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징계, 새는 길 너무 많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0.07.2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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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명 최종 결정까지도 산 넘어 산…국회 윤리특위에서 가결된 징계안 중 본회의 통과한 안 ‘전무’

강용석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는 “성적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라며 처음 내용을 보도한 중앙일보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물론 민심도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강의원의 발언이 보도된 직후인 지난 7월20일, 전격적으로 그를 제명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신속하게 결정을 내린 것은 이례적이다. 과거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을 때 지지부진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사태가 불거진 뒤 불과 아홉 시간 만에 조치를 취했다. 한나라당이 소속 의원에 대해 제명 결정을 한 것도 처음이다. ‘성희롱당’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커지고 7·28 재·보선에 미칠 악영향을 감안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 한나라당 윤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강용석 의원의 제명을 발표한 주성영 의원(가운데)은 지난 2005년 술집 여주인 성적 비하 발언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하지만 한나라당 윤리위원회(약칭 윤리위)의 제명 결정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의원총회의 의결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 윤리위 규정상 국회의원을 제명하기 위해서는 윤리위의 결정이 있은 뒤 의원총회를 열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확정된다.

7월22일 현재 한나라당 재적 의원은 1백68명이다. 1백12명의 동의가 있어야 강용석 의원의 제명이 최종 결정된다. 안상수 당 대표가 발 빠르게 사과하고 해당 의원의 제명 조치를 발표하는 등 조기 진화에 나섰지만, 용두사미에 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현재 의원 40~50명이 해외 출장 중이고, 의원총회는 8월에야 개최될 전망이다. 시일이 늦춰질수록 국민들의 관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번 사안에 대해 신중한 판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두 차례 윤리위원장을 지낸 한나라당 이해봉 의원은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옳은 판단이 선다고 본다”라며 사실 여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강의원과 한나라당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의원직 사퇴까지 밀어붙일 기세이다. 장세환 의원 외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다섯 명은 지난 7월21일 강용석 의원에 대한 징계 요구안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출했다. 일부 의원들은 한나라당의 제명 조치와는 별도로 의원직 자진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국회 윤리특위 민주당 간사인 장세환 의원은 “강의원의 발언은 국회법 제155조 국회의원 윤리강령과 윤리실천규범을 현격히 위반했다”라고 지적하며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국회 윤리특위가 제 역할을 할지도 미지수이다. 윤리특위는 위원장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14명의 의원이 여야 동수로 구성된다. 본회의에서 선출하는 위원장은 현재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이 맡고 있다. 일단 강의원이 윤리특위에 제소된다고 해도 징계심사소위원회를 거쳐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 정갑윤 의원실 관계자는 “이르면 다음 주에 윤리특위가 소집될 예정이지만, 소집된다 해도 자문위원회 심사, 윤리특위 검토 등 과정이 복잡해 실제 의결에는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징계안 결정은 위원들의 투표로 이루어진다. 징계를 원할 경우 네 가지 징계안 가운데 하나를 쓰고, 원하지 않을 경우 가·부란에 ‘부’를 쓴다. 현행법은 의원에 대한 징계 수위를 공개 회의에서의 경고, 공개 회의에서의 사과, 30일 이내 출석 정지, 제명 등 4가지로 나눠놓고 있다. 제명 징계는 헌법 제64조 3항에 따라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할 때 가결된다.

 

또한 윤리특위의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 해도 실질적인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윤리특위는 국회의장에게 심사보고서를 제출하게 된다. 현행 국회법 제162조 1항은 ‘의장은 윤리특별위원회로부터 윤리 심사에 대한 심사 보고서를 접수한 때에는 그 심사 결과를 지체 없이 본회의에 보고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지체 없이’라는 문구가 막연해 본회의 상정을 차일피일 미루게 되는 역효과가 지적된다. 본회의에 상정된다고 해도 표결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표결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비로소 해당 의원에 대한 제재가 이루어진다. 신중하게 결정하기 위한 과정이라지만 서류 접수, 심사, 보고, 표결로 이어지는 과정은 첩첩산중이 아닐 수 없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지금까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제 식구 감싸기, 종이 방망이였다”라고 말하며 국회 윤리특위의 문제를 꼬집었다. 실제로 지난 15대 국회부터 17대 국회까지 윤리특위에 회부된 징계안은 모두 94건이었다. 이 가운데 윤리특위에서 가결된 징계안은 모두 10건이었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징계안은 전무했다. 본회의 상정 과정에서 여야의 암묵적 합의하에 계류 또는 폐기되거나 징계 수위가 대폭 낮춰졌기 때문이다. 

 

본회의 상정 과정에서 계류 또는 폐기되거나 수위 낮추기 일쑤

17대 국회 당시 윤리특위는 여야 의원 10명에 대해 실질적인 징계안을 의결했다. 5일 출석 정지 1명, 공개 회의에서의 사과 1명, 공개 회의 에서의 경고 8명 등 유례가 없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단 한 건도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았다. 1991년 윤리특위가 만들어진 이후 13년간 징계 실적이 전무해 안팎의 비판을 받아온 후 처음으로 10건의 징계안을 발표했지만,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는 끝내 넘지 못한 것이다.

2010년 7월21일 현재 윤리특위에 회부된 18대 국회의원 징계안은 한나라당 강용석·박진·정두언·고흥길 의원, 민주당 이종걸·문학진 의원,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징계안 등 35건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징계 조치는 찾기 힘들다. 

이번에는 동료 의원들의 ‘동정론’과 ‘봐주기’를 비껴갈 수 있을까. 박선영 의원은 “이번에는 윤리위원회가 제대로 역할을 해주기를 정말 간절하게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없어진다는 사회적인  인식도 바꿀 때가 되었다”라며 ‘강용석 사건’을 계기로 윤리특위의 ‘제 식구 봐주기’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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