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은 ‘몸통’인가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7.1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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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임준선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뜨거운 시선을 받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이른바 포항·영일 인맥으로 이어진 ‘영포 게이트’의 배후에 선진국민연대가 있고, 그 중심에 박차장이 있다는 의혹이 깔려 있다. 과연 그는 그 모든 의혹의 핵심 인물일까. <시사저널>은 박차장과 청와대, 국무총리실과 공직윤리지원관실 등의 내부 사정을 비교적 훤히 파악하고 있는 여권 내 고위급 인사를 만나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았다. 그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정치권에 떠도는 화제 가운데 ‘판서(判書)와 승지(承旨)’ 얘기가 있다. 조선 시대의 판서는 지금의 장관, 승지는 대통령 비서였다. 정가에 회자되는 말인즉 “이명박(MB) 정부에서는 승지가 판서보다 높다”라는 것이다. 청와대의 권력이 그만큼 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을 빗댄 표현도 숨어 있다. 여기서 지칭하는 ‘승지’가 바로 박영준 차장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박차장의 파워가 막강하다는 시중의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다. 

실제로 관가에서는 “박차장이 웬만한 장관보다 상전이다”라는 말이 회자된다. ‘왕(王)차관’이라는 새로운 별칭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소(小)통령’으로 불렸던 것을 빗대 그를 ‘소통령’이라고까지 부를 정도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다분히 정치 공세적인 측면이 강한,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이다”라고 일축하기도 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박차장은 ‘소통령’일까, 아니면 억울한 ‘희생양’일까.

중요한 것은 박차장이 현재 ‘권력의 핵심’에 서 있고, 이명박 정부를 공격하는 데 핵심 타깃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박차장은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영포 게이트’의 핵심 배후 세력으로 지목받고 있다. 영포 게이트의 몸통이 선진국민연대 멤버이고, 역시 그 중심에 박차장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김영삼 정부를 한 방에 무너뜨린 ‘한보 게이트’와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던 ‘진승현 게이트’는 모두 현직 대통령의 아들들이 타깃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의 ‘유전 게이트’ 또한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린 최측근이 표적에 올랐다. 지금 박차장은 김현철, 김홍일·김홍업, 이광재 등과 동급의 반열에 오른 셈이다. 그 이유 또한 단순하다. 그의 배경에 대통령이 있는 까닭이다.

 

▲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관계자들이 7월9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종합청사 별관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전격 압수수색해 물품을 들고 차량에 오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박차장은 이상득 의원을 11년 동안 보좌관으로서 보필하다가,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이의원의 동생인 이명박 후보 비서실의 부실장을 맡으면서 ‘MB 맨’이 되었다. 이후 2007년 대선 때 MB의 외곽 친위 조직인 선진국민연대를 이끌고 대선에서 큰 공을 세웠다. 정치권에서는 이때부터 그와 관련해 ‘MB의 신형 브레인’ ‘권력의 핵’ ‘성골 중의 성골’ 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촛불 정국이 한창이던 2008년 6월,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권력 사유화’ 발언으로 큰 파문이 일면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그만두어야 했다. 야인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뉴스의 초점이었다. 소문은 계속 맴돌았다. “박영준 전 비서관이 여의도 국회 앞의 한 빌딩에 사무실을 얻었다. 그곳에서 공기업 인사 관련 업무를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 공기업 인사를 청탁하기 위해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라는 얘기였다. 다들 그가 머지않아 돌아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해 1월 그는 차관급인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박차장은 국무총리실에 근무하면서도 ‘독립된 주체’로 움직였다. 일각에서는 “소속만 국무총리실일 뿐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전반의 업무를 하고 있다”라는 관측이 나왔다. 바깥으로는 아프리카 지역의 자원 외교 등에 주력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박차장은 굉장히 독자성을 갖고 있다. 정운찬 총리도 암묵적으로 그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 속에는 소속만 총리실일 뿐, 사실상 대통령의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셈이다.

현재 박차장은 여기저기서 마구 난타를 당하고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여권에서 날아오는 펀치가 더 매서워 보인다. 선진국민연대 중앙위원 출신인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이 “박영준 차장을 때려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라며 엄호하고 나섰지만, 소리는 미약하기만 하다.

<시사저널>은 박차장의 정부 내 실제 영향력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정부 내 인사와 접촉했다. 그런 와중에 박차장과 청와대 그리고 국무총리실과 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 등의 내부 사정을 비교적 훤히 파악하고 있는 한 고위급 인사와 7월8일 만났다. 이 고위급 인사는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는 전제로 관련된 내용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전해주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 파문을 일으켰다.

공직윤리지원관은 직제상으로 권태신 장관(국무총리실장) 직속이다. 하지만 권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보고를 안 받았다고 했다. 사건이 불거지고 이인규 지원관이 권장관에게 보고하자 권장관이 “나도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했던 것으로 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보고 라인은 어디까지였나?

명확한 물증은 없지만, 박영준 차장이 몸통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정인철 (기획관리)비서관 등과 교류했을 것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총리실 지휘 통제도 안 받고 사무실도 떨어져 있다.

