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해진 왕궁 살린 웨딩마치
  • 조명진 | 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6.2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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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빅토리아 공주, ‘평민’과 성대한 결혼식 올려… 유럽왕실, ‘평민 결혼’ 새 트렌드

 

▲ 지난 6월19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왕궁에서 열린 결혼 축하연에서 막 결혼식을 끝낸 스웨덴의 빅토리아 공주(왼쪽)와 신랑 다니엘 베스틀링이 춤을 추고 있다. ⓒEPA

 

지난 6월19일 스웨덴의 빅토리아 공주가 평민인 다니엘 베스틀링과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빅토리아 공주의 아버지 구스타프 국왕이 1976년 독일의 평민 실비아와 결혼한 같은 날짜였고, 장소도 스톡홀름 대성당으로 같았다. 스웨덴에서는 36년 만에 열린 왕실 결혼식이라는 점과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 상대가 평민 출신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세계적으로는 1981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처럼 장차 스웨덴 여왕이 될 공주의 결혼식이라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물론 2001년 노르웨이 올라브 왕세자는 아이가 있는 미혼모와 결혼해 화제가 되었고, 2002년 네덜란드의 알렉산더 왕세자는 아르헨티나의 평민 출신 막시마와 결혼했다. 2004년 스페인의 펠리페 왕세자는 TV 앵커우먼 출신인 레티시아와 결혼해서 세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같은 해 덴마크 프레데릭 왕자는 이혼녀와 결혼을 하는 등 유럽 왕실은 더 이상 결혼 상대를 귀족이나 다른 국가 왕실에서 찾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즉, 정략적인 결혼은 사라지고 자신이 선택한 상대를 배우자로 삼는 것이 유럽 왕실의 보편적인 추세이다.

왕위를 이을 빅토리아 공주와 평민 다니엘과의 만남이 결혼으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 ‘개구리를 왕자로 변신시킨 키스’처럼 현대판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당초 구스타프 스웨덴 국왕은, 자신이 1976년 독일의 평민 출신과 결혼했음에도, 장녀가 헬스클럽 사장과 결혼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었다고 전해진다. 다니엘은 2002년 빅토리아의 개인 트레이너를 맡은 것이 인연이 되어 사귀게 되었지만, 2004년에는 국왕의 반대가 극심해서 잠시 결별하기도 했다. 

하지만 빅토리아 공주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굴복하고 만 구스타프 국왕은 결혼 전에 조건을 걸었다. 바로 평민 다니엘이 왕자로 변신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성실히 따라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팀장은 왕실 의전 부수석인 얀 에릭 바렌 준장이 맡았다. 왕자 만들기 프로그램은 영어·독일어·프랑스어와 같은 외국어를 집중 교습하고 스웨덴 왕실의 역사와 정치학 수업을 통해 교양을 쌓는 것. 동시에 홍보회사를 통해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과정을 거쳤다.

▲ 6월19일 스웨덴 스톡홀름 왕궁 앞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빅토리아 공주 커플이 왕궁 발코니에 등장하자 환호하고 있다. ⓒEPA

유럽 왕실의 축하 사절 등 눈에 띄는 하객들 많아

결혼식에는 유럽  아홉 개 국가 (노르웨이·덴마크·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리히텐쉬타인·영국·모나코·스페인) 왕실이 축하 사절을 보냈다. 덴마크의 마가레타 여왕, 노르웨이의 하랄드 국왕, 벨기에의 알베르트 국왕 등 스웨덴과 이웃 국가로서 전통적으로 통혼 관계가 있어 먼 친척 관계인 유럽 왕실 가족이 초청되었다.

영국 왕실 대표로는 엘리자베스 여왕 대신 에드워드 왕자 부부가 참석해서 체면치레를 했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찰스 왕세자 부부나 2위, 3위인 윌리엄 왕자나 해리 왕자가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공주 결혼식 당일 영국의 두 왕자는 남아공월드컵을 즐기고 있었다.

유럽 왕실 이외에 요르단의 압둘라 왕과 라니아 왕비, 일본의 나루히토 왕세자와 마사코 왕세자비도 참석해서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을 세계 왕실의 축하 행사로 만들어주었다. 

초청을 받은 하객들 가운데는 왕실로서 자국에서 군림하고 있지 않은 왕가도 있었다. 그리스의 콘스탄틴 왕과 불가리아의 시네온 왕, 옛 유고슬라비아의 알렉사이 왕자, 루마니아 마가레타 공주가 그들이다.

더불어 귀빈 중에는 독일의 프로이센 호헨졸렌가의 후손인 요한 게오르그 왕자와 1961년 결혼한 스웨덴 아돌프 구스타프 왕의 딸 비르키타 공주가 있었다.

왕실 인사 이외에 국가 원수로는 스웨덴과 같은 스칸디나비아권에 속한 핀란드와 아이슬랜드 대통령만 초청되었다.

▲ 미국을 방문 중인 덴마크의 메리 공주가 지난 6월6일 워싱턴에서 열린 ‘건강한 생활과 건강한 가족’ 행사에 참석해 농구공을 던지려 하고 있다.

눈길을 끈 스웨덴 재계 인사로는 다국적 의류 업체인 H&M의 칼 페손 회장이 빅토리아 공주와 개인적인 친분으로 초청되었고, 세계 재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스웨덴 최고의 명가(名家) 발렌베리 가문의 야곱 발렌베리 SEB은행 회장과 인베스토㈜ CEO 마르쿠스 발렌베리가 참석해서 왕실과 발렌베리 가문의 긴밀한 관계를 확인시켜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영국 왕실의 주요 행사에서처럼 유명 배우나 스포츠 스타는 이번 결혼식 초청자 명단에 없었다는 점이다.

