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연기’는 비밀 특사 작품
  • 김종대 | 편집장 ()
  • 승인 2010.07.0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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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효 청와대 비서관이 백악관·미국 국무부와 막후 협의…“군사적 타당성 분석 결여” 등 비판 잇따라

 

▲ 지난 6월26일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 토론토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권 이후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기하는 문제에 대해 지극히 신중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26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환 시기를 2015년 12월로 3년 7개월 연기하기로 오바마 대통령과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라기보다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부탁하고 미국이 이를 수락하는 형태로 되었는데, 이를 확인해준 당사자는 바로 이대통령이었다. 이대통령이 “한국의 요청을 수락해준 오바마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라는 말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대통령과 민심이 괴리되는 지점이 발견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다. 집권 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때도 쇠고기 수입 개방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양보한 것이라는 피해 의식이 확산되어 청와대가 민심과 괴리된 요인이 되었던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어느 한 쪽이 부탁을 하고 다른 한 쪽이 이를 들어주는 형태의 레토릭이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쌍방이 공동의 이익에 대한 공감을 갖고 서로 ‘합의’한다는 호혜와 협력의 정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작권 전환 문제는 한·미가 군사적 위협에 대한 공동의 평가와 인식 그리고 미래 한·미동맹의 비전과 개념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연기가 합의된 것이라는 절차와 형식을 갖추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 정상 간의 전작권 전환 연기 결정은 그러한 형식이 생략된 ‘비논리적 접근’이었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이 문제의 당사자인 양국 국방부는 배제되고 대통령과 외교 라인에서 ‘정치적’으로 결정되어, 그 진의에 대해 ‘뒷거래’ 의혹까지 불러올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김태영 국방부장관도 국회에서의 여러 토론회에서 “전작권 전환은 정치적 문제이다”라며 국방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있음을 이미 여러 번 밝혔다. 2006년 당시 노무현·부시 정상회담에서는 “전작권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군사적인 문제이다”라고 합의한 바 있다. 즉, 전작권 전환 문제가 국방부에 위임되어 있던 노무현 정부 때와 지금은 정반대의 분위기인 셈이다.

전작권 문제를 다루는 분위기가 달라진 데는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내 재임 중 한국과 전작권 재협상은 절대 없다”라는 완고한 태도를 취한 것이 일차적 배경이 된다. 오바마 정부 1기와 임기를 함께할 게이츠 장관과 협의해서는 아무런 성과도 건지기 어렵다고 판단한 청와대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즉 백악관과 국무부를 상대로 풀기로 작정하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은밀하게 타진했다. 전작권 ‘비밀 특사’는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었다. 그는 지난해 말 비밀리에 미국 백악관·국가안전보장회의(NSC)·국무부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 이 문제를 협의했고, 올해 2월 초에도 재차 미국을 방문해 동맹의 핵심 의제들을 협의했다. 거듭된 그의 전작권 전환 시기 재검토 요청에 미국 국무부는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이 때문에 국무부는 펜타곤(국방부)과 적지 않은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 한미연합사령부가 경기도 남양주시 비암리의 한 포병 진지에서 한반도 유사시 합동 환자 후송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완고하던 게이츠 장관도 거듭되는 우리 정부의 외교적 요청에 의해 그 의지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천안함 사건 이후 게이츠 장관은 한국의 거듭된 요청과 설득에 대해 ‘2014년으로 연기’를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최소한의 성의만 보이는 선에서 마무리 짓자는 발상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더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됨에 따라 미국 국방부는 이 문제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자신들의 원칙을 제시했다. 그 첫 번째는 “어떠한 군사 안보적 상황에서 전작권을 한국에 전환한다는 조건(condition base)은 없다. 언제 연기하느냐는 시간(schedule base) 기준으로만 합의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즉 “2012년에 북한이 강성대국을 완료하고, 한·미 양국의 대통령 선거와 중국 지도부 교체로 혼란이 예상되는 시기에 전작권을 전환하는 것이 가장 나쁜 상황이다”라는 한국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그러한 정치·안보적 상황은 전작권 전환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다만 어떠한 상황이건 약속은 지킨다는 의미로 시간만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동맹 유지 비용’ 상승할 듯…정치적 논란 따른 추가 비용도 예상

둘째, 전작권 전환을 연기하되 한·미 간에 실행해 온 전작권 전환을 위한 ‘전략적 이행 계획(STP : Strategy Transformation Plan)’은 계속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작권 전환 논의를 당분간 보류해야 한다는 국내 보수 진영의 입장에 대해서도 분명한 선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쉽게 말하면 국내 보수 진영은 전작권 전환이라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선 멈춤’ 버튼을 누르자는 것이고, 미국 국방부는 ‘재생 속도’만 조정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게이츠 장관의 완고한 태도는 한·미 정상회담 후에 “2015년 12월로 전작권 전환을 하되, 더 이상의 연기는 없다”라는 발표로 이어지게 된 배경이 된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왜 전작권 전환 시기가 2012년, 또는 2015년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한·미 국방 당국의 군사적 타당성 분석은 결여된, 비논리적 접근 방식이 나온 배경이다. 한편, 이 합의가 있고 나서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최근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을 만나 천안함 사건 이후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서해상에서 한·미 연합 대잠 훈련 시행 문제 △대북 확성기 방송 실행 문제 △양국 정상의 전작권 전환 이후 대책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감사하다”라고 말한 이대통령의 수세적인 언사가 씨앗이 되었는지, 미국은 예상한 대로 “2015년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 공사를 차질 없이 수행해달라”라는 요청을 전달해왔다. 미국이 한국의 요청을 수락한 대신 한국도 동맹과의 약속을 지키라는 압박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전작권 전환 연기로 추가 비용은 전혀 없다”라며 뒷거래 의혹을 부인하는 청와대의 공언과 달리 앞으로 미국과의 전략 동맹을 강화하기 위한 비용 지출은 불가피해 보인다.

