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통치’ 발 맞추는 김정은과 장성택
  • 정성장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승인 2010.06.15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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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북한 정세가 긴박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입장을 달리하고 있지만, 북한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등극’시켰다. <시사저널>은 2010년 6월 북한의 현재를 취재했다. 장성택 부위원장의 등장을 어떻게 보아야 하고, 북한의 권력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심층 분석했다. 또, 북한과 중국의 접경 지역인 중국 선양 시와 단둥 시 현지 취재를 통해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 주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 맨 오른쪽부터 김정일, 김정은, 장성택, 김정남(김정일의 장남). ⓒ중앙선데이 제공·연합뉴스

북한의 장성택 당 중앙위원회 행정부장이 지난해 4월 국방위원회 위원에 선출된 지 1년2개월 만인 지난 6월7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3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선출되었다. 김정일의 매제인 그는 북한의 핵심적인 양대 공안 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를 지도하고 있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우리 사회의 다수 전문가는 “장성택의 국방위 부위원장 승진은 그가 명실상부한 ‘2인자’라는 것을 대내외에 알린 것이다”라고 평가하거나 “북한의 권력 승계는 김정일 이후 곧바로 3대 세습으로 가기보다는 장성택에 의한 과도기적인 승계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장성택을 국방위 부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국방위를 앞으로 후계 체제를 뒷받침하고 전체적 후계 이양 과정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삼겠다는 뜻이다”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런데 장성택을 ‘명실상부한 제2인자’로 간주하거나 장성택에 의한 ‘과도기적 승계’를 유력시하는 시각은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이 ‘수령의 후계자’로서, 현재 당과 군대에서 김정일 다음 가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김정은과 장성택의 실제 영향력과 자질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두 인물의 영향력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권력 승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통성, 북한 권력의 ‘핵(核)’인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대한 지도권, 공안 기관에 대한 지도권, 군대에 대한 지도권 등 주요 지표들을 가지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표 참조).

 

먼저, ‘권력 승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정통성’을 보면 김정은은 2009년 1월에 ‘수령의 후계자’로 결정되어 공식적 후계자 지위를 가지고 있는 반면, 장성택은 ‘과도기적 후계자’의 지위도 가지고 있지 않다. 북한의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수령의 후계자’는 수령과 같은 ‘절대적 지위’를 누리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바로 이같은 통치 논리에 의해 김정은은 김정일의 후계자로 결정되면서 곧바로 당과 군대의 ‘제2인자’가 되었으며, 지난해 상반기에 북한의 핵심 엘리트들로 구성된 후계자의 정치적 지도 체계를 구축했다.

둘째, 김정은은 ‘당 중앙위원회 조직비서’에 공식적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과거 김정일이 조직비서와 조직지도부장직을 가지고 북한의 당과 군대, 국가 기구의 파워 엘리트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해 온 것처럼 현재 조직비서와 조직지도부장 역할을 사실상 대행하면서 북한의 엘리트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최근에 사망하기 전까지 김정은이 그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인사 결정에 관여해 온 사실은 그가 조직지도부의 제1부부장보다 높은 지위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반면, 장성택은 김정은의 인사 결정에 조언을 할 수는 있지만, 직접 인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가지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셋째,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 등 공안 기관에 대한 지도권은 김정은과 장성택이 공동으로 행사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에 국가안전보위부장직에 임명되어 보위부를 직접 지도하고 있고, 장성택은 중앙당 행정부장으로서 보위부와 인민보안부를 당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국가안전보위부장직을 맡긴 것은, 김정은이 파워 엘리트들의 동향을 철저하게 파악해야 권력을 안정적으로 승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넷째, 중앙당 선전선동부를 통해 김정은에 대한 개인 숭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김정은의 권력 승계를 유리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과거 김정일의 부인 고영희에 대한 개인 숭배 캠페인이 군대를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고영희가 김정일 다음 가는 권력을 행사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지도자에 대한 개인 숭배와 권력 간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장성택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어떠한 개인 숭배 움직임도 없기 때문에 장성택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제2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군대를 장악해야 하는데 장성택은 군대를 지도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 지난해에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입수해 공개한 북한군 내부 문건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김정은의 ‘영군 체계’ 수립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김정각 군정치국 제1부국장이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대신해서 김정은의 군 장악을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 밖에도 김정은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김정일 서기실에 구성된 개혁·개방 전략 수립팀을 기반으로 당의 정책 수립에 관여하기 시작했지만, 장성택은 당의 정책 수립과 관련해 매우 제한적인 영향력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김정은은 올해 1월1일 신년 공동 사설을 통해 과거의 정책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인민 생활 중시의 경제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에 이를 정도로, 현재 그는 북한의 정책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2008년 9월23일 인민대학습당에서 바라본 북한 평양 승리거리의 모습. ⓒ시사저널 소종섭

