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의 ‘소방수’, 급한 불 끌까
  • 도쿄·임수택 | 편집위원 ()
  • 승인 2010.06.0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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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나오토 일본 신임 총리, 7월 참의원 선거 역할에 주목

▲ 6월2일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후임 총리로 유력시된 간 나오토 부총리가 취재진에 둘러싸여 민주당 경선 출마의 뜻을 밝히고 있다. ⓒAP연합

지난해 7월, 54년 만에 역사적 정권 교체를 이룬 일본 민주당이 집권 8개월 만에 혼란에 빠졌다.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거듭 혼선을 빚어온 하토야마 총리가 6월2일 결국 사임했다. 다음 총선거에도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정치 자금 문제로 국민들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아온 오자와 민주당 간사장도 결국 동반 사퇴했다. 정권 창출의 주역이자 정권 운영의 축이던 두 사람이 퇴진하면서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정국의 앞날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중의원 선거 때 약속했던 공약들 가운데 공약(空約)이 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대표적인 것이 고속도로 무료화이다. 그리고 중학교까지 1인당 2만6천 엔(33만8천원)을 지급하기로 한 자녀수당 공약도 재원 조달의 현실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믿을 수 없는 정권,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자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교 우위에 있던 깨끗하다는 당의 이미지도 오자와 전 간사장과 하토야마 전 총리의 정치 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많이 퇴색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권 운영의 미숙함 또한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립 정권의 한 축이던 사민당과는 정책 공조에서 계속 삐그덕거리다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서의 이견으로 결국 결별했다. 하토야마 내각의 지지율은 10%대까지 추락했다.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권의 두 축인 총리와 간사장이 동반 퇴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민주당은 6월4일 신임 총리로 간 나오토 현 재무상을 선출했다. 반오자와 전선을 구축한 차세대 그룹의 리더인 마에하라 국토교통상, 노다 재무 부대신, 오가다 외무대신 등 외에 구 사민당과 구 민사당계 의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민주당으로서는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최적임자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자민당은,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불법 정치 자금에 연루되어 있는 민주당 지도부가 선거를 의식해서 간판만 바꾸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앞으로 나오토 체제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무엇보다도 하토야마 전 총리가 사임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오키나와 현민들은 총리가 바뀌었다고 해도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며 기지를 오키나와 현 밖으로 이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도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그동안 불편한 관계에 있던 양국 관계는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서 ‘원안 고수 조치’에 감사를 표시하며 잠시 회복되는 듯했다. 그러나 하토야마 전 총리가 사임하면서 다시금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국측은 원안 고수는 정권과의 약속이 아니라 정부와 정부와의 약속이기에 지켜져야 한다며 수정안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 일본의 주요 신문들은 6월2일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동시에 사임하기로 했다고 1면 머리 기사 등으로 보도했다. ⓒ연합뉴스

민주당, 선거 패배시 동력 잃으면서 정국 혼란 불러올 수도

사민당과의 관계는 협조에서 대립 관계로 돌아섰다. 사민당의 후쿠시마 당수는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토야마 내각에서 물러나자마자 제일 먼저 오키나와 현을 방문해 하토야마 전 총리가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자민당의 예봉을 피해가야 하는 일도 신임 간 나오토 총리가 풀어야 할 큰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정국 주도권을 빼앗겼던 자민당의 공세는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며 연일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내홍에 휩싸였던 자민당은 이번에 하토야마 전 총리와 오자와 전 간사장이 사임한 것을 계기로 민주당의 수권 능력과 정치 자금 문제를 집중 거론하며 국회 해산과 총선거를 노리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자칫 잘못하면 정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사면초가의 형국을 맞이하고 있다.

오자와 전 간사장의 퇴진이 민주당과 7월 참의원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 4백20명의 의원 가운데 오자와 계보는 1백5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오는 선거와 향후 정국 운영에서 오자와 전 간사장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할지가 주목된다. 당장 눈앞의 선거를 이기려면 간접적으로나마 오자와 전 간사장이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 오자와 전 간사장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마에하라 국토교통상 중심의 개혁파 세력의 주장이 힘을 얻는 흐름이다.

일본 정국의 분기점은 오는 7월의 참의원 선거이다. 민주당이 패배할 경우 중의원은 여대 야소, 참의원은 여소 야대의 구조가 된다. 민주당이 동력을 잃으면서 정국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역으로 말하면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념을 축으로 하는 세력 간에 이합집산이 일어날 것으로 예고된다. 민주당 내에는 자민당에 가까운 성향의 세력과 마에하라 국토교통상처럼 개혁 세력들이 어색하게 동거하고 있어 잠재적으로 분란이 일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자민당도 마찬가지다. 자민당의 불협화음은 일부 인사들이 탈당해 신당을 만들면서 불거졌다. 오는 7월의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간 나오토 총리의 지도력이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6월에 시작한 일본 정국의 격동은 7월 이후까지 계속될 것이다.

 간 나오토는 ‘공인받은 논객’

새롭게 민주당 총재 자리에 오른 간 나오토 총리는 세 번째로 민주당 대표를 맡게 되었다. 간 나오토 총리는 도쿄공업대학 재학 시절 정치 서클인 현대문제연구소를 만들어 전학개혁추진회의 리더를 맡으며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대학 졸업 후 시민운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사회민주연합, 신당 사키가케 부대표 등을 거쳐 하토야마 전 총리와 함께 현재의 민주당을 만들어 공동 대표를 맡았다. 하시모토 전 내각 시절에는 후생상을 역임했으며 하토야마 전 내각에서 과학기술정책 담당 장관, 경제 재정정책 담당 장관으로  호흡을 맞추어왔다.

간 나오토 총리는 일본 정치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논객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품은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합리적이다. 지난해 정권 교체 후 오자와 전 간사장, 하토야마 전 총리와 트로이카 체제로 민주당을 이끌어왔다. 하토야마 총리 시절에는 초대 국가전략상에 임명되었고, 이어서 재무상을 역임했다. 한·일의원연맹 회원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도 높다.

취미는 스쿠버다이빙과 바둑이다. 오자와 전 간사장과는 20년 바둑지기이다. 정치적 동지 관계인 부인은 간 나오토 총리 이상으로 정치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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