 파주NFC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그라운드보다는 창고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대표팀의 해외 원정에서는 보통 2.5톤 트럭 한 대 분량의 짐을 준비했지만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두 배인 5톤 트럭 한 대 분량의 소화물이 필요했다.

대표팀 짐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대표팀 옷만 0.6톤이다. 남반구에 위치한 남아공의 6월은 체감 온도가 영하까지 떨어지는 겨울 기후여서 두꺼운 방한복까지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팀 1인당 챙겨간 옷 종류만 30여 종에 80벌이다. 선수들의 옷을 일일이 정리하고, 각종 훈련 용품을 챙기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 대표팀 건강 ‘내 몸처럼 챙기는’ 의무팀

선수들의 건강은 대표팀 주치의인 유나이티드 병원의 송준섭 박사(41)와 최주영 의무팀장(58)이 책임진다. 송박사는 FIFA 20세 이하(이집트)와 17세 이하(나이지리아) 청소년 월드컵에 연이어 주치의로 참가해 모두 8강에 오르는 데 숨은 공신이 되었다. 남아공월드컵에서는 한국 대표팀 최초로 고가의 의료 장비가 현지로 공수되고, 선수들의 메디컬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건강 관리에 박차를 가한다. 송박사는 현 대표 선수들의 과거 부상 경력과 MRI 필름 등 각종 기초 자료 등 선수들의 메디컬 프로필을 완벽하게 갖추어놓았다. 또한, 이전 대회와 달리 산소 텐트, 고주파 치료기 등의 최첨단 의학 기구들을 활용해 선수들의 빠른 컨디션 회복과 재활을 돕는다.

최주영 팀장은 1994년 미국월드컵부터 16년째 대표팀과 인연을 맺어온 한국 축구의 산증인이다. 하지만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그의 걱정은 늘어만 간다. 과거 개최국인 프랑스, 독일과 달리 남아공에서 물품을 ‘비상 조달’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들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근육에 감는 키네지오 테이프만 해도 30박스(1천롤)를 챙겨간다. 최팀장은 지난 4월30일 예비 엔트리(30명) 발표 후 태극전사 모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현재 상태와 최근 병력 자료를 미리 모으기 위해서다. 철저한 준비와 1 대 1 관리로 100%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지상 과제이다. 송박사와 최팀장은 선수들의 훈련이 끝나는 오후 시간부터 바빠진다. 훈련 중 선수들이 다친 부위를 치료해주는 것은 물론 재활 중인 선수와 면담해 회복 여부와 현재 상태를 체크한다.

▲ 5월19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포토데이 행사에서 지원 스태프, 코칭 스태프가 선수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007 작전’ 쉴 틈 없는 비디오분석관

선수들과 접촉이 잦지는 않지만 대표팀과 상대국의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해 ‘첩보원’ 역할을 자청하는 김세윤 비디오분석관(44)도 대표적인 숨은 일꾼이다. 김분석관은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한 스포츠 분석 업체에서 일을 시작해 경기 분석을 하는 길로 들어섰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축구 대표팀을 지도했던 김현태 GK 코치와 만남을 가진 것이 인연이 되어 ‘허정무호’의 비디오분석관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김분석관은 ‘허정무호’ 출범 이후 30만 항공 마일리지가 쌓을 정도로 세계 곳곳을 찾아 다녔다. 상대국의 정보를 얻을 수만 있다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해내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현대 축구에서 ‘정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비디오분석관이 상대국의 경기를 촬영하는 일이 쉽지 않다. 김분석관은 “기자인 척하면서 기자석에 ㅈㅣㄴ입해 촬영을 한 적도 있고, 빈 방송 부스에 쪼그려 앉아 경기를 지켜본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90분 경기가 끝나면 그의 옷은 식은 땀으로 항상 젖어 있다. 그만큼 긴장감 속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충이 많다. 그는 “지난 1월 한국과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만나게 될 나이지리아의 경기 내용을 담기 위해 앙골라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관전하러 갔다. 첫 경기에서 영상 촬영을 하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단 한 경기도 찍어오지 못했다”라ㅁㅕ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내가 고생하는 것보다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내 임무이기 때문에 빈손으로 돌아오면 나조차 허탈하다”라고 고백했다.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일은 그의 대학 시절 전공인 철학보다는 수색대에서 보낸 군 생활과 더욱 가깝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에 도전하는 ‘허정무호’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지탱하는 지원 스태프들은, 말 그대로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허정무호’라는 배가 안전하고 쾌적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보다는 대한민국을 위해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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