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와 함께 ‘과학’이 뛴다
  • 서호정 | 스포탈코리아 기자 ()
  • 승인 2010.06.2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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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방 설치·무선 경기력 측정 도입·단백질 음료 공급 등 첨단 체력 관리 시스템으로 무장

이번 남아공월드컵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팀을 지원하는 스태프는 총 16명이다. 지난 2002 한·일월드컵 때의 15명, 독일월드컵 때의 14명보다 많은 숫자이다. 1998년까지만 해도 주무와 재활 트레이너를 빼면 지원스태프가 전무했다. 하지만 2002년의 성공을 통해 지원스태프의 역할이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코칭스태프 못지않게 역할이 세분화되고 인력도 늘어났다.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각종 지원도 강화되었다. 현대 스포츠가 과학의 승부라는 말이 있듯이 지난 5월 초 월드컵 대표팀이 소집된 뒤 허정무호는 기상부터 취침까지, 빠짐없이 과학의 힘을 빌렸다. 대표적인 것이 고지대 적응을 위해 설치한 산소방이다. 조별 리그 2차전인 아르헨티나전이 해발 1천7백53m의 고지대인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것을 감안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주요 환경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센터(NFC)에 산소방을 설치했다. 산소방은 선수 휴게실을 개조해 만들었다. 해발 1천3백m에서 3천m까지 상황에 맞게 기압과 산소량을 조절했고, 선수들은 하루에 1시간 이상씩 산소방에서 휴식을 취하며 고지대 적응에 나섰다.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선수권을 준비하던 박종환 감독이 고지대 적응 차원에서 방한대를 쓰고 운동장을 돌게 했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만하다. 산소방을 차릴 수 없었던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당시에는 미국에서 이동식 산소마스크를 공수했다. 작은 소화기 형태의 산소통으로부터 연결된 호스를 물고, 고지대 수준의 산소를 들이마시는 형태였다. 선수들은 미팅 룸에서 산소마스크를 쓴 채로 그리스의 전력을 분석한 DVD 자료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 고지대 환경에 적응해갔다.

‘무선 경기력 측정 시스템’도 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과학 훈련법이다. 이 시스템은 훈련을 할 때 무선 송·수신기의 신호를 사용해 선수 개개인의 체력과 전술 수행 능력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했다. 선수들이 훈련복 안에 송·수신기가 달린 X자 형태의 초경량 밴드를 착용하고 훈련을 하면 필드 주위에 설치된 12개의 무선 송·수신 장치 안테나로 선수의 움직임, 속도, 심장 박동 수, 활동 시간, 회복 능력 수치가 전송된다. 허정무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훈련이 끝난 뒤 이 수치를 체크하며 선수들의 컨디션을 확인했다. 부상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운동 능력 향상도 꾀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선수 관리 방법이었다. 이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 대표팀은 전문가인 프란츠 레페버 분석관을 따로 고용하기도 했다. 레페버 분석관은 대표팀이 훈련지를 옮길 때마다 미리 이동해 시스템 튜닝을 도맡았다. 유럽의 유명 선수들이 복용하는 단백질 음료도 등장했다. 빠르게 피로를 회복하고 영양을 강화하는 보충제였다. 선수단은 국내에서 실시하는 훈련 때부터 기상 직후부터 취침 전까지 하루 여섯 차례로 나누어 단백질과 비타민, 탄수화물이 첨가된 음료와 알약을 복용했다. 영국 CNP 사에서 출시한 이 음료는 맨체스터시티, 리버풀 같은 유명 구단이 애용하고 있다.

이 음료를 추천한 인물은 레이몬드 베르하이옌 피지컬 트레이너이다.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베르하이옌 트레이너는 네덜란드 출신의 피지컬 전문가로 2002년부터 월드컵 때마다 대표팀에 합류해 도움을 주고 있는 낯익은 인물이다. 히딩크 감독 시절, 선수들의 체력 향상을 이끌었던 삑삑이(셔틀런)와 파워 프로그램이 바로 베르하이옌의 작품이다. 이번이 세 번째 합류인 그는 히딩크·아드보카트·허정무 세 명의 각기 다른 대표팀 감독을 돕는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베르하이옌은 늘 친분이 있는 물리치료사와 동행하는데, 이번에는 마이클 쿠이퍼스가 함께했다. 네덜란드의 명문 클럽인 페예노르트의 체력·재활 코치를 역임한 쿠이퍼스는 지난 1월 대표팀의 남아공 전지훈련 때부터 파트타임 형태로 합류해 체력 향상을 이끌었다. 현대 축구의 흐름을 주도하는 토탈 사커의 본고장인 네덜란드는 1980년대부터 축구협회가 중심이 되어 운동생리학 등 피지컬 분야의 전문가들을 육성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피지컬 전문가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한국 축구로서는 2002년 이후 네덜란드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는 것이다.

쿠이퍼스는 월드컵 대표팀이 소집된 뒤 치른 첫 평가전인 에콰도르전에서 허벅지를 다친 이동국의 재활을 전담했다. 당초 이동국은 부상 회복에 3주가량이 걸려 본선 무대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최종 엔트리 선발을 놓고 허정무 감독을 고심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쿠이퍼스가 맨투맨 형태로 붙어 재활을 이끌고 집중 치료를 한 덕에 최종 엔트리 발표 당일 부상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과거 부상자가 발생하면 아무 손을 쓰지 못하며 전력 손실을 감수해야 했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 파주 NFC에서 열린 월드컵 대표팀 훈련에서 피지컬 트레이너인 ‘저승사자’ 레이몬드 베르하이옌(오른쪽)과 허정무 감독이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재활팀의 치밀하고 빠른 치료 활동도 돋보여

주장 박지성 역시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입은 사타구니 부상으로 인해 그리스전에 제 컨디션으로 나서지 못할 위기에 빠질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힘을 발휘한 것은 재활팀이었다. 최주영 팀장을 중심으로 황인우·임현택·공윤택 재활 트레이너로 구성된 재활팀은 박지성을 비롯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는 선수들의 재활 및 컨디션 조절을 도왔다. 산소실과 산소마스크 도입 등은 재활팀의 아이디어였다. 특히 최주영 팀장은 1994년 대회부터 5회 연속 월드컵에 참가한 지원스태프의 맏형이다. 다섯 명의 각기 다른 감독을 모시고 월드컵에 나선 최주영 팀장이야말로 한국인으로서 월드컵 최다 출전 기록을 가진 베테랑이라 할 수 있다.

송준섭 주치의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형외과 전문의 11년차인 그는 한·일월드컵과 독일월드컵 당시 대표팀 주치의였던 김현철 박사에 이어 이번 월드컵 주치의로 참가했다. 선수단의 메디컬 데이터를 구축하고 각종 첨단 의료 장비를 활용해 선수들의 부상 회복 속도를 조금이라도 앞당겼다. 특히 그를 중심으로 한 의료분과위원회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구입한 체외 충격파 기계와 고주파 레이저 등의 의료 장비는 이전의 대표팀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다. 월드컵 준비 기간 중 염좌·타박상 등의 부상을 입었던 김재성·이청용 등은 이 기구를 이용해 차질 없이 대회에 나설 수 있었다. 대회 개막 나흘 전 갑작스레 대상 포진이 발생한 주축 수비수 조용형은 송준석 박사의 발 빠른 대처로 건강을 회복해 그리스전에 정상 출전해 무실점 수비를 펼쳤다. 과거 한의사 출신의 팀 닥터를 대동했었던 대표팀의 경우였다면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송준섭 박사는 항바이러스 치료와 비타민제 투입 등의 전문적 대처로 심각한 전력 누수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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