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로 튄 기름 유출 ‘불똥’
  • 워싱턴·최철호 |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6.2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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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하원 의원 중 30여 명, 정유사 주식 가진 것으로 드러나…의정 활동에 반영되었는지 논란

하루에 많게는 2만5천 배럴에서 3만 배럴을 바다 한가운데로 쏟아내고 있는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킨 영국 정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의 CEO 토니 헤이워드가 이 와중에 휴양지에서 요트를 타 미국 전역의 여론을 악화시켰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원유 유출을 제대로 막지도 못한 가운데 이에 아랑곳없이 호화 요트 놀이를 즐긴 헤이워드는 스웨덴 출신 BP 회장 칼 헨릭 스반베르그와 닯았다. 스반베르그가 미국 의회 청문회에 등장해 ‘영세인들(Small People)’을 언급하면서 미국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분노하게 한 것과 행태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 지난 6월17일 미국 의회 청문회에 참석한 영국 정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의 CEO 토니 헤이워드가 청문회 시작 전에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EPA

 

이처럼 이어지는 건방진 발언의 뒷심은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한 논란이 지금 미국 정치권에서 불거지고 있다. 평소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가운데 대통령 부럽지 않게 호화 생활을 즐기는 정유회사 총수들은 몇 푼 되지 않는 정치 헌금으로 그들의 정치적인 보호막을 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의회 청문회를 그들이 관리(?)하는 의원들이 벌이는 정치적인 쇼에 불과하다는 그들의 오만한 생각이 드러난 것이라고 연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정유사들의 이같은 행태는 지난 6월17일 미국 연방 의회에서 공개된 연방 의원들의 재산 공개를 통해 나타난 사실들로 인해 충분히 이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미국 연방 의원들의 재산 공개는 한국 용어로는 재산 공개이나 사실은 지난 1년 동안 의원들이 받은 모든 선물 내역, 재산 변동 사항, 보유한 재산의 목록 등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워싱턴의 민간 정치단체나 독립 성향의 이익단체들은 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감시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특정 기업이나 단체 혹은 국가로부터 얼마만큼 영향을 받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다양한 이권단체와 기업 등이 존재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가장 큰 이슈인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고를 둘러싸고 연방 의원들이 정유사 주식을 갖고 있는 현황을 살펴보니 상당한 연관성이 드러났다. 상하 양원의 의원들 가운데 30여 명이 정유사들의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게는 3천여 달러 규모에서 많게는 1천100만 달러 이상까지 정유사 주식을 보유한 의원들은 정유사들을 직접적으로 관장하는 천연자원 관련 위원회나 에너지 관련 위원회, 상공 관련 위원회 등에 포진해 있다.


정유사들을 관장해야 하는 미국 연방의회의 위원회로는 하원에는 에너지상무위원회와 천연자원위원회 등이, 그리고 상원에는 상공과학교통위원회를 비롯해 에너지자연자원위원회, 에너지공공사업위원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정유사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의원은 바로 존 케리 의원이다.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최근 상무과학교통위원회에도 소속되어 자원과 환경 분야에 대해서 개발에 반대하는 쪽에 서서 환경보호론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정유사 가운데 65만 달러에 상당하는 코노코필립 사의 주식을 포함해 무려 1천31만 달러어치의 정유사 주식을 보유해, 의원들 가운데 정유사 주식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보호론자’ 존 케리, 1천31만 달러어치 보유

환경보호론자인 그가 정유사의 주식을 그토록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다. 그가 정유사 주식을 그같은 규모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가 보유한 주식은 보이는 그대로 재산상의 ‘주식’으로만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유 유출 사고가 터지면서 정유사 주식을 누가 갖고 있느냐가 새삼 주목되면서 구설에 올랐을 뿐이라는 해명도 가능하다. 존 케리 의원의 대변인 위트니 스미스는 “존 케리 의원은 지금까지 무려 25년 동안 환경 보호를 위해 가장 많은 업적을 이룬 의원으로서 지금까지도 미국의 에너지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신에너지 개발과 대체 에너지 개발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왔던 의원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케리 의원이 갖고 있는 정유사 주식은 대부분 부인이 물려받은 유산이다”라고 설명했다.

케리 의원의 부인은 전 펜실베이니아 주 상원의원이었던 존 하인즈 3세의 부인이었다. 본명이 ‘마리아 테레사 티어스타인 시메스 페레라’이다. 그녀는 유복한 포르투갈계 의사의 딸로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온 뒤 식품회사를 차려 거부가 된 하인즈 가문의 아들과 결혼해 하인즈라는 성을 갖게 되었으나 남편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남편 명의의 재산을 물려받았었으며, 지난 1988년 첫 부인과 이혼한 케리 의원을 공식석상에서 만나 재혼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케리 의원과 부인 하인즈는 지금까지 보유한 정유회사 주식 외에도 지난해 말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BP 사의 주식을 대거 매수했던 사실이 드러나 눈길을 끌고 있다.

그 밖에도 하원에서 정유사 주식을 보유한 의원들은 1백2만 달러 규모인 프레드 업튼 의원(공화·미시건 주), 51만5천 달러 규모의 에드 윗필드 의원(공화·캔터키 주), 15만 달러 상당의 존 딩겔 의원(민주·미시건 주), 5만 달러 규모의 조 바튼 의원(민주·텍사스 주) 등이다. 상원에서는 케리 의원 외에 데이비드 비터 의원(공화·루이지애나 주)이 73만 달러 규모를, 케이 베일리 허치슨 의원(공화·텍사스 주)이 55만 달러 규모를 갖고 있는 등 모두 30여 명이 시가 총액으로 약 1천3백만 달러에 달하는 정유사 주식을 갖고 있다.

특히 야당, 즉 공화당의 하원 원내대표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환경 정책에 줄곧 시비를 걸고 있는 존 보이너 의원(오하이오 주)의 경우 지난해에 원유 및 가스 개발과 관련 있는 회사의 주식을 10만5천 달러 규모에서 무려 35만 달러 규모로 늘려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가 오바마 정부의 환경 보호 기준을 강화시키고, 대체 에너지 개발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연안 해역의 새 유전 개발을 억제하는 정책을 그토록 목소리 높여 반대해왔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야를 망라하고 있는 이들 의원의 정유사 주식 보유 현황은 지난 조지 W. 부시 정부하에서 왜 그토록 휘발유 가격이 치솟았음에도 정유사들에 대한 의원들의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정유사들로서는 얼마 되지 않는 푼돈을 풀면서 그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각종 규제 정책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들 정유사는 막대한 규모로 대의회 로비를 하는 것과 함께 자사 주식을 가진 의원들을 때때로 초빙해 어울리면서 부시 전 대통령 당시의 공화당 정부에서는 새로운 유전 개발을 적극 주장하도록 의원들을 원격 조정했다. 반대로 대체에너지 개발에는 소극적으로 일관하도록 했다.
 
광활한 지역의 해안에 유출되고 있는 원유가 저주스런 확산을 계속하는 가운데 미국민들은 이와 대조되는 의원들의 정유사 주식 보유 현황을 보며 더 깊은 정치 혐오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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