김정은에게는 당과 군대, 장성택에게는 대외 관계 관리 맡긴 듯

이처럼 이데올로기적 정통성, 당·군대의 장악, 정책에 대한 영향력 등의 지표를 가지고 평가하면 김정은이 장성택보다 김정일 사후 권력을 승계하기에 훨씬 유리한 지위에 있다. 그러나 나이와 국정 관리, 외교나 대남 접촉 경험 등의 지표를 가지고 판단하면 김정은보다는 장성택이 우위에 있다. 결국, 김정은이 국정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대외적으로 나설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국정 관리와 대외 관계에서 장성택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장성택도 당과 군대에 대한 지도권이 없는 상황에서 김정일 이후 성급하게 ‘제1인자’가 되거나 ‘섭정왕’이 되려 하기보다는 김정은의 당과 군대 장악을 인정하면서 국가 기구를 중심으로 북한을 공동 통치하는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정일로서는 비록 일시적이라도 장성택에게 전권을 맡길 때 김정은이 영원히 권력을 승계하지 못하게 되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도 있기 때문에 중앙당 행정부를 제외하고는 당과 군대에 대한 장성택의 지도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로서는 건강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김정은에게 하루속히 권력을 이양하기 위해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에게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기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로 인해 북한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천명한 인민 생활 향상 목표가 난관에 처한 상황에서 김정은을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국가 기구의 고위 직책에 임명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김정일이 최근 장성택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김정은에게 한꺼번에 당과 군대, 국가 기구에 대한 통제권을 넘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판단에 따라 ‘김정일 이후’ 일정 기간 김정은에게는 당과 군대, 장성택에게는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핵문제 협상과 대미·대중 관계 등 대외 관계 관리를 맡기는 방안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과 장성택의 ‘투톱 체제’는, 김정은의 국정 장악력이 커지면 김정은이 국가 기구까지 직접 지도하는 ‘원톱 체제’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월 초 시설이 확장된 평양 대동강과수종합농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국방위원회를 ‘최고 권력 기구’로 보거나 장성택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한 것을 가지고 “앞으로 국방위를, 후계 체제를 뒷받침하고 전체적 후계 이양 과정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삼겠다는 뜻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국가 기구 중에서는 가장 영향력이 크지만, 2009년 개정헌법 제11조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당이 국가를 지도하는 당·국가 체제에서 조선로동당의 영도하에 모든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국방위원회의 권한으로는 북한에서 가장 힘 있는 두 권력 기관인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파워 엘리트 인사에 관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나 내각 총리의 인사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3차 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제의’에 따라 총리가 결정된 것은 여전히 당 중앙위원회가 파워 엘리트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국방위원회가 지도자의 외교 활동과 관련해서는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지만, 중앙당 조직지도부처럼 파워 엘리트 전반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중앙당 군사부처럼 군대에 대한 일상적 지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김정일 사후 장성택이 만약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에 선출된다면 국가 기구의 제1인자는 되겠지만, 당권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김정은과 공동으로 북한을 통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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