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라! 대한민국 ‘승리 본능’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5.3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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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월드컵 대표팀, ‘신화 재창조’ 향해 힘찬 출격…신·구 세대 조화 이룬 조직력이 큰 무기

2002년 6월14일 저녁.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월드컵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를 벌였다. 한국팀은 1차전인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사상 첫 월드컵 1승을 거두었다.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2차전인 미국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했다. 예선 최종 상대인 포르투갈이 강적으로 평가되었기에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미국전에서 꼭 승리해야 했다. 하지만 대구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한국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팀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 지난 5월1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축구 월드컵대표팀 출정식에서 허정무 감독과 선수들이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적은 박지성의 발끝에서 터졌다. 당시 대표팀의 떠오르는 별 박지성은 미국전에서 발목 부상으로 출전 여부도 불투명했었지만, 예상을 깨고 선발 출전해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녔다. 후반 25분 박지성은 그림 같은 트래핑에 이어 절묘한 왼발 슛으로 한국을 조 1위, 월드컵 16강으로 이끌었다. 한국 땅 전역에 ‘대~한민국’ 함성이 울려퍼졌고, 그렇게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참여한 붉고 뜨거운 2002년 6월의 신화는 탄생했다. 우리나라 축구사에서는 일대 사건이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환호는 사회·문화적인 전환점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8년 뒤. 박지성은 아이트호벤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거치면서 세계 최강의 ‘산소탱크’로 등극하며 프리미어리그를 누비고 있다. 8년 전 대표팀 막내였던 그는 주장 완장을 찼다. 세대교체가 되었다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 대회가 2002년 대표팀의 시즌 2였다면, 이번 2010년 대표팀은 2002년 팀과는 완전히 다른 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물갈이가 되었다. 대표팀에는 1970년대생이 이운재·안정환·이영표·김남일·이동국 등 다섯 명에 불과하다. 제일 막내인 김보경(1989년 10월생)과 제일 연장자인 이운재(1973년 4월생) 사이의 나이 차는 16년이 넘는다. 공격수도 쌍용(이청용-기성용)과 양박(박지성-박지영)이라는 애칭이 통용될 정도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특히 대표팀 막내인 1989년생 젊은 피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기성용·김보경·이승렬·구자철과 1988년생인 이청용은 지난 독일월드컵 대회 이후 기량이 비약적으로 성장세를 보이며 대표팀이 세대교체되었다는 것을 실감케 해주고 있다. 최근의 에콰도르 및 일본과의 평가전에서도 이들 젊은 피와 산소 탱크 박지성의 결합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에콰도르는 해외파가 빠진 상태이고, 일본은 전력에서 한 수 아래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서 제대로 된 평가전이 아니라는 논란도 있다. 하지만 2006년 독일월드컵 대회 직전의 평가전과 비교해보면 현 대표팀이 득점력이나 수비 면에서 2006년 팀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2006년 대표팀은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휘했다. 2006년 팀은 예선 첫 경기인 토고전에 앞서서 네 번의 평가전을 치렀다. 당시 처음 열린 평가전인 세네갈전에서는 1-1 무승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전에서는 2-0 승리, 노르웨이전에서는 0-0 무승부, 최종 평가전인 가나전에선 1-3으로 완패했다.

■ 주목되는 1989년생 4인방의 폭발력

2010년 대표팀은 5월28일 현재 벨라루스·스페인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있다. 이미 치러진 두 경기에서 대표팀은 무실점 플레이를 선보였고, 각 경기에서 두 골씩 총 네 골을 터트렸다. 고무적인 것은 우리 팀의 공격수인 박주영과 이청용, 박지성이 모두 한 골씩 기록했고 대표팀 새내기 공격수인 이승렬까지 한 골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공격 루트가 다양해지고 공격수 기용 폭이 넓어졌다.

2010년 대표팀의 진짜 실력은 최종 평가전인 스페인전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에콰도르나 일본 팀이 약팀이었기 때문이다.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은 평가전을 약팀을 대상으로 한 자신감 확보용이 아니라 강팀과의 대결을 통해 객관적인 전력을 평가하고 실전 경험을 통해 경험을 쌓는 기회로 활용했다. 스페인이야말로 그에 딱 들어맞는 카드이다. 스페인 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최강 팀  중의 하나이다.

눈에 띄는 점은 허정무 감독의 용병술이다. 젊은 피 발굴에 남다른 노하우를 갖고 있는 허감독은 이번 대회에서도 구자철·김보경·이승열 등 눈에 번쩍 띄는 신인들을 발굴해냈다. 그는 이들을 기존 포지션의 선수와 계속 경쟁시키고 있다. 최종 엔트리 23명의 명단도 마감 시한인 6월1일 전까지는 발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동의 골키퍼 이운재는 에콰도르와 일본 전에서 무실점 방어를 한 띠동갑 정성룡과 경쟁하고 있고, 오른쪽 풀백 자리를 놓고는 차두리와 오범석이 경쟁하고 있다. 대표팀에 막차로 탑승한 이승렬·김보경·구자철 등 1989년생 3인방은 최종 평가전에서 맹활약을 하며 기존 선수를 밀어낼 기세를 보이고 있다.

■ 여전히 든든한 ‘뉴 캡틴’ 박지성의 저력

그렇다고 무조건 젊은 피만 선호할 수도 없다. 큰 시합에는 경험 많은 선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축구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요즘 국가대표팀 자원은 과거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 박지성이나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있고, 안정환, 김남일, 이영표 등 큰 무대를 많이 경험한 선수들이 있다. 그 한편에는 심장 박동 수가 펑펑 치고 올라가는 1989년생 젊은 피가 있다. 구슬은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어떤 조합을 선택할지는 허정무 감독의 판단에 달려 있다.

우리와 같은 예선 B조의 최강팀 아르헨티나는 우리 팀과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허정무 선수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거친 수비도 불사했다. 우리 팀은 경험이 없었고 경직되어 있었다. 마라도나는 축구가 아니고 태권도라고 조롱했다. 세월이 흘러 2010년 감독 허정무는 좌충우돌하는 초보 감독 디에고 마라도나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허감독이 어떤 선택을 하든 중원의 가운데에는 박지성이 있을 것이다. 박지성은 지난 일본 평가전에서 그가 대표팀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2010년 박지성에게 세계 최고 몸값의 선수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주 공격수 메시는 유럽 리그에서 수차례 맞붙었던 경쟁자 중의 하나일 뿐이다.

‘뉴 캡틴’ 박지성의 발끝에서 다시 한번 신화가 탄생하기를 기대해보자. 도전에 동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그해 여름 상암벌에 새기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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