스웨덴 무역협회는 빅토리아 공주의 결혼식 행사와 관련된 관광객 유치, 기념품 판매 등을 통해 2억 유로의 가치를 창출해낼 것으로 기대했었다. 결혼 행사에 대해 ‘Love Stockholm 2010’이라는 테마를 2주 동안 정해놓고, 스톡홀름 시와 여행업체들이 특수를 예상했었는데, 보도에 의하면 기대치에 많이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열차 편으로 스톡홀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특별 열차를 3회 배정했는데, 예약이 부진해 2회 편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금전적으로 산출하기 힘든 홍보 효과 면에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이다. 왜냐하면 결혼식 이후 마차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모인 인파가 50만명으로 집계되었고, 1천여 명의 국내외 언론인들이 취재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번 왕실 결혼 행사를 지원하기 위해서 6천명의 군인과 2천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 게다가 독일 텔레비전은 결혼식을 중계 방송했을 뿐만 아니라 결혼 당일 스웨덴 왕실에 대한 특집 방송을 내보내며 하루 종일 이 행사를 방송했다. RTL 독일 TV 해설자는 2백만 유로(약 30억원)가 든 결혼 비용은 스웨덴과 스웨덴 왕실을 홍보한 것에 비하면 ‘땅콩 값’이라고 표현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도 아니고 왕실도 없는 독일이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독일 RTL TV 해설자는 실비아 왕비가 독일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왕실이 없는 독일이기 때문에 대리 만족하는 차원에서 스웨덴 왕실에 친근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청 귀빈들 가운데는 호헨졸렌가의 요한 게오르그 왕자를 비롯한 프로이센 출신의 독일 귀족들이 있었다.  

스웨덴 일간지 다겐스 뉴헤테르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왕실 가족에 대한 인기도는 1996년 69%에서 2010년에는 40%로 하락했다. 비호감도를 표시한 비율은 1996년 13%에서 올해는 28%로 상대적으로 상승했다. 입헌군주제에 대해 근본적인 거부감이 확산하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1930년대부터 스웨덴에서 노동조합이 주된 지지 기반인 사회민주당이 장기 집권을 해왔기 때문이다. 왕실의 존재와 노조 위상은 아무래도 유전인자(DNA)가 맞지 않는다.

▲ 6월12일 노르웨이의 메테마리 왕세자비가 호콘 마그누스 왕세자와 함께 독일의 스트랄순드 지역 방문 중에 환영 나온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

입헌군주제에 대한 거부감 확산하는 추세 속에서 모처럼 이목 끌어

다른 악재는 브라질 어머니를 둔 실비아 여왕의 독일 아버지가 나치에 협력했던 과거 사실이 공개되면서 여론이 왕실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면도 있다. 그리고 빅토리아 공주는 외향적인 성격과 공손한 모습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필립 왕자가 누드 모델과 찍은 사진이나 마들린느 공주의 약혼이 파경을 맞은 일 등으로 인해 스웨덴 왕실이 여타 유럽 왕실처럼 추문에 휩싸이면서 인기가 떨어졌다.

스웨덴 왕실의 기원은 10세기 초이지만, 현재 스웨덴 왕통인 베르나도트(House of Bernadotte)가는 나폴레옹의 장군이었던 쟝 밥티스트 베르나도트에서 시작된다. 프랑스 출신인 베르나도트 장군은 1818년에서 1844년까지 찰스 14세로서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왕으로 재임하며 북유럽에 새로운 왕가를 열었다.

베르나도트가의 통혼 역사는 3대 손인 찰스 15세가 네덜란드의 루이스 공주와 결혼해 그 사이에 오스카 왕자를 두었고, 오스카 2세로서 왕위를 계승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찰스 15세의 외동딸 루이스 공주는 덴마크 프레드릭 8세의 왕비가 되었다. 찰스 15세의 손녀 메르타 공주는 노르웨이 울라프 5세의 왕비가 되었고, 또 다른 손녀 아스트리드 공주는 벨기에 레오폴드 3세의 왕비가 되었다.

베르나도트 왕가의 6대 손인 구스타프 아돌프 6세의 셋째 딸 잉그리드 공주는 덴마크 프레드릭 9세의 왕비가 되었고,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가 된다. 이와 같이 찰스 14세 이후 프랑스 혈통인 스웨덴 왕실의 공주들은 네덜란드·덴마크·노르웨이·벨기에 왕가와 통혼하며 유럽 왕실 간의 관계 증진에 기여했다.

현재 스웨덴의 왕 칼 구스타프 16세는 구스타프 아돌프 6세의 손자로서 1973년에 왕위에 올랐다. 그는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통역을 맡았던 독일 평민 실비아와 결혼했다. 이번에 다니엘과 결혼한 빅토리아 공주는 왕위 계승 헌법 개정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빅토리아 공주는 베르나도트가의 8대 손이다.

평민과 결혼한 빅토리아 공주가 스웨덴 여왕에 오르면 유럽 왕실의 여왕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84세), 덴마크의 마가레타 2세(70세), 네덜란드의 베아트리스(82세)에 이어 네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미 여왕이 군림하는 이 3개국의 왕위를 모두 왕자들이 계승할 예정이어서, 향후 스웨덴 왕실만이 유럽에서 유일한 여왕을 둔 나라로 남게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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