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전 두고 희비 엇갈린 심판들
  •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정해상 | 국제심판 ()
  • 승인 2010.07.20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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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상 월드컵 심판의 ‘남아공 통신’ ⑤ 멕시코 심판진은 3·4위 전으로, 잉글랜드 심판진의 ‘승리’

 

▲ 스페인 축구대표팀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가 네덜란드-스페인 간 남아공월드컵 결승전에서 1-0으로 이긴 후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고 환호하고 있다. ⓒAP연합

대망의 월드컵 결승전 심판진 발표가 있었다. 결승전에는 잉글랜드 심판진이 투입되었고, 대기심으로는 필자와 같은 조인 일본의 니시무라 유이치가 선정되었다. 잉글랜드 심판이 결승전을 배정받은 것은 1934년 이후 80년 만이라고 한다. 3·4위전은 멕시코 심판진이 배정받았다. 멕시코 심판진은 배정 소식을 듣고 약간 풀이 죽어 있는 듯해 보였다. 결승전 투입에 대한 기대가 컸었던 모양이다. 심판 배정은 국제축구연맹(FIFA) 심판위원장의 고유 권한이라 배정에 대해 이의를 달수는 없다. 필자도 하워드 웹 등 잉글랜드 심판진을 축하한다며 포옹해주었다. 심판 배정 다음 날 FIFA의 마지막 미디어데이 행사가 열렸다. 결승전 심판진에 대한 관심이 커서인지 많은 취재진이 찾아와 질문 세례를 했다. 사실 심판들 사이에서는 결승전 대기심에 남아공 심판이 배정될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다. 남아공이 주최한 대회인 만큼 남아공을 배려해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 하워드 웹(가운데) 등 남아공월드컵 결승전에 나섰던 심판들이 단상에 올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도 결승전 참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심판들은 단체로 결승전을 관람했다. 심판 본부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메인 경기장은 아름다운 조각품 같았다. 킥오프 2시간 전 펼쳐진 폐막 행사는 다양한 볼거리로 채워졌다. 노래와 아프리칸 댄스, 불꽃놀이 그리고 모두가 기대했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참석으로 결승전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네덜란드 벤치 뒤에 자리 잡은 필자는 알아보는 관중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응해주고 사인도 해주는 등 경기 시작 전 나름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드디어 잉글랜드 심판진을 선두로 그라운드에 진입하는 양팀 선수들. 왜 그렇게 부러운지…. 연장전까지 가는 격렬한 게임은 스페인의 승리로 끝났다. ‘무적 함대’ 스페인이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던 긴 항해 끝에 드디어 별 하나를 따낸 것이다.

경기 종료 후 먼저 심판진이 단상으로 올라가 FIFA 회장단에게서 메달을 받았다. 메달에는 결승전 심판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관중이 ‘우~’ 하고 야유를 보냈다. 결승전 심판 판정이 관중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시상식을 끝내고 심판본부로 돌아온 심판진도 마지막 경기에 투입된 잉글랜드 심판진의 귀가를 기다렸다가 작은 파티를 시작했다. 박수를 치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고 일일이 포옹하며 월드컵 전쟁이 끝난 것을 축하했다. 잔치는 새벽녘까지 계속되었다. 심판들의 월드컵은 이렇게 끝났다.

월드컵 기간 동안 ‘정해상의 남아공 통신’에 관심을 갖고 애독해주신 시사저널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폭주 기관차’ 로벤, 심판들도 따라가기 벅차 ‘헉헉’
- 월드컵 역사상 4위팀 선수가 MVP 받는 최초 기록 세워

우루과이의 포를란 선수는 넓은 시야와 개인기, 뛰어난 프리킥 능력으로 월드컵 역사상 4위팀 선수가 MVP를 받는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한국전에서도 요주의 선수로 꼽혔는데 보란 듯이 첫 골을 어시스트해 우루과이팀에 승리를 선사했다. 수아레스와 기막히게 호흡을 맞추어 한국팀을 괴롭혔다. 공간 활용 능력이 뛰어난 수아레스는 심판에게도 항의가 없는 선수이다.

프랑스 선수도 훌륭했다. 아넬카, 비에리, 에브라, 앙리 등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선수이다. 하지만 팀 내분으로 인해 월드컵 예선 탈락이라는 쓴맛을 본 뒤에는 귀국길 비행편이 일반석이었다고 한다. 귀국 후에 감독이 청문회에 섰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최고의 선수가 모였어도 팀이 융화되지 못하면 모래알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에브라 정도만 예의 바른 선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스페인팀은 당분간 ‘무적 함대’

스페인 골키퍼 카시야스 선수와의 대화가 기억난다. 필자가 “하의 팬티 안에 입는 언더웨어가 하의 팬티 색상과 같아야 한다. 후반전에 언더웨어를 벗고 나오든지 같은 색상으로 갈아입고 나오라”라고 지시했다. 후반전 시작하기 전 확인해보니 카시야스는 언더웨어를 벗는 쪽을 선택했다. 카시야스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도 스페인팀의 주전 수문장이었는데 한국팀과의 승부차기 대결에서 패해 자존심이 많이 상했었다고 한다. 비야, 사비, 이스에시타, 토레스, 모라스, 푸욜, 피케 등 스페인팀의 선수들은 모두가 유명한 선수들이다. 뛰어난 패스워크와 개인기로 대회 챔피언에 올라 당분간 ‘무적 함대’로 군림할 것 같다. 브라질과 결승에서 대결했더라면 최고의 경기가 되었을 것이다.

네덜란드팀의 로벤과 스네이더, 정말 탁월해

네덜란드팀의 로벤은 정말 빨랐다. 전반전을 마친 뒤 1부심이 필자에게 “로벤 선수 정말 빠르다. 따라가지를 못하겠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그가 브라질팀을 꺾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스네이더 선수는 작지만 뛰어난 활동력으로 팀이 결승까지 진출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대회 뒤 맨처스터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설이 나오고 있다.

독일의 외질, 뮐러 기량 뛰어나

하지만 카카 선수는 예전에 비해 기량이 떨어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유명세는 카카나 호비뉴가 치렀지만 현장에서 기량이 두드러지게 보인 것은 마이콘 선수였다. 마이콘은 우측 사이드 어태커가 주 포지션으로, 필자가 보기에는 세계 최고의 우측 사이드 어태커였다. 경기 중 필자에게 코너킥이라는 거센 항의를 한 번 했다. 전반 종료 뒤 마이콘이 필자에게 다가와 미안하다며 손을 모아 사과했다. 그런데 다시 반전. 필자는 중간 휴식 시간에 내 판정이 틀렸다는 것을 라커룸에서 확인했다. 후반 시작 전에 마이콘에게 “내가 실수했다. 미안하다”라며 사과했다. 필자의 이번 대회 유일한 실수가 바로 이것이었다. 필자가 직접 현장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기량이 뛰어난 선수로는 독일의 젊은 선수 8번 외질, 13번 뮐러를 꼽을 수 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이들은 최고의 선수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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