감사원에서는 지원관실을 굉장히 벼르고 있다. 지원관실이 감사원의 한 고위급 인사를 탈탈 털었던 적이 있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그러자 지원관실에서 한두 달 정도 맨(MAN) 감시를 붙어 그가 유부녀와 호텔로 들어간 것을 적발해 면직 처분했다. 감사원에서는 “어떻게 개인의 사생활까지 문제 삼느냐”라고 분노했다. 하지만 해당 유부녀도 감사원 직원이었기 때문에 감사원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봐 지원관실에 대한 감사를 청구하지 못하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누가 만들었나?

그 당시(2008년 7월) 직제상으로는 조중표 국무총리 실장과 권태신 사무차장(현 국무총리 실장)이 그 라인이었다. 하지만 박영준 차장이 야인이었을 때 이영호 비서관이 만들었다. 그들끼리 만든 것이다.

▶박차장은 야인 시절에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했나?

그것은 정확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7월8일) 보도된 메리어트 호텔 모임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실질적으로 누가 컨트롤했다고 보는가?

박영준 차장일 것으로 짐작한다. 박차장은 총리실 간부들과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뉘앙스), 공식 회의석상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그동안 수집했던 첩보와 수사 내용들이 어딘가에 다 있을 것 아닌가?

있을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다. 지난해 9월에 청와대 민정수석이 권재진 수석으로 바뀐 다음 권수석은 “내가 민정수석을 단 하루를 맡더라도 제대로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총리실 산하에 있던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민정수석실 산하로 두려고 했다. 하지만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정실장이 “그대로 둬라”라고 해서 총리실 산하에 그대로 남았다. 그래서 민정수석실도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한 감정이 굉장히 안 좋았다. 검찰도 그것을 알고 있다. 검찰도 손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정정길 실장측은 “권수석이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없고, 처음 들은 얘기이다”라고 말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몸통을 누구라고 보나?

추측하건대 검찰이 이번에 수사를 하다 그것(몸통)이 나오면 일단 수사를 멈추고 (상부에) 물어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더라도 다음 총선이나 대선 때는 나오지 않겠나. 지금껏 검찰 수사 관례를 보면 정권 말기에 항상 그랬다. 뚜껑은 나중에 열릴 것이다. 몸통이라면 박영준 차장밖에 없다.

▶야권에서는 박차장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소 비약인 것 같다. 박차장은 하루에도 회의를 네다섯 개씩 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안다. 알게 모르게 인사 분야와 관련해서도 일한다.

▶‘박영준 사람들’은 청와대나 총리실 가운데 어디에 많나?

총리실 내에는 많이 없을 것이다. 박차장도 중간(2009년 1월)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청와대에 많다.

▶박차장은 청와대 내의 어떤 사람들과 가까운가?

정인철 비서관과는 아주 가깝다.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이영호 비서관보다 더 가깝다. 이상휘 춘추관장 등도 박차장 사람이다. 아마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이겼다면 박차장이 청와대 인사기획관으로 갔을 것이다. 지금도 마음이야 굴뚝같겠지만 말도 못 꺼내는 상황일 것이다.

▶박차장이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보고를 받았다면 목적이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자기 선에서 활용하거나 ‘위’에 보고하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게 해서 신임을 얻고…. 하지만 (보고를 받았다는) 물증은 없다.

 

 “누군가가 음해하고 있다”
박영준 국무차장이 <시사저널>에 직접 전화해 밝힌 반론

박영준 국무차장이 7월8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용건은 <시사저 널>(제1080호, 2010년 7월6일자)에 실린 ‘왜 그가 ‘미스터 아프리카’가 됐나’ 제목의 기사와 관련해 보충 설명을 하기 위해서였다. <시사저널>은 당시 기사에서 ‘박차장이 에너지 자원 확보 등을 위해 아프리카 외교에 분주하다’라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박차장은 이날 통화에서 아프리카 외교와 관련해 한참을 설명했다. 기자가 지금 현안에 대해서 질문하자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다음은 박차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현안과 관련해서 몇 가지 묻겠다.

나는 현직에 있을 때는 특정 매체와 인터뷰를 안 하기로 했다. 이해해달라. 그래서 기자 티타임 정도만 갖고 있다.

■ 그래도 현재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몸통으로 박차장이 지목되고 있다.

진실이 다 밝혀질 것이다. 오늘(7월8일) 보도된 M호텔 모임도 100% 창작이다. 당사자들이 조만간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다. M호텔이 초특급 호텔이니까 CCTV를 확인하면 다 나올 것이다. 누군가 음해하려고 자료를 넘기는 것 같다.

■ 그렇다면 공직윤리지원관실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인가?

월요일(7월5일)에 출입 기자 티타임에서 해명한 대로 보고받은 바가 없다. (관련 내용을 보도한) 한 언론에도 사과를 요구했고, 법적 절차에 들어갈 것이다.

■ ‘정인철 비서관이 시중 은행장과 공기업 CEO와 정기 모임을 가졌다’ 등의 의혹도 제기되었는데.

내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었을 때도 종합 기획과 민심 동향 등을 분석해 보고했다. 당시 공기업 개혁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기도 했다. 그래서 공기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극히 정상적인 업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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