청와대의 말대로 전작권 전환 연기로 인해 눈에 띄게 발견되는 추가 비용은 없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 연기가 한·미 전략동맹을 강화한다는 맥락에서 추진되는 것임을 고려한다면, 향후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참여, 아프가니스탄 병력 추가 파병, 평택 기지 목표 시점 내 완공, 방위비 분담금의 평택 기지 이전 비용 전용 시한 연기 등 한국이 지출해야 할 ‘동맹 유지 비용’은 전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작 한국 정부는 전작권 전환 연기로 인한 국내의 정치적 논란을 잠재우는 데서 좀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 같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 이래 국력이 상승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반환받는 자주화의 길을 걸어왔을지언정, 이미 반환받은 주권을 미국에 다시 되돌려주는 일을 한 적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전작권 전환 연기 자체가 주권 행사의 유보일 뿐만 아니라, 지난 5월에는 이미 한국군이 주도해 3년째 실시하는 을지 프리덤 가디언 연합 군사 훈련의 통제권을 내년부터 다시 미국에 반환하기로 한 이상한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 결정이 있자 합참의 영관급 장교들을 중심으로 “이미 우리가 발전시켜온 능력을 포기하고 다시 미국에 통제권을 넘겨주는 것은 굴욕적이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 사실은 청와대에도 보고되어, 이대통령 역시도 한 안보 관련 회의에서 “합참의 장교들이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왜 미국에 넘겨주는가라고 문제 제기하는 것을 알고 있다”라며 군의 반발 분위기에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2005년 3월24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상희 합참의장 등 신임 장성급 군인사 7명으로부터 진급 및 보직 변경 신고를 받았다. ⓒ연합뉴스

일부 합참 영관급 장교들 “우리가 발전시켜온 능력 포기는 굴욕”

이와 유사하게 그동안 예비역 장성들 가운데 일부가 국방부에 “한반도 전역을 대상으로 한 독자적인 작전 지휘 능력의 발전을 꾀하는 합참의 조직 개편 시도를 당장 멈추라”라며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자칫 합참의 조직 개편이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이 전작권을 전환받을 의지가 있는 것처럼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이렇듯 전작권 전환 연기를 위해 마땅히 한국군이 자주적으로 갖추어야 할 능력마저 포기하자는 일각의 주장은 군의 입장에서 봐도 해괴하고 퇴행적인 흐름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젊은 영관급 장교들이 반발하는 이유이다.

또 하나는 군 밖으로부터의 도전이다. “한국군의 능력이 아직 부족하고 전작권 준비 기간도 촉박하다”라는 이유로 전환 시기를 연기하자는 주장에 대해, 이는 한국군 스스로 자기를 비하하고 자신감이 결여된 태도라는 비판이다. “우리 국군은 충분한 능력이 있다”라고 주장한 최초의 발언은 1977년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방침에 대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한 것이었다. 또한, 1990년대 초 당시 “주한미군이 서울에서 나가면 다 망하는 줄로 육군 장성들이 알고 있더라”라고 개탄하며 작전권을 반드시 환수하겠다고 말한 당사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오히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에 의존하는 뿌리 깊은 관성을 근원적으로 혁신한다며 일명 ‘8·18 군제 개편’, 즉 장기 국방 태세 발전 방향 연구와 실행에 착수했다. 지난 40년 가까이 국군의 능력이 충분히 발전했고, 이제는 주권 국가로서 작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한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그동안 여러 명이었다. 그 기간에 전작권을 계속 갖고 있는 미군에 대한 반발도 같이 커졌다. 따라서 전작권 연기 논의에 대해 미국이 걱정하는 것도 다름 아닌 한국의 반미 감정 고조 여부이다.

이에 대해 보수 진영은 “전작권 문제는 주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적극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군이 자주적으로 군사 능력을 발전시키는 좀 더 근원적인 개혁에 몰입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당면한 개혁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에서 한·미동맹으로부터 몸을 숨기려는 현실 안주적 태도로 전작권 문제를 처리했다면 이는 국민들로부터 환영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천안함 사건에서 보인 군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다. “설령 전작권 전환을 연기한다 하더라도 미국이 북방한계선(NLL)을 지켜줄 리도 만무하다. 피를 흘려도 우리가 흘려야 한다”라는 한 영관급 장교의 목소리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동맹에 의존하는 심리 속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근원적인 군의 체질 개혁을 회피하는 태도와 자신감의 부족이 전작권 전환 연기로 연결된 것이라면, 이